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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철수 Nov 09. 2023

우리는 친구가 맞을까

<여덟 개의 산>을 보고

※스포일러 주의



두 남자가 지붕 위에 있다. 지붕 뒤로는 너른 산과 그 능선이 보인다. <여덟 개의 산> 포스터가 그렇다. 예고편에는 산을 오르는 한 남자를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꽤 신나는 음악을 입혀서 마치 뮤직비디오 같았다. 어떠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어려움은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까. 

내 기대는 거기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여덟 개의 산>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피에트로와 브루노라는 두 남자가 보여주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도시와 산을 대비시켜서 각자가 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브루노는 하나의 산을 높게 오르고, 피에트로는 여러 산을 많이 오른다.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이지만 이 둘은 둘도 없는 친구다. 산은 세상으로부터 둘을 보호해주는 높은 장벽 같다. 그리고 그 둘 사이는 가까운 만큼 오묘한 긴장감이 있다. 나는 그들의 삶 보다는 둘의 관계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친구가 맞을까. 내 오래된 고민이다.

어디서부터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친구일까.

친구를 넘어서는 사이는 사랑밖엔 없나.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있을 순 없나.     


나는 소유욕이 강하다. 이유를 찾아보자면 외동(그래, 또 시작이다.)이라, 형제가 갖고 싶었다. 그런 친구가 필요했다. 형제는 싸워도 형제다. 심지어 서로 친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묶이는 사이다. 그런 튼튼한 끈으로 연결된 어떤 존재, 그게 부러웠다.

그런 친구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번번이 실패했다. 내 단짝이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하는 관문이 많았는데 친구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런 퀘스트를 지나고 있었고 그들은 중도포기하거나 대부분은 탈락 당했다. 탈락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또 대부분은 주변에 다른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단짝’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건 억지로 친구의 바짓자락을 잡고 있는 꼴이었다. 그리고 애처롭게도 끝까지 정확하게 실패했다. 친구는 어쩔 수없이 형제가 아니니까? 결국 핏줄이 문제였나.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친하지만 서로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둘만의 집으로 각자 돌아오게 만든다. 떠나면 떠나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떠나도 결국 돌아올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서로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두터운 것일까. 아니면 돌아오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존중일까. 그들이 우정을 지켜온 방식, 내가 갖지 못한 여유다. 피에트로가 집으로 친구를 데려왔을 때 브루노의 심정은 어땠을까. 질투가 난다면 이상한 일인 걸까. 사람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가끔 친구들과 함께 있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헛소리를 하면서 얼굴이 구겨지도록 깔깔 웃는 모습.

볼 수 없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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