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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내려가는 스피커 통

by 불꽃

불광천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인공미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룹니다. 제방 뚝 위로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긴 해도 그 아래로 내려오면 시냇물이 있고 풀이 있고 꽃이 있고 나무가 있습니다.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손을 넣으면 금새라도 잡힐듯합니다.

물위에는 오리들이 헤엄을 치고 있고 가끔 자맥질도 보여줍니다. 징검다리도 있는데 할머니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다리를 짝 벌려서 건널만큼은 됩니다.

봄이면 벚꽃이 함박웃음처럼 피어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물속에서 물이 하늘로 솟아 오릅니다. 분수대지요. 벚꽃의 계절이 되면 그곳에서 한복을 곱게 입은 명창들의 멋드러진 노랫가락이 시민들을 즐겁게 합니다. 쭉쭉빵빵한 아가씨들이 자전거를 타고 긴 머리를 날리며 달리고 옆길에는 강아지 만한 꼬맹이가 저만한 강아지를 안고 갑니다.


그러나 여름이 되면 폭우에 불어난 물은 강뚝까지 올라옵니다. 흙탕물이 넘실대며 빠르게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물이 빠지고 나면 수변무대 위는 떠내려온 흙으로 가득 덮입니다. 구청에서 치워주지만 어떨 때 손이 못 미치면, 버스킹으로 모금을 하려고 제 스스로 치우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찬양할 자리를 코딱지 만큼 치우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지난 여름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찬양하러 갔습니다. 앰프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기타를 메고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여름 날씨 중에서도 변덕스러운 날씨있죠. 쏘나기가 오다, 해가 나오다, 다시 비가 오다, 바람이 부는 날씨. 이런 날씨를 우리들은 어린시절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불광천의 상류지역은 북한산입니다. 서울의 북쪽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산, 삼각산이라고 불리는 산세가 험한 산입니다. 그래도 고마운 것이 일상에 지친 서울사람들에게 시원한 자연의 산바람을 선사하는 좋은 산입니다.

그날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어서 검은 구름이 뭉쳐 다니며 여기저기 비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삼각산 쪽에서도 시커먼 구름이 걸려 있었습니다.

불광천 수변무대에도 언제 비를 뿌릴지 몰라서 연신 하늘을 주시하면서 찬양을 했습니다. 세 곡쯤 하는데 불광천의 물이 불어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제가 찬양하는 수변무대 바닥과 물과의 차이가 50센티미터즘 되었는데 그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찬양을 한 곡을 더 시작했습니다. 조금 진행하는데 시냇물 건너 앞에서 듣고 있던 분이 물이 내려오는 쪽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에! 흙탕물이 떼거리를 지어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무대 밑을 보니 불어난 물이 벌써 무대 위를 넘보고 있었습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부랴부랴 반주기를 옮기고 앰프를 옮기고···, 물은 이미 불어나서 발목을 지나서 무릎까지 차 올라왔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스피커 통이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것 잡았는데, 그 위에 올려놓았던 핸드폰이 물로 쏙.

결국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선을 잃어 버렸습니다. 물에 젖은 장비들을 말리고 핸드폰은 덕분에 새로운 것으로 바꾸고 ···.

옛날 중국의 장강이나 황하강의 상류 쪽에서 큰 홍수가 났는데, 하류 쪽에서는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쨍쨍 빛나고 아무런 이상징후도 발견하지 못했었다죠. 라디오나 TV가 없던 시절이니 홍수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평소와 같이 평온한 일상 생활하게 됩니다. 갑자기 거대한 물 덩어리가 나타나서 강둑을 무너뜨리고 큰 홍수를 일으킨다는 얘기를 실감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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