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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기 Jul 14. 2017

명강의의 탄생#5- 강의를 망치는 강사의 '시뮬라크르'

당신의 강의는 어디서 출발하는가?

질문 하나!

아이가 타고 있습니다

도로에서 쉽게 보는 이런 스티커 혹시 안전운전을 당부하는 의미인 줄 알았던 이 스티커가 사실은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아이를 구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예전에 어떤 교통사고에서 체구가 작은 아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채 구조를 종결했던 안타까운 사건을 계기로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이 스티커. 덕분에 교통사고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더 꼼꼼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참 의미 있는 히스토리라 하겠다.


지금까지 단순히 안내용 스티커라고 알던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기에 반사적으로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아 진짜?’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 물론 가짜!’


  

#시뮬라크르의 세상
  

그럼 다시 질문!

당신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서서히 끓는 물속에 있던 개구리는 결국 온도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죽고 만다.’

들어봤다면 당신은 최소 한번은 과학적 ‘진실’에서 복제 된 이야기를 다시 포장하고 다듬은 거짓을 경험했다.
일명 삶은 개구리 효과(Bolled Frog Syndrome)라고 하는 이 사례는 변화교육에 단골로 등장한다. 하지만 개구리는 서서히 끓는 물이든 원래 뜨거운 물이든 온도의 변화를 잘 알아채고 대처한다니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사례로 들어 강의를 했다면 이유가 어쨌든 거짓말을 당당히 한 셈이 된다.


‘나이든 솔개가 산꼭대기로 날아올라가 스스로 바위와 부딪혀 깨져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는 솔개의 슬픈 성장 이야기나 조깅을 하던 아침 우연히 마주친 노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 노인이 알고 보니 코카콜라 창업자였다느니 하는 가짜 이야기는 본래 정체성에 실례를 범하기까지 한다.

시뮬라크르(simulacre)’
  
이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 의 주장으로 우리의 세상은 ‘이데아’를 복제한 세상이며

(※이데아=진리의 원형이 가득 차 있는 참 세계)
그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위계상 가장 가치가 없는 시뮬라크르라고 한다.


정리하면 이데아->복제물->시뮬라크르 인 것이다.

  (플라톤-BC 427년 ~ BC 347년-이 말한다. 시뮬라크르는 NO 가치)


이후 프랑스철학자인 들뢰즈(1925~995)는 플라톤과 달리 시뮬라크르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복제의 복제물이 아닌 독립성을 가진 개체로 여겨 평가 절하할 수 없음을 주장하며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정립했다. 그래서 그런건지(물론 아니지만) 본질과 상관 없이 복제되고 복제 된 거짓들이 하나의 본질인냥 강의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니 안타깝고 슬픈일이다.

 (들뢰즈 왈 '시뮬라크르의 영향력에 집중해봐')


물론 앞서 말한 개구리나 솔개의 이야기가 전혀 쌩뚱 맞게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개구리 끓이기의 경우 독일 생리학자 Friedrich Goltz의 업적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설이 있는데 19세기의 그러한 가설들은 20세기 이후 다양한 학자들에게 반박되어 졌지만 어느새 다시 진실인 듯 세상에 퍼져나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거짓 정보들은 그저 사회가 요구하는 감성적이고 자극적 사례들과 그 개구리 따위의 개체나 상황들이 가진 속성이 어울려 시작된 생각들이 어쩌다보니 결국 그 본질을 스토리에 희생시켜버린 일종의 조작극이 아닐까?
즉,
원래의 그 무엇(혹은 요구)->변형과 각색 ->결국 가짜 이야기 탄생

(엔디 워홀도 그랬지 않는가? 누가 진짜 마릴린 몬로같냐고)


이렇듯 어떤 이야기라도 몇 번의 각색을 통해 재생산되고 사람들 눈에 익숙하도록 여러 번 ‘재등장’하면서부터 어느 샌가 새로운 진실로 재탄생하게 된다.

