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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J Nov 23. 2023

최애가 생긴다는 건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를 보고 

최애가 생긴다는 건 

2023년 10월 -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를 보고


            

  인간이 싫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았을 때가 없었다. 어린 시절엔 가수 김현정을 가장 좋아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시원하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은 god를 좋아했다. 희대의 명작 <god의 육아일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은 신화를 좋아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탈색 머리를 휘날리며 노는 모습에, “헤이 컴온”이라고 외치는 그 목소리에 처음으로 가수의 CD와 테이프를 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SM의 노예가 되어 동방신기를 꽤 오랜 시간 사랑했다.

  당시 오빠들의 입에서 나온 여자라고는 “코디 누나” 혹은 “작가님”이었다. 패션 센스라고는 1도 없는 내가 코디 누나가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글은 달랐다. 쓰는 걸 좋아했고 아주 종종 상을 탔다. 그래, 그럼 방송작가가 되자! 그렇데 단번에 꿈을 정한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 꿈을 이루었다. 물론 작가가 된 이후 단 한번도 시아준수를 보는 일은 없었지만.      


  그러니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란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 짓는 것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역시 그랬다.      


  주인공 하진씨는 ‘영화’라는 꿈에서 멀어질 무렵, 가수 이승윤에게 입덕한다. 그 순간, 하진 씨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하진 씨는 그를 위해 뮤직비디오 제작을 결심한다. 가수를 설득하기 위해 자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진심을 담은 메일로 최애를 섭외해낸다.      


  여기까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장소 섭외며, 촬영 감독 섭외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당연하다. 아마추어 감독의 열정을 발견해 줄 프로는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다. 상대방이 조금만 미숙해 보이면 바로 그 위에 올라서려는 이상한 업계, 실은 그곳에 몸담고 있기에, 그리고 그와 비슷한 상황을 숱하게 겪었기에 보는 내내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이게 정말 일이었다면 진즉에 때려쳤을 상황임이 분명한데 동기가 분명한, 그것도 최애가 동기인 이 작업에서 포기라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단어이다.      


  하진 씨는 결국 끝까지 갔다. 세트는 물론 소품까지, 하진 씨와 친구들의 손이 거치지 않은 것은 없다. 자신이 만든 꿈의 현장, 그 속으로 이승윤 씨가 걸어오고 마침내 꿈꾸듯이 움직이는 순간,  하진 씨는 그 순간을 얼마나 많이 그려봤을까.      


  꿈이 실현되는 완벽한 장면, 그 속에서 나는 가수의 팬이 아닌 영화감독으로서 존재하는 하진 씨를 보았다. 실제로 영화 말미에도 그런 말(정확히는 이승윤 씨의 편지)이 나오기도 했다.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

음, 세상이 우리에게 준 것 중 가장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최애가 생긴다는 건 어쩌면, 죽은 줄 알았던 꿈들의 생존신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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