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예전에 '주유소 습격사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꿈을 상실해 버린 노답 인물 넷이 주유소를 털러 간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거기 보면 그림을 마치 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려놓고 마지막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 망쳐버리는 비운의 천재화가(유지태)가 나온다. 요즘 내가 도전하고 있는 소설도 약간 그런 것 같다.
내가 그 정도로 글을 잘 썼다는 건 아니지만.. 별안간 코미디에 꽂혀서는 각 회차별로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개그적 요소가 부족했다는 불안감에 주인공의 행동이나 생각이 가벼워지고 캐릭터가 흔들리는 것이다.
사실 내가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은 쓸데없이 진지하고, 고민이 많은 데다 동정심을 유발해 종국에는 눈물이 뚝뚝 흐를 것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엔 되도록 밝고 가볍게 표현하기로 했다. 첫 번째 소설에서 주인공을 그렇게 설정했더니 조연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고, 더불어 설교충이 등장하자 공감을 거부하는 독자들이 속출했기에..
MZ세대라 불리는 요즘 아이들은 되도록 가벼운 것을 선호한다. 그들 자체가 가볍지는 않을 텐데.. 풍족해진 삶과 더불어 함께 발전한 전자기기를 비롯 여러 매체가 그들을 더 지독한 빨리빨리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를테면 1시간 분량의 드라마보다는 10분으로 간추린 유튜브를 선호하고, 그것도 길다고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5분짜리 짤만 보고서 그 작품을 봤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래서 가벼워진 이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고민이 깊다. 남의 작품에 감 놔라 배 나롸 평가하는 건 쉬웠는데.. 직접 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만만한 게 없다. 그래도 기존에 없던 걸 만들어 보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계속해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떠오르고, 키보드 위 손가락이 멈추지 않는 건 정말 신기하고 값진 경험이다.
단, 여기서 문제는 정말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지어내면 사람들이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일상에 있음에도 나는 해보지 않았고, 그걸 해본 것처럼 쓴다는 것. 이게 참 난감한 일이다. 소설이란 걸 좀 읽어보고 감을 익혀 도전해 보니, 소설을 쓴다는 건 '누가누가 뻥을 더 현실감 있게 치느냐'였다..
때론 글도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모양과 형태가 연체동물처럼 자유자재이기에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어디서 어떤 모양이 나올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직 아마추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요즘 여러 장르의 글쓰기에 도전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수필을 쓴다는 건 적당한 깊이의 바닷가에서 자유형과 배영을 반복하는 것이라면, 소설을 쓴다는 건 아예 산소통을 메고 저 바다 깊은 곳까지 잠수를 하는 것 같다. 시를 쓴다는 건 깊은 물속을 재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나오는 프리다이빙.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바로 잠수함을 타버리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느 곳에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