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슴 Nov 16. 2023

정상에 오르거나, 인생을 누비거나

영화 <여덟 개의 산>



세상엔 여덟 개의 산과 바다가 있대. 그리고 중심엔 이렇게 커다란 산이 있어. 수미산이지. 누가 더 많이 배울까? 여덟 개의 산과 바다를 여행한 자와 수미산에 오른 사람 중에 말이야.        


  

일찍이 자신의 삶을 찾아 인생의 의미를 천착하며 살아가면 좋겠지만, 한 번에 수미산에 도달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많은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해 여덟 개의 산과 바다를 헤매면서 산다. 지금 이곳이 어디쯤인지, 그다음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걷다가 생각지도 못한 광장으로 들어서기도 하고, 종착지 방향이라고 굳게 여기며 걸었던 길이 불의의 사고로 막다른 골목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파올로 코녜티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 속에는 두 친구가 나온다. 

도시 소년 ‘피에트로’와 산을 벗하고 살아온 ‘브루노’다. 브루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젊은 시절부터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피에트르는 자기만의 산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떠돈다. 세월이 흘러 두 삶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먹고 살길이 막히더라도 산을 떠날 수 없는 브루노는 결국 가족과 헤어지고, 피에르트는 헤매던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소설도 출간한다.      





인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시간을 살아왔다. 긴 시간 동안 어디론가 걸었으나, 그 길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지금도 도통 모르겠다. 서성이기만 하다가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마냥 떠밀리기만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동안 수많은 사람과 선택을 만나왔을 테니까.     



돌이켜보면 20살이 되고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로 ‘결정’이었다.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 그 결정에서부터 인생이 다시 이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지. 선택하기 이전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결정으로 내 인생 전체가 뒤흔들릴 만큼 엄청난 선택도 없었다. 어쩌면 내 인생의 단 하나의 수미산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한번 사는 인생에서 정상을 정복하는 꿈도 야심 차지만, 아직 내게 산은 정상을 오르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곳이 아니다. 정상이 어디인지 모르고 걸어도 괜찮다. 고개를 들면 눈부신 햇살을 조각내는 수풀 우거진 숲속의 하늘이 있고, 걷다가 힘들면 길게 쉬어갈 그늘이 있다. 고목 아래 잠든 버섯, 그 옆으로 피어난 처음 만난 풀꽃 무리까지도 그날의, 그해의, 그 시절의 목적지가 되어주었다.     



앞으로 어딜 향해 가야 할까. 막막한 마음 대신, 일관된 방향은 없어도 순간순간 여기 작은 깃발 하나 꽂아둔다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멀리서 보면 알록달록 물들인 꽃밭으로 보일지도 모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친구가 맞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