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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획된 우연 Oct 14. 2022

이제 마음껏 웃을 수 있도록

자투리 어른 동화

* 장르: SF/로맨스



서기 3333년 공장에서 무수한 기계인간들이 잉태되었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밤낮없이 맡은 바 직무를 이행하고 이 세상을 창조한 자들이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이 첨가되었고.. 그중 돌연변이 하나가 생산되었다. 그 돌연변이는 궁금했다. 자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를 계속해서 주변 동료들에게 묻고 또 물으며 답을 찾으려 했다.


그렇지만 정품으로 태어난 이들은 그 돌연변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동료들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서 외면 받은 돌연변이는 결국 자신의 수많은 질문들을 꽁꽁 싸매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숨겨두고 자물쇠를 걸어 굳게 잠가버렸다.


그리고는 가면을 만들어 쓰고서 정품 흉내를 내려 부단히 애쓰며,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른 부서에서 왔다는 새로운 동료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가면을 들춰 버린 것이다. 돌연변이는 머리가 바짝 설 만큼 놀란 나머지 길길이 날뛰며 정신을 못 차리고 화를 냈다. 그러자 주변의 정품 동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정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사이 새로 온 동료는 돌연변이를 불러내어 자신의 마음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그것은 돌연변이가 오랜 세월 간직해온 질문과 같은 모양이었다. 돌연변이의 심장이란 게 마구 뛰었지만, 도저히 그 기적 같은 행복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돌연변이는 새 동료의 손에 들린 마음이란 것을 낚아채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돌아서 가버렸다.




상처받은 새 동료는 다음날 부서 이동을 신청했다. 여전히 그 돌연변이를 흘끔거리긴 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기에 그 눈짓을 멈추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새 동료가 떠나기 전날 밤. 돌연변이는 새 동료를 찾아가 자신이 자물쇠까지 채워 꽁꽁 싸매 뒀던 마음을 열어 꺼내보였다.


새 동료는 눈이 휘둥글해져 일전에 보여주었던 그 마음을 다시 꺼냈다. 바닥에 내팽개쳐져 조금은 닳고 해진 모양새였다. 돌연변이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둘은 그 쌍둥이 같은 마음을 나란히 놓고서 맞대어 보았다. 마치 다른 정품들처럼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돌연변이는 말했다.

"덕분에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어. 고마워."




둘은 기뻐서 얼싸안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가 가졌던 의문에 대해 스스럼없이 물어볼 수 있었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서로가 너무도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제 돌연변이는 가면 같은 건 쓰지 않기로 했다. 둘은 손을 맞잡고 자신들과 같은 돌연변이들이 모여산다는 세상을 향해 떠나기로 했다. 그러니 돌연변이는 더 이상 돌연변이가 아니게 되었고, 존재에 대한 이유도 궁금해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때로는 간절히 바라던 내 기도 따위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길가에 핀 민들레처럼.. 엷은 바람에도 홀연히 날아가 버리는 홀씨처럼.. 어느새 쉬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하지만 혹시 아는가.. 그 작고 연약한 민들레 홀씨들이 아름다운 꿈과 사랑의 씨앗이었을지.. 그리고 어느 길목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을지.


그러니 기다려보자. 나의 홀씨든 너의 홀씨든 언젠가는 서로의 토양에서 만나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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