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119, 응급실 그리고 입원

면역력 0, 병원에 갇히다.

by miso삼삼
열이 올랐을 뿐인데, 생과 사의 경계에 발을 들였다.


항암 시작 후 8주가 지났다. 전과 다름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항암주사와 면역 증강 주사를 맞았다.

암 환자에게 맨발 걷기가 효과가 좋다는 말을 들어서, 컨디션 좋은 날엔 나가서 햇볕을 쬐며 공원을 걸었다. 암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할 때였다.


그날도 공원에 나가 맨발 걷기를 하고 들어왔다. 오후가 되자 으슬으슬 추웠다. 식탁에 앉아 있다가 침대로 가려고 일어섰는데

나도 모르게 픽 쓰러졌다. 가족들에 의하면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다행히 금방 깨어났지만, 밤새 열이 펄펄 끓었다. 체온을 재보니 40도가 넘었다. 식은땀이 계속 흘러내렸고, 열이 높아 몸은 뜨거운데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침까지도 열이 내리지 않아, 택시를 타고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그 병원에서 치료받는 암환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처치를 해주지 않았다. 129를 타고 치료하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시ㆍ도를 벗어나면 119가 아니라 129로 이동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겨우 도착한 병원 응급실에는 응급환자가 많았다.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응급실 의사들은 정신이 없었다. 129 차량 한시간 가량 대기하다, 겨우 응급실 안으로 진입했지만, 침대가 없어 의자에 앉아서 밤늦게까지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입원실에 빈자리가 없어서 자리가 날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혈액검사 결과 면역력(호중구)이 0%여서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했다. 시급히 무균실에 입원하라는 진단이 나왔다.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입원을 할 수 있었다.

‘0’이 이렇게 무서운 숫자였다니...

면역력이 '0'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감기 바이러스 하나에도 무너질 수 있는 상태. 누군가의 기침, 손잡이 위의 먼지, 심지어 내 손끝의 작은 상처마저도 위험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에게 '열’은, 면역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선 작은 감염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었다.


나는 입원하자마자 수액을 맞았고, 수혈을 받았으며 해열제, 항생제, 영양제를 번갈아 투여받았다. 다섯개의 주머니는 매우 위급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은 모습은 영락없는 중환자였다. 몸이 차갑게 식었고, 오한이 몰려왔다. 이불을 덮어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웅크리고 구겨진 채로 고통을 견뎠다.


무균실에 열하루 동안 입원했다.

면역력 0 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코안이 염증으로 꽉 막혀서 숨을 수가 없었다. 코로 숨을 못 쉬고 입으로만 숨을 쉬는 일이 가장 고역이었다. 입안이 헐어서 음식이나 물을 삼킬 수가 없었다.


나는 살면서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몸도 괴로웠지만, 내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살면서 한순간도 마주하지 않았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면역력의 위력을 실감했다. 호중구 수치는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내 삶을 마구 흔들어댔고 태풍보다 더 강력하게 휘몰아쳤다. 면역력의 존재감은 화인처럼 뇌리에 각인되었다.


문득,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좌 비밀번호 등 머릿속으로 주변정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입원실의 새벽은 길고 조용했으며, 수액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들렸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었다.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버텨, 버텨야 해”라고 수없이 외치고 있었다.


열흘이 지나자, 면역력 수치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열도 내려가기 시작했고 혈액검사 결과 염증 수치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의사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비를 잘 넘기셨어요. 고생하셨어요.”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를 살려내고야마는 의사들이 그 어느때보다 존경스러웠고, 너무나 감사했다.


암과의 싸움은 때때로 예고 없이 생사의 문턱까지 넘나드는 고된 여정이었다.

고립은 끝이 났고, 나는 다시 ‘세상 속의 사람’이 되었다.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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