본질에서 출발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 아예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강의의 시뮬라크르
  
그것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펴져가지만 매우 위험한 결과를 만든다.
플라톤이든 들뢰즈든, 이데아의 가치를 중요히 여기든 그것이 아니든, 검증되지 않은 가짜는 그저 가짜일 뿐이고, 그게 강의나 교육에 쓰였다면 단순히 가짜를 뛰어 넘어 의도가 순진한 ‘사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강사의 한 마디가 미치는 영향력은 그 한 마디에서 머무르지 않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그렇다면 본의도를 왜곡하게 하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강의의 시뮬라크르


강의에서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글이나 네이버, 혹은 자기개발서가 주는 특정 사례를 맹신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권위 있는 인물의 이야기라도 출처가 모호하다면 100% 신뢰를 보내는 것에 인색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구글링을 하고 있다.)


검색(search)을 하다 찾아낸 이야기를 다시 검색(search)하는 것
search하고 또 search하는 검증행동을 우린 Research 즉, 연구라고 한다. 그래서 강사들은 기술자가 아니라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과 유럽의 중산층 기준을 두고 한국인들의 물질우선주위를 꼬집은 통계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중산층 기준] 부채 없는 30평 아파트 /  월 500만 원 이상 급여 / 2,000cc급의 중형차 / 그리고 1억 원 이상 예금 잔고


[유럽의 중산층 기준] 1개 이상의 외국어 / 직접 즐기는 스포츠 / 1개 이상의 악기 / 색다른 요리(를 할 수 있음, 자신만의 요리) / 사회적 분노에 공감 / 약자를 돕는 봉사활동


이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기준은 온통 물질중심이고 유럽은 삶과 윤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얼추 맞는 이야기 같아 고개가 끄덕여 지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유럽과 우리나라의 문화를 그렇게 객관적인 추로 무게를 달 수 있을까?

식사 문화 하나의 차이만 보더라도 그렇게 쉽게 비교할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또 중산층의 기준을 조사하는 기관이 금융관련 회사냐 교육기관이냐에 따라 답변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유럽의 중산층처럼 좋아하는 악기 하나쯤 다루고 살려면   

사실 돈도 꽤 들어가지 않을까?
   
요는 이것이다.
검색한 자료를 맹신하지 말라!
옛 속담에 꺼진 불도 다시 보라 했듯이 좋은 자료도 다시 검증해보자.

기억하자! search + search = research 그리고 기술이 아니라 연구!



#그래서 우리는


영화 매트릭스로 인해 보편화 된 개념인 시뮬라크르.
가상의 내가 현실의 나와 혼동되고 가상의 내가 죽으면 현실의 나도 죽어버리는 가상과 현실의 모호성.

  (당신의 선택은 현실인가 가상인가?)


그러다보니 자신이 만든 이미지에 맞춰 살아가려 용을 쓰기도 하고, 또 근거 없이 생긴 정보를 퍼다 나르다보니 그렇게 믿게 되고 다시 또 누군가가 그 거짓 정보를 전하는 악순환.
정확한 검증 없이 그럴 듯 해보이는 것들을 그런 것으로 믿고 퍼 나르는 습관을 버려야 그 행동들이 근거 없는 낭설을 진실로 재포장해서 유통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어떤 직업보다 윤리가 요구되는 직업 강사, 그리고 교육인
말 한마디로 수백, 수천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의 객관적 성찰과 더불어 교육 자료를 개발하는 생각과 태도에도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 지금 당신의 강의는 어디서 출발했는가?

(웨얼 아유 프롬)

  
   
사족 붙이기)
과거 영화에서나 누리던 기술이 현재의 삶에 살아 숨 쉬는 요즘. 사람과 그 사람의 콘텐츠가 그 영화 같이 ‘허구’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지금이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이 글 역시 '그렇구나..'하고 읽지 말고

Search+Search=Research 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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