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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획된 우연 Jul 22. 2022

MZ들과 돌아온 블로그

사색

바야흐로 영화관까지 행차하지 않고, 10분 만에 두 시간짜리 영화를 요약해 버리는 너튜브의 시대. 아니, 이마저 15초 만에 조져버리는 틱과 톡의 시대가 도래했다. 내가 어렸을 땐 X세대가 어쩌고 하며 당대 최고의 톱스타들이 나와 개성을 뽐내고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런 그들이 우리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우리도 '급식체'와 '잼민'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같은 세대였음에도 '안습', '안물안궁', '버카' 등의 줄임말을 겨우 쫓아가곤 했었는데, 이제는 '어쩔티비', '저쩔티비'란다. 어쩜 이리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요즘 아이들'이라 불리는 세대는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창조하고 변형해 나가는 걸까? 아마도 이 때문인지 기성세대들은 복고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을 것을 그들은 되레 신선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는 글을 읽지 않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보기도 했는데,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우리에게 종말을 예고했던 매체가 그들에게는 신문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름하야 "블로그". 여기서 잠깐.. 요즘 'MBTI' 만큼이나 유명하고 심심찮게 들리는 'MZ세대'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이게 웬걸? 나도 MZ세대였다! 아니, 내가? 아니, 왜?? 일단 각설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관한 얘기로 들어가 보자.






국내 최대 규모의 검색 엔진 초록창사에서 블로그를 론칭하고 몇 년 뒤 친구는 내게 '사이좋은 월드' 시대는 가고 이제 '블로그'의 시대라며 가입을 거듭 권유했다. 때문에 마지못해 입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블로그라 함은 요즘처럼 상업적으로 혹은 정보 전달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매체가 아니었다. 그런고로 나는 '사이좋은 월드'의 자유자재 버전 정도로 이해하고, 지인의 감시망이 없는 곳에서 마음껏 덕질의 나래를 펼쳐냄과 동시에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예체능에 능한 이들은 춤, 노래, 그림 등 각종 표현방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내 얘기를 하는 것. 어쩌면 이게 모든 창작 예술의 '정수'이리라. 당시엔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게도 그런 게 있었다. 바로 글쓰기였다. 블로그라는 플레이그라운드가 펼쳐지니 나는 나의 가치관을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표현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내 글쓰기 습관은 10살 때부터 시작되었다. 자아성찰하는 글쓰기. 정확히 말하면 생각 정리하는 일을 해왔달까? 그냥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의 홍수가 터질 때면 그걸 받아서 보관해 줄 일종의 그릇이 필요했다. 손글씨부터 시작해서 시대에 따라 매체는 계속 바뀌어왔지만 초록창 블로그는 용케도 살아남아 주었다. 해서 거의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복귀했을 때 포스팅 직후 상단 스매싱과 화려한 조회수로 나를 반겨주었다.


MBTI에서 내가 E 인지 I 인지가 나 스스로를 포함 주변인들에게 혼란을 줄 때.. 이 블로그가 나의 정체성을 정확히 해 주었다. 다들 I는 수줍음이 많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이미지로 잘못 인식하는데 그건 '내성적'인 것이고, 내성적인 것은 '내향형'에 포함되는 게 맞지만 '내향형=내성적'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향적인 것은 사교성과 다른 문제다.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해 보이더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는 사람의 성향. 그래서인지 E는 말주변이 좋고, I는 글을 잘 쓴다고 한다. 다시 다시, E는 말이 편하고, I는 글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방구석에서 하는 방송이라도 E는 유튜브(라이브용)에 강하고, I는 블로그에 강하다는 것. 그러므로 이 혼란의 대서사시는 여기서 종지부를 찍는다. 나는 I 확정. 땅땅땅.




모든 SNS는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매체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이좋은 월드에는 '일촌'의 개념이 있고, 얼굴책에는 '친구'의 개념이 있으며, 인별그램에는 '팔로워/팔로잉'의 개념이 있듯 초록창 블로그에는 '이웃' 그리고 '서로이웃'이라는 게 있다. '이웃'은 그저 구독의 의미이지만, '서로이웃'은 한 쪽의 요청에 의해 상대방이 허락할 시 쌍방 구독이 되는 개념이다.


이중 블로그만이 소통의 개념보다는 '검색' 기능에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에 그닥 소통에 열을 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인기글이 될 수 있는 구조였다. 게다가 '사이좋은 월드'에서 보여주기식 삶에 질려서 온 것이었기에 여기서는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살풀이를 하기로 했었다. 고로 서로이웃 개념도 싫고 그냥 순수하게 내 글에 공감하실 분들만 공감하시라며, 나는 내 갈 길을 갔다. 그런데 어느 날 글에 내용도 없고 조회수도 내 블로그의 10분의 1인 사람들이 오직 허울뿐인 다량의 서로이웃을 통해 OTT 서비스로부터 협찬받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나도 블로그를 한껏 개방하고 영업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의 동선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지만 나와 같은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것. 정말 큰 수확이었다. 100명의 이웃이 있으면 100개의 인생을 알게 되고, 100개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인생이란 게 참.. 별거 없구나.. 인생이란 게 참 재밌는 거구나. 어떤 이에게 행복은 순간이고, 어떤 이에게 행복은 형언할 수 없는 무거움이구나.


아, 이 사람은 신발을 좋아하는구나, 이 사람은 키보드에 진심이고, 이 사람은 음악 앨범을 이렇게나 모으네? 요즘 애들은 이런 짤을 만드는구나. 삼삼오오 모여 좋은데 놀러 갔네? 와, 같은 영화를 보고도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니? 요즘 이런 드라마를 하는군? 이런 신상품도 나왔네, 없는 불편을 만들어 해소해 주는구나. 요즘은 이런 음료가 유행이고, 이런 음식도 파는구나 등등 인별그램 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꾸밈없는 모습이다.


그렇게 진심으로 그들의 글을 본다. 그들의 생각을 보고 마음을 짐작해 본다. 아.. 그때는 아팠고, 그때는 즐거웠구나. MZ세대의 머릿속도 훑어보고, 어르신들의 혜안도 전수받아 본다. 개중에는 정말 두 번 세 번을 봐도 뭔 소릴 하고 싶었는지 이해 못 할 글도 많지만 괜찮다. 그냥 다 재밌다.




문득 공감 '하트'에 감사한 마음으로 답방을 가며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원래는 생각을 보관하는 서랍쯤으로 여겼던 이 블로그가 어쩌다 내 삶에서 놓을 수 없게 되었는데.. 덕분에 어느 날엔 파리를 여행하고, 어느 날엔 성수동 맛집에서 파스타를 음미하거나 서초동에서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구나. 이렇게나 쉽게 타인의 인생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니. 막상 얼굴 보면 못할 얘기도 누가 볼 테면 보라지 하고 던져버리는 이 공간에선 꽤나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블로그 이웃들은 MZ세대가 워낙 많아서 대충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에겐 그저 복고일지라도 그들에겐 신선하게 다가간 이 문화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쁘게 포장해서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방송용 인생들 보다 날 것 그대로의 정돈되지 않은 이들의 일상이 훨씬 좋다. 머리에 신선함을 주입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구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수혈받는 것 같기도 하니까. 나는 이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MZ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나 또한 MZ세대였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알고 보니 떼려야 뗄 수 없게 블로그라는 마을에서 사이좋게 서식하고 있었던 동족, MZ들아. 계속해서 잘 지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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