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망각과 돈의 달콤함
<<죄송하지만, 빚이 9000만 원>>의 파트 1, '나를 되돌아보다'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마치고, 그다음 이야기 파트 2 '돈을 써보다'로 이어집니다.
등장인물
아버지: 나를 낳아주시지는 않았지만 나를 진정 키워주신 분
어머니: 나를 낳았고, 나를 키워주신 분
여동생: 아버지가 다르지만, 언제나 걱정인 동생
나
장소
이발소에 딸린 월세집:
이발소 입구를 지나 쪽문을 열면 방과 부엌이 있음.
연탄화덕이 아닌 연탄보일러
부엌 슬래브 지붕 - 비가 오면 지붕이 뚫어지는 것 같음.
금호동 목욕탕:
어머니가 세신 일을 하는 곳
학습의 관점에서 반복, 반복, 반복은 망각의 시간을 지연시킵니다. 참 이상합니다. 장기 기억장치에 저장할 굶주림의 반복학습과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월과 시련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배가 따스해지니 굶주림도 망각한다.
이발소의 따뜻한 겨울
군자동으로 이사 온 후 우리 삶은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이발소 입구의 커다란 글씨 '이발소'는 백 미터 밖에서도 보였기 때문에, 더는 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굶주림이 없었으니까요. 아버지가 이발소를 운영하고, 어머니는 목욕탕에서 여전히 세신 일을 하셨지만 집안에는 언제나 연탄보일러 덕분에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방과 부엌에 들어서면 나는 늘 어김없이 밥 냄새를 맡았습니다. 연탄보일러는 마치 우리의 삶을 조용히 지켜주는 존재 같았습니다. 이발소를 지키며 틈틈이 연탄을 갈아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묵묵하지만 든든했습니다. 가끔 눈과 비가 내리면 지붕 아래로 똑똑 떨어지던 날, 아버지가 부엌 슬라브 위로 올라가 지붕에 슬라브를 덧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의 지붕은 마치 툭 치면 언제든지 싱크홀이 생길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 따뜻함이 배를 채우는 기쁨을 가져다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배부름의 마법: 굶주림의 기억을 지우다
어린 시절, 배가 고팠던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 시련은 어느새 가물가물해졌습니다. 배가 따뜻해지고, 밥을 먹고 난 뒤의 그 기분은 마치 오래된 아날로그 필름에 흠집을 내어 기억의 일부를 날려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나는 깨달았습니다. 배부름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이란 마치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듯했습니다. 군자동에서의 삶은 그렇게 조금씩 나의 굶주림에 대한 기억을 무디게 했습니다. 이제 더는 교실에서 도시락 없이 물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되었고, 굶주림의 비참함을 견디는 대신, 먹을거리로부터 오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때, 과자의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때면, 혀 끝의 감각이 더 섬세해졌고,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미식'이라는 말은 여전히 나에게 과분했지만, 그때의 나에게 음식은 기쁨이었고, 가난했던 과거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마법이었습니다.
미식은 좋다 못해 즐겁다.
혀가 호강하면 뇌가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혀는 더 호강하려 한다.
굶주림이 가득했던 그 시절이 어찌 보면 내 삶의 가장 큰 스승이었을 텐데, 배가 따뜻해지고 나니 그 기억이 어쩌면 불필요한 것처럼 치부되는 것 같았습니다.
등장인물
나
장소
오피스텔: 남부터미널 역에 위치함
벗어나고 싶었던 집, 그리고 비교의 시작
군자동의 이발소에 딸린 집은 나에게 ‘따뜻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부족했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부엌 슬래브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집 안은 늘 비좁았고, 제대로 된 문 하나 없는 방은 바깥세상과 차단된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굶주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작은 불편함은 묵묵히 견디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배가 따뜻해지고, 더 이상 굶주림의 두려움이 사라지자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주변을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리 집은 이래?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보았던 넓고 깔끔한 거실, 번쩍이는 부엌, 냉장고 가득 채워진 과일과 음료는 나에게 또 다른 결핍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시절, 나는 불편한 현실을 원망하기보다는 그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했습니다.
월급 200만 원, 꿈꾸던 첫 탈출
어느덧,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학원에서 조교가 되었습니다. 손에 쥔 200만 원은 마치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줄 열쇠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돈이면 이제 내가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다'라는 기대감이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연구실에서 지내며 쓰는 돈은 하루 1,400원이면 충분했습니다. 학교 식당의 700짜리 밥과 교수님들과의 회식이 전부였으니, 월급은 통장에 고스란히 쌓였습니다. 그렇게 나의 가장 첫 번째 선택은 '벗어남'이었습니다.
남부터미널 근처 오피스텔을 계약하던 날, 나는 작은 승리를 거둔 사람처럼 기뻤습니다. 구질구질했던 과거를 드디어 벗어난 것 같았습니다. 작은 방이지만 깨끗했고,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바람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집의 높이가 엄청 높았고 깔끔한 천장 아래에 있었죠.
돈이 주는 달콤함: 나를 증명하고 싶었던 순간
오피스텔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를 위한 소비였습니다. 새 냄비와 그릇, 전기밥솥, 작은 소형 냉장고, 드럼 세탁기까지 내 손으로 골라 채웠습니다. 내가 원했던 삶의 형태를 조금씩 갖추어 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집은 처음으로 내가 돈을 써서 '선택한' 공간이었으니까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묵묵히 키워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나는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었고, 그 다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구질구질한 집이 아닌 깔끔한 오피스텔, 연탄 대신 중앙난방 시스템의 따뜻함. 그때의 나에게 그것은 '자유'였고, 동시에 나를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3,000만 원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데일리호텔 창업자가 되었고,
나는 소비자가 되었다.
비교에서 시작된 욕망의 늪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정말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오피스텔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또다시 주변을 보며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친구는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에 산다던데."
"나는 아직 작은 오피스텔인데, 저 사람은 아파트를 계약했대."
돈이 주는 자유는 달콤했지만, 동시에 끝없는 욕망의 시작점이기도 했습니다. 혀가 호강하면 더 나은 음식을 찾는 것처럼, 공간에 대한 욕심도 끝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 욕망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 채, '더 나은 곳, 더 나은 삶'을 쫓아가려는 모습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여러분은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무엇을 했나요? 저는 그 돈으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피스텔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제게 달콤했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달콤함은 비교와 욕망이라는 새로운 굶주림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 삶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과 비교하기 위한 것인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리 스스로의 몫입니다.
돈의 달콤함에 빠져 과거로부터 얻은 인사이트를 망각하지 마세요. 가난했던 그 시절은 외형적이든 내적이든 나를 성장시켰고,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간절함'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간절함'이 가난한 삶을 벗어나는 것이라면 돈은 수단일 뿐입니다.
비교하지 않는 행복,
나만의 자유를 찾는 돈의 쓰임이
진짜 달콤함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