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사람들은 왜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읽고 싶어 할까?
미리 준비하지 않고 급작스레 연재 소설을 쓰면서 스토리라인을 잡으니 가끔 장애물이 튀어나온다. 해서 참고할 만한 다른 작품을 보는데, 제일 좋은 참고서는 소설이겠지만 시간에 쫓겨 드라마 한 편으로 대체하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요즘 아이들의 사고나 언어를 알고 싶을 때, 단시간에 도움을 받으려면 웹툰만 한 게 없다.
내 소설의 중반부가 왜 밋밋해졌을까 고민하다가 웹툰을 보고 깨달았다. 만화로 따지면 나는 내레이션만 줄곧 나열하고 있었다. 소설도 결국 글로 장면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인물들의 심리를 꿰뚫을 찰진 대사도 잊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게 소설이란 것에 대해 최초로 감 놔라 배 놔라 했던, 시종일관 자신의 등단을 강조했던 이가 말하길.. 대사를 최소한으로 해야 좋은 소설이라기에 이렇게 된 걸까? 괜히 그 사람 탓을 하고 싶기도 했다.
웹툰에서 내레이션은 장면 전환이나 인물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부연 설명의 영역이었다.
웹소설이 인기 있는 이유가 뭘까? 언제 어디서 어떤 자세로든 쉽고 간편하게 볼 수 있다는 그런 원론적인 이유 말고, 순수 문학에서 필요로 하는 멋들어진 문체 없이도 승승장구하며 떠오르는 해가 된 이유가 뭘까?
정답은 아마 단순할 것이다. 재밌으니까. 그리고 그 재미의 원천은 결국 스토리일 것이다. 웹툰도 그렇다. 가끔 그림이 엉망진창이어도 단 몇 초만에 홀려버릴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는 것. 머리 한 대 맞은 듯 정신 차리게 하는 교훈이나 박장대소할 대사가 없어도 시간 순삭 해 버릴 탄탄한 스토리만 받쳐주면 일단 합격이다.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따라와야 할 요소이기에.
이런 맥락으로 드라마의 진짜 히어로는 주연 배우나 연출자보다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게 드라마든 소설이든 웹툰이든 시리즈물이라면.. 마지막에 그래서 뭐 어떻게 되는 건데? 하고 타임머신이라도 개발하고 싶게 하는 이야기꾼이 진짜 작가라 명명될 자격이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웹툰의 댓글을 보면 그저 한낱 그림일 뿐인데.. 진짜 사람인양 감정이입해서 미래를 점치는 등 시끌벅적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예전에 이런 걸 보면 작가가 내일이라도 당장 바꾸면 그만인 이야기와 그림에 왜 저렇게까지 과몰입할까 하며, 그냥 어린애들의 순진함 정도로 치부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정도로 작가가 구현해 낸 세계 속 스토리텔링이 훌륭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기깔나게 찰진 비유나 배꼽 빠지는 또는 눈물 쏙 뽑는 대사는 어쩌면 '기술'의 영역일지 모른다. 진짜 핵심은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구성할 줄 아는 능력. 옳다. 소설을 쓰기 위한 필수 덕목은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