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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킹으로 만난 여덟 살 간암 환우

by 불꽃

2009년 3월 10일부터 10주간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호스피스라고 하는 것은 죽음을 앞둔 암 환자와 그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행위입니다.

호스피스 교육프로그램 중에 소아암 환자와 백혈병 어린이에 관해 배울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환자라는 것은 부모들이 젊다는 것을 뜻합니다. 젊은 부부들은 아직 경제적인 기반이 잡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또 아이가 환자라는 것은 부모 중 한 사람은 보호자로 늘 같이 있으면서 병간호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은 한 부모는 한 달에 몇백만 원씩 하는 병원비를 혼자 마련해야 합니다. 밤이 열이라도 모자라게 뛰어다녀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수술 중에 심장병이나 눈 수술 같은 것은 목돈이 한두 번 들어가면 대개 완치되지만, 백혈병 같은 경우에는 길게는 몇 년씩 장기간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소생하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지만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가정도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런 얘기 들으면서 그들을 돕는 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부터 순복음신학교에서는 전도에 관한 실천신학을 많이 강조했고, 실제로 실천신학에 대한 학점이 있습니다. 저는 길거리에서 기타를 메고 찬양하며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마침 교회를 응암동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불광천이 있는데, 잘 정비해서 물 흐르는 곳을 중앙에 두고 양옆으로 운동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물이 흐르는 곳 바로 옆에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물길 건너 앞쪽에는 관람할 수 있도록 계단이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좋은 무대를 평소에는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좋다. 저걸 내가 사용해야지!”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결심하는 것과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해야 한다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엄청난 괴리가 존재하죠.

멀리서 무대를 바라만 보기도 하고, 누가 볼까 봐 살금살금 가보기도 하고, 더 용기를 내어서 무대에 실제로 올라가서 혼자만의 예행연습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처음 마음먹은 지 거의 일 년 후에 떨리는 몸과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섰습니다. 나무로 된 모금 통 두 개를 가져다 놓았는데, 이것도 급한 마음에 벌써 일 년 전에 만들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압구정역 앞에서 목요일에, 화정역 앞에서는 화요일에 찬양모금을 확대했습니다. 화정역에서는 동역자도 생겼습니다. 염경순 님이 같이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모금액은 세브란스에, 서울역 노숙자 사역에, 강남구청을 통해 공동모금회에 모금액을 전달했습니다.


세브란스 호스피스에서는 모금액으로 ‘환아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보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다 구경해 본 어린이 대공원이나 자연농원 같은 데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항상 아프다 보니 생일잔치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봉사하시는 분들은 단 하루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모금액 사용처로 이 행사도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 중에는 미술치료, 음악치료라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단 몇만 원이면 되는 것을…, 아이들의 부모들에게는 그것조차도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요.


제가 제일 처음에 도와준 아이는 8살짜리 여자아이였는데… 세상에!… 간암이었습니다. 8살짜리 여자아이가 간암이라니?! 아빠와 엄마가 20살쯤에 아이를 낳고 헤어졌답니다.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서 컸습니다.

아이를 만나러 병원에 가던 날 가을빛에 나뭇잎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 조그맣게 앙상한 아이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곤하게 자고 있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의 꿈을 꾸고 있었을까요?

깨우면 안 되었기에 그렇게 잠자는 아이의 얼굴만 보고 왔습니다.

봉사자들과 봉사하는 학생들이 아이에게 생일잔치를 해줬답니다. 아이가 정말로 기뻐하더랍니다. 그렇게 아픈 중에도……. 나중에 전해 들었습니다.

생일잔치 끝나고 얼마 안 되어 아이는 하늘나라로 가 버렸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잔치를 그렇게 끝내고…….

얼마나 엄마의 손이 그리웠을까요? 엄마의 사랑에 그 얼마나 목이 메었을까요?

아이의 손을 놓쳐버린 할머니의 손은 또 얼마나 허전했을까요?!


봄이 되었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간절한 소원을 위해서 어린이 대 공원에 가는 날입니다. 아이들에겐 간호사도 따라가고 구급차도 동원되어야 하고 봉사자들도 여럿이 가야 합니다.

날씨는 따듯합니다. 봄꽃은 아직 피지 못한 채 봉오리마다 맺혀있고 길가의 풀은 이제 연초록의 이파리들을 땅 위로 내밀고 있습니다. 따듯한 봄날의 햇살은 아이의 콧방울 위로 내려앉아 있습니다.

놀이기구를 타보지는 못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하루는 즐겁습니다.

“엄마, 나 다 낳으면 저것 타도 되지? 저것도, 저것도 탈 거야. 응? 엄마!”

“그래, 네가 타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태워줄게.”

엄마의 약속은 아이를 바라보는 눈물 속에 감춰집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희에게 모금해 주시는 분들의 공이며 헌신입니다.

저희는 그분들의 정성을 모아서 전달해 주는 역할밖에 없지요.

징검다리 역할을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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