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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by 불꽃

인천 계양에 있는 공장에서 전기 공사할 때 일어난 사고였다.

그때 나는 을지로 3가에 있는 전기 용역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평소엔 용역회사 사무실에 출근하면 일하러 갈 곳을 지정받아서 일터로 출근하는 식이었지만, 그날은 집에서 전화로 하루 전에 통보받았다.

작업은 케이블을 풀링하는 일이었다. 전기를 필요한 곳까지 보내기 위해 케이블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미리 땅속 깊이 묻어둔 파이프 속에 전선을 밀어 넣는 작업을 했다. 한쪽에서 전선을 당기면 반대쪽에서 밀어 넣어 파이프 안에 전선을 고정하는 일이었다. 10여 명이 양쪽으로 나뉘어 호흡을 맞추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해서 점심때 완료했다.


오후에는 작업반장이 자기와 같이 일하자며 불렀다. 우레탄 폼 두 개를 내 손에 쥐워 줬다. 우리는 맨홀로 내려갔다. 맨홀은 가로세로가 각각 2m쯤 되고 높이는 1.8m쯤 되었다.

그곳에는 오전에 끌어놓은 고압 케이블이 지나가는 맨홀이었다. 고압 케이블은 150mm 되는 파이프 속에 들어있었다. 땅속에 매설된 파이프에서 나와서 옆쪽 벽에 매설해 놓은 파이프 속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파이프 속으로 케이블이 지나가는데 지하수가 파이프를 타고 조금씩 넘치고 있었다. 안 새어 나오도록 우레탄 폼으로 파이프 구멍을 막으면 되는 작업이었다. 파이프 속에 조금 고여있는 물을 손바닥으로 긁어 퍼내서 바닥에 뿌렸다. 반장이 직접 우레탄을 파이프 구멍에 쏘아 넣었다. 본래 우레탄은 추워서 온도가 낮으면 분사가 잘 안 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날도 날씨가 추웠다. 밖은 손가락 끝이 얼얼할 정도의 날씨였다. 추우니까 우레탄 분사가 잘 안 됐다. 반장은 라이터를 꺼내서 우레탄이 들어있는 깡통으로 된 용기 표면에 불을 쬐었다. 안에 들어있는 우레탄이 어느 정도 따뜻해 지면 다시 파이프 구멍에 분사했다.

안전하게 작업하려면 우레탄 폼 용기를 뜨거운 물에 넣어 따뜻하게 만들어 분사하는 것이 정상적인 작업절차였다. 우레탄이 다시 차갑게 식으니까 반장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을 메우던 우레탄 폼에 불이 옮겨붙었다. 반장은 엉겁결에 불이 붙은 우레탄 폼을 장갑 낀 두 손으로 파냈다. 그러자 파낸 우레탄 폼을 따라서 불이 바닥까지 번졌다.

나는 재빨리 밖으로 튀어 올라갔다. 좀 전 맨홀로 들어올 때 맨홀 주변에 다 쓴 시멘트 포대 몇 개가 널려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것들을 주어 들고 다시 맨홀 구멍으로 향했다. 맨홀 구멍에서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반장도 더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나는 숨을 깊게 들어 마시고 맨홀로 뛰어 내렸다. 가장 큰 불길 위에 시멘트 포대를 덮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작은 불꽃들을 손바닥으로 탁탁 때렸다. 더는 불은 안 보였다. 숨이 가빴다. 위로 튀어 올랐다.

“캑캑”

나는 숨을 몰아쉬며 캑캑거렸다.

“불은 껐어요?”

반장이 물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맨홀 구멍에서 나오던 연기가 희미해졌다. 반장이 맨홀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한 반장이 올라왔다.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뭘요”

“불이 그대로 붙었으면 전선을 모두 교체할 뻔했어요”

전선이 불에 타면 200m 되는 고압 케이블 3가닥을 끄집어내고 다시 시공해야만 한다고 했다. 불에 탄 부분을 잘라내고 다시 연결해도 되는데, 고압 케이블인데다 신축현장이어서 건축주가 완전 교체를 요구했을 것이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나는 확실한 판단과 빠르게 대처할 용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불이 난 사고가 또 한 번 있었다.

이문동 빗물 펌프장에서 전기 공사를 하던 중이었다. 전기 사장님은 믿음이 좋은 분이었다. 이분은 나중에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셨다. 나는 그분 밑에서 한동안 반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빗물 펌프장은 지상 이 층에 지하가 있는 구조였는데, 지하는 빗물이 고이는 넓고 큰 공간이었다. 일 층은 대형 펌프 네 대가 있었다. 지하에 있는 넓은 공간은 홍수로 불어난 물을 받아 가두는 곳이었다. 일 층에 있는 대형 펌프는 이 물을 한강으로 품어 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 층에는 이 펌프를 돌리기 위한 전기설비가 가득 있었다. 빗물 펌프장은 전원을 두 곳에서 받았다. 홍수로 인해 한쪽 전기 선로가 고장이 나면 즉시 다른 선로에서 전기를 받아서 물을 퍼 올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주회로와 보조 회로를 겸용하는 방식이었고. 위험이 분산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날 작업은 이 층 천장에 전등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일 층에서 이 층으로 실내에 계단이 하나 있었고 밖으로 비상계단이 하나 더 설치되어 있었다.

이 층에서 일하던 나는 뭐에 홀린 듯 바깥계단으로 나왔다. 일 층으로 내려와서 건물 모퉁이를 돌았다. 그때 내 눈에는 전기 파이프가 타는 것이 보였다.


“불이야!”

하고 외치는 내 눈에는 옆에 흩어져 있는 인슐레이션 조각들이 들어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몇 개를 들고 뛰어갔다. 파이프를 산소 절단기로 자르는 작업 도중에 일어난 불이었다. 작업자들은 일에 열중하느라, 자신의 산소 절단기 불에 전기 파이프가 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전기 파이프는 겉은 PVC였고, 속은 얇은 철편이 둥글게 싸고 있는 훌렉시불 파이프였다. 그 속에 고압 전선이 3가닥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겉의 PVC 비닐에 붙은 불을 인슐레이션 조각들로 덮어서 껐다.

전기 파이프는 땅속에 매립되어 오다가 펌프장 끝에서 위쪽으로 나와서 이 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빗물 펌프장 배관 파이프가 지나고 있었다. 빗물 파이프는 쇠파이프였는데 조금 길어서 잘라내는 중이었다.

우리는 불이 난 곳을 살폈다. 겉의 PVC 피복을 뜯어내고 안에 있는 철편들을 자르고 전선을 살폈다. 다행히 전선에는 지장이 없었다. 불을 빨리 발견하여 소화한 덕분이었다. 사장님의 칭찬을 들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왜 이 층에서 내려와 일 층 건물의 모퉁이를 돌았는지 아직도 모른다. 자재를 가지러 내려간 것도 아니다. 무슨 볼일이 있던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내게 불을 끄라고 내려보내셨다고 감히 상상해본다. 주의 백성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시는 것 같다.

불을 끌 수 있도록 용기와 임기응변과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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