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록
날 때부터 외모가 특출 난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기에 그게 어떤 건지 몰랐다. 티비 속 연예인을 봐도 현실에 없는 사람처럼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가족여행으로 바닷가에 가서 난생처음 야외 공연을 봤는데, ‘김원준’이 왔다는 것이다.
‘김원준? 아.. 음.. 나 김원준 아는데..’
우리 자리는 무대 앞쪽 스탠딩 객석 가운데쯤 이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엄마, 아빠가 나를 끌고 무대 귀퉁이 계단 앞으로 급하게 달려가셨다. 그 앞도 인산인해였는데 나는 아빠의 힘에 이끌려 쉽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이 하도 많아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되뇌던 중 인파들 사이에서 하얀 빛이 보였다. 티비 속에만 있던 사람이 밖에 있었다. 브라운관과 달리 묘하게 다른 실물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게 사람이라고?’
분명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데, 더 입체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날 이후 연예인 실물을 볼 기회가 생기면 내 심장은 빠르게 뛰며, 반드시, 무조건, 기필코 봐야만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수년 뒤 내게 또 어렵지 않게 연예인을 볼 기회가 생겼다. 무려 특A급 스타 둘의 출몰 소식이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지루했던 어느 가을, 눈 뜨면 공부, 밥 먹으면 공부, 자기 전까지 공부만 하던 시절이었는데, 지방에서 그런 톱스타를 1타 쌍피로 영접할 수 있다니, 이건 절대 놓치면 안되는 기회였다. 당시엔 내가 그들과 같은 서울 하늘아래 살게 될지 몰랐으니 더욱 간절했다. 옷장에서 부식되기 직전의 가죽 재킷을 꺼내 걸치고 패도라를 쓰고, 양 손가락에 반지를 세 개씩 끼고 한껏 멋을 냈다.
그리고 다소 시니컬한 동생을 꼬드겨 롯데시네마로 불러냈다. 평소 같으면 지하철이 막힌다며 약속시간 따위는 다음 생에 기약하자던 녀석이 어쩐 일로 제 시간에 행차하시어 내게 말했다. “아니, 연예인 되러 가는 거 아니고, 보러 가는 거라고요!” 암튼 그렇게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극장으로 들어가 장장 2시간 하고도 12분이나 되는 영화를 눈을 뜨고 봤는데, 기억은 안 난다. 영화가 끝나기 15분 전쯤 나는 동생에게 신호를 주고 707 특임대 저리가라하는 포복.. 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땅에 붙어서 맨 앞자리 텅빈 장애인 전용석으로 옮겨 앉았다.
두둥! 영화가 끝나고..
Almost Paradise~ 아침보다 더 눈부신~♬
연예인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그간 티비에서 사람들이 떠들어댄 '신계', '인간계'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방금까지 저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운 주름 자글자글하고 시커먼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하얗고 뽀송뽀송하고 늘씬한 ‘정우성’과 화면처럼 잘생긴 ‘주지훈’이 들어왔다. 오자마자 적극적으로 양손을 뻗어 많은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말랑하고, 말랑했던 그의 보드라운 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날 밤 동생은 마치 눈 작은 아이가 눈을 크게 뜬 것마냥 신이 난 얼굴로 무한도전 ‘아수라’편을 보며, 정우성이 등장할 때 ‘하하’가 어안이 벙벙해 하는 장면에서 멈추고 나를 불렀다. “이거다! 이거라고! 정우성 처음 본 사람 표정! 우리가 이러고 있었다!” 그렇게 정우성 눈에 우리가 어땠을 지 현타 제대로 맞으며 공부로 지루했던 어느 가을의 하루가 요란하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