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서부시장에 가면, 나의 소울 푸드가 있다

by miso삼삼

사람들은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 옛날에 먹어본 맛있는 음식이 없다.”라고 한다.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도 배는 부른데 무언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이는 음식은 넘치는데 정작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요즘 음식은 최신 가요와 닮았다. 최신 가요는 음악이 빠르고 화려하며 가볍다. 미슐랭 3 스타가 작품으로 만든 근사한 요리 같다. 고급스러운 커다란 접시에 앙증맞은 소량의 음식이 얌체같이 올라가 있다. 예뻐서 먹을 수가 없다. 입안에서 황홀하다.



옛날 음식은 옛날 가요와 닮았다. 옛날 가요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노랫말이 울림을 준다. 느리고 깊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가요를 들으며 같이 울고 웃는다. 옛날 아낙네가 기교 없이 만든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 같다. 옛날 음식은 쉽게 손이 가고 먹고 나면 잘 먹었다는 만족이 있다. 소울 푸드(soul food)이다.



소울 푸드는, 미국 남부 흑인들과 관련된 음식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유 식문화를 가리키는 말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상들이 아프리카 시절부터 먹었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음식이라고 한다. 추억이 깃든 음식이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따뜻한 감정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소울 푸드는 치유해 주는 음식이다. 결핍이 느껴질 때, 세상살이가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살아갈 힘이 된다.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 준다, 영혼 깊숙한 곳의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다.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아늑한 고향의 맛이다. 옛날 가요 같은 음식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음식이 미각세포를 통해 평생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가 위기 때마다 “괜찮다” 등을 토닥여 주고, “쉬어 가라”고 하며 엄마의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음식이다.



누구나 소울 푸드가 있다. 작가 황석영의 모친은 “죽기 전에 노티 한 점을 먹고 싶다.”고 했다. 평안도 지역의 소박한 간식거리 하고 하는데 노티가 무엇이길래 생의 마지막 음식으로 원했던 것일까? 나꼼수 김어준의 소울 푸드는 '라면', 요리 연구가 최유진은 '혼자 마시는 술'이라고 한다.



나의 소울 푸드는 '칡잎 옥수수 팥떡' 이다. 어머니의 창작 음식이라 내가 이름을 붙였다. 늦가을에 수확한 잘 여문 메옥수수와 팥으로 만든다. 옥수수를 맷돌에 갈아 물기를 빼놓는다. 꾸덕꾸덕해진 옥수수 반죽을 한 주먹씩 떼어서 둥글넓적하게 만들어 그 속에 팥소를 넣고 반으로 접는다. 뒷산에서 따 온 넓적한 칡잎에 싸서 쟁반 위에 가지런하게 놓는다. 초록 옷을 입은 하얀 반달이 줄을 맞춰 단아하게 앉아 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서 가마솥에서 찐다. 향기로운 칡 향이 온마을에 퍼진다. 옥수수와 팥이 익는 냄새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떡. 한입 베어 물면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을 닮은 맛이 난다. 옥수수와 팥, 칡잎 세 가지 재료만으로 이런 환상적인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어머니의 칡잎 옥수수 팥떡을 먹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부자가 된다. 지상 최고의 행복한 맛이다. 어머니는 15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의 칡잎 옥수수 팥떡은 내 기억 속의 소울 푸드로 남아 있다.



영월 서부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연*집이 있다. 메밀전병과 메밀 부침개, 올챙이국수를 판다. 한 평 남짓한 좁은 가게에는, 네모난 농협 달력이 벽에 걸려있다. 둥그런 소당이 두 개 있고, 옆에 나무젓가락과 양념간장이 있다. 손님이 앉을 수 있도록 긴 직사각형의 의자가 있고, 의자와 같은 길이의 긴 직사각형의 상이 있다. 작지만 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는 정이 느껴지는 가게이다.



음식을 주문하면 손님 눈앞에서 바로 음식을 만든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손님과의 거리가 일 미터도 안 되는 사적인 거리에서 음식을 만들고, 익어가는 과정을 직관한다. 연세가 꽤 돼 보이는데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할머니가 연*집의 주인이다. 처음에는 영월 오일장에서 전병을 만들어 팔았고, 장사를 시작한 지 50년이 넘었다고 한다. 첩첩산중임에도 연*집은 늘 손님이 많다. 한결같이 똑같은 맛을 못 잊어서 오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인가 보다.



전병에 들어가는 재료는 단출하다. 묽디묽은 메밀 반죽, 데친 무와 김치를 잘게 썰어 양념한 전병 소가 전부이다. 전병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영월 척박한 땅에서 거칠게 자란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다. 정직한 맛이다.



메밀 부침개도 맛있다. 메밀 반죽을 소당에 한 국자 두르고 얇게 편다. 그 위에 절인 배추를 반쪽씩 찢어 넓은 소당 크기로 얇게 편 반죽 위에 올린다. 다시 반죽을 반 국자 떠서 한 바퀴 두른 후 고르게 펴고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힌다. 백지장 보다 얇은 야들야들한 메밀 부침개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메밀 한 가지 재료로 어떻게 이런 완벽한 맛을 내는지 마술에 가깝다.



올챙이국수도 어디서 먹어보지 못한 맛이다. 맹탕인 것 같은 심심한 맛인데 혀끝에 남는 끝맛은 고소하고 깨끗하다. 담담한 맛, 이 한 가지 맛으로 맛의 끝판왕 자리에 오른다. 올챙이처럼 생겨서 올챙이국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실물을 보면 올챙이 모습은 연상되지 않는다. 노랗고 통통한 게 귀엽다. 매끄러워 후룩후룩 넘어간다.



할머니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올 때마다 같은 듯 약간씩 맛이 다르다. 어떤 날은 조금 짠듯하고 어떤 날은 약간 싱겁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간이 딱 맞는다.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본연의 맛이 살아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집 전병은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어린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간다.



메밀전병과 메밀 부침개가 먹고 싶을 때마다 영월 서부시장에 간다. 주인 할머니와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 나누면서 오래 앉아서 여유롭게 먹고 포장도 해 온다. 연* 집 전병을 먹으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세상에 나가 싸울 용기를 얻는다. 괜히 힘이 난다. 3시간 장거리 운전이 오히려 신난다. 정겨운 연*집 전병은 현재의 나의 소울 푸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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