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빚이 9000만 원입니다.

나를 되돌아보다 -3편: 비일비재한 외상과 굶음-

by letterandheal

굶음이란?


연탄화덕과석유풍로.jpg "본 저작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연탄화덕과 석유풍로(작성자:미상)'을 이용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www.nfm.go.kr)'에서 이용 가능

목욕탕, 산속, 여관, 단칸방을 거쳐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이번엔 방이 넓었습니다. 하지만 부엌이 없었습니다. 방은 연탄화덕으로 따뜻하게 해야 했고, 밥은 석유풍로를 이용해 준비했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저 조그만 연탄화덕이 방을 따뜻하게 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요즘은 연탄 불맛이 미식의 한 부분이 되었지만, 1980년 대에는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집이라고 부르기엔 참 부족한 곳이었죠. 화장실은 공동 화장실이었고, 겨울이 되면 물이 내려가지 않아 엄마가 일하시는 목욕탕의 남자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집이라고 불리던 곳에는 제대로 된 문도 없었습니다.

집.jpg [사진출처: 공유마당]

철판 몇 장으로 앞을 막아놓았고, 성인이 허리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작은 문이 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은 집이 아니라 상가였던 것 같습니다. 방을 세놓아 우리가 머물렀을 뿐이었으니까요.

부엌이 없었기 때문에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빚을 갚기 위해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목욕탕에서 세신일을 하셨습니다. 집에는 쌀도 없고, 음식도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울 옥수동에 위치한 옥수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30여분을 걸어 다녔습니다. 도시락을 챙길 수 없어서 점심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의 기억이 몸에 밴 것일까? 대학생 때 500원짜리
2% 캔 음료를 살 수가 없어서 아니 못 먹어서
편도가 1주일간 부었다.

도시락통.jpg "본 저작물은 'e뮤지엄'에서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도시락(작성자:미상)'을 이용하였으며, 'e뮤지엄(https://www.emuseum.go.kr/)'에서 이용 가능


다행히 마음씨 좋은 친구들이 나누어준 음식을 먹거나, 눈치가 보일 때는 교실 밖에서 물로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 급식 시범학교로 지정되면서 급식이 시작되었지만, 처음에는 급식비가 없어서 먹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급식비를 마련해 먹을 수 있게 되었던 때의 기쁨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학교에서는 급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지만, 집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항상 굶주렸습니다. 학교에서 밥을 먹는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한 기대가 되었습니다. 엄마 역시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하셨지만, 목욕탕에서 세신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라면은.jpg [사진출처] 공유마당


그런 엄마를 보며 저는 동네 가게에서 외상으로 라면을 사 와 끓여드렸습니다. 외상은 동네 가게와의 신뢰로 이루어진 작은 약속이었지만, 저에게는 생존의 끈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엄마와 제 배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굶주림에 익숙하다. 빚이 9000만 원인 상황을 알자마자 나는 두 끼를 먹지 않는다.


참 많이 굶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도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그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지금의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중요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굶주림에 대한 나의 자아 by ChatGPT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무섭다.
먹는 것으로 잔소리를 한다.
굶주림의 견딤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내 자아가 튀어나올까?
무섭다.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캐치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단순합니다. 빚이 있다는 상황이지만 회상을 하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작은 희망과 도움은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삶은 가혹할 때가 많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갈 방법을 찾습니다. 굶주림과 외상으로 버틴 시간들은 저를 약하고 비굴한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강함을 만들어준 시간이라고 생각하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또한,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때 그 작은 친절이 그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친구들이 나누어준 도시락, 동네 가게의 외상은 저에게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생존과 희망을 이어준 끈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고 살아가는 힘을 믿으십시오. 빚이 나의 어깨,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비빌지라도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친절이 더 깊은 구렁에 빠진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그 작은 친절이 나와 우리에게 더 큰 친절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끌어당김의 법칙이자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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