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삼복더위 땡볕이 쨍쨍 내리쬐던
그날을 D-day로. 정해 배낭을 꾸렸다.
산행 목적이 아닌 , 거사를 치를 계획이다 보니 배낭을 짊어지는 남편의 표정이 제법 심각하고 비장해 보였다. 평소 맨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를 정도로 막걸리 사랑이 철철 넘치던 사람이었기에 그날도 역시나 변함없이 실력발휘를 했다.
부어라 마셔라, 혼자 막걸리 세병을 거뜬히 들이 붓고
내리쬐는 태양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낯빛은 벌그작작, 작렬하는 태양보다 더 붉게 물들어
누가 누가 더 붉은가 겨루는 듯 보였다.
막걸리에 취한 발은 꼬일 대로 꼬여 스텝이 엉망진창 그야말로 난리부루쑤였다
서너 번의 기간 연장 끝에 시아버님 유골함을 모셔가라는 스님의 연락을 받았던 날도 남편은 막걸리 냄새를 폴폴 풍기며 절에 다녀왔다.
막걸리 = 남편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막걸리에 관해서라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의 일인자였다.
그날도 절에 다녀와서는 온갖 세상근심을 다 자닌 표정으로 막걸리를 들이부으며 중얼거렸다.
우리 아부지 요래 쪼매난 항아리 속에 갇혀 오랜 시간
쌔빠지게 고생하셨으니 이제부터라도 훨 훨 자유롭게 모셔야지..하며 눈시올을 붉혔다.
취중진담 이라니 나중에 오리발 내밀던 말든
그래, 이번만이라도 믿어보기로 했다.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술 깨면 까마득 생각이 안 나 불안해 할지도 몰라.
어버이 살아생전 섬기길랑 다 하여라, 하는 깊은 뜻은 진작에 저 버린 채 날름날름 뜯어 쓸 줄만 알았지
불효자는 웁니다의 대표적인 불효자 장본인 입에서 모처럼 사람다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 날 ,아무데나 유골을 뿌릴 수는 없는 터라 점집을 찾았더니 무지갯빛 찬란한 깃발을 흔들며 하나 뽑으라고 했다. 수리수리 마수리...얍! 신중에 신중을 기해 안정적인 느낌의 초록색 깃발을 무 뽑듯이 쑥 과감하게 뽑아 들었다.
나름 거금 들여 택일을 하고 어디다 뿌릴지를 결정하기까지 각자의 고집이 엇갈려 수시로 부딪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유골을 뿌리는 것을 '산골장' 이라고 하는데 미리 허가를 받지 않은 곳이면 불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장소 결정을 신중히 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Tv나 영화에서 보는 장면처럼 산이나 바다 등에 맘대로 뿌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공공장소나 민가로부터 200M 내외도 불법이었고 ,
본인 소유의 땅이 아닌 이상은 아무 데나 몰래 뿌려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혹여 누가 신고라도 하면 배 보다 배꼽이 더 커 질 만큼의 벌금이 나온다느니 의견이 분분했지만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고집불통 남편의 강력한 주장앞에 한 발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독재자 코스프레도 아니고 겁 대가리도 없이 모든 절차나 준법사항도 죄다 개무시하고 술의 힘을 핑계 삼아 결단력을 과시했다.
뒷산 양지바른 나즈막한 곳에 몰래, 살짝, 은밀히 뿌려 자주 찾아 뵐 것이라는 선언을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
어린아이가 세상을 뜨자 아이의 엄마가 죽어서라도 귀한 대접 받으라는 혼자만의 의미를 부여해 왕릉 주변에 몰래 뿌려 주었다고 ...
꿈에서 아이의 혼이 나타나 그런 자리에 함부로 끼어 들어왔다고 왕족들한텐가 시달린다는...암튼 그런 얘기도 들었던지라 정말 아무 곳에나 뿌리면 원망을 들을 것만도 같았다.. 상황 파악도 못 하면서 고집으로만 밀어붙이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효를 몸소 실천하겠노라 외치는 남편의 입에서는 뒤늦은 효자놀이 굳은 결심보다 막걸리 냄새가 앞다투어 달리기를 했다.
거사 당일에도 술냄새나 폴 폴 풍기며 배낭도 제대로 못 메고 휘청거리는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지 불안에 떠는 건 내 몫이었다.
가시는 걸음걸음 막걸리 기운 빌어 제발 사뿐히 즈려 밟고 가소서...빌어 줘야 할 판국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그래도 명색이 유골함 잘 모셔야 하는 상황에서 그날 하루 만이라도 맨 정신 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기대를 저 버리지 않는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맨 정신일 땐 절대 못 하는 거 ,
취했으니 난 할 수 있따! 아자...
평소에 잘했어야지, 돌아가신 다음에 몬 소용이람.
아예 안방에 떡 하니 뿌리고 모시지 왜.
하는 짓이 영 맘에 안 들다 보니 잔소리가 따발총이
되어 쏟아졌다.
ATM 기계모냥 잔머리 팍 팍 굴려 야곰야곰 뜯어 쓰는데도 선수이더니 구절절 청산유수인 남편이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두고 봐. 이제..뒷 산에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찾아
뵙지 않으면 내가 성을 갈아버린다..
진정한 효가 뭔지를 이제라도 몸소 실천할 테니
잘 봐 두라고..
아니 아니 이럴게, 아니라 움막을 하나 짓고 거기서 아예 시묘살이를 한 3년 정도 해 볼까?
아마 현대판 효자 납시었다고 뉘우쑤에 대문짝 만하게 나올지 누가 알어.
아무리 남아일언 풍선껌 이라지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가 아닌, 막걸리만 잔뜩 머금은 채 허풍 떠는
남편이 괴물처럼 보였다.
산을 향해 오르는 동안 술기운이 퍼지는지 주정에 가까운 농담을 일삼으며 자리를 잡았다.
저 밑으로는 큰길 가도 훤히 보이고 뒷쪽으로는 등산로도 있어 사람들의 발길에 외롭지 않을거라는 장담을 했다. 산 아래로는 대형 음식점도 있어 혼이라도 드나들며 시장하지 않으실 거란 말도 덧붙였다. 취해서 정신줄을 완전 놓아버린 듯 보였다.
좌청룡, 우백호의 형세는 아닐지라도 나름 꼼꼼하게 정한 명당자리에 가져간 과일이며 막걸리를 꺼내 상차림을 했다.
누구 지나가나 내가 여기서 망볼 테니 자긴 얼른
꺼내서 잽싸게, 살짝. 뿌려!
손발이 척 척 맞는 부부시기단 느낌이었다.
잠시 후, 각자의 막중한 임무를 분담하고 행동개시를 하려는데 배낭에서 유골함을 꺼내던 남편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뚜껑만 열면 되는 줄 알았던 유골함의 입구를 실리콘으로 어찌나 꽁꽁 봉인해 놨던지 손 쓸 방법이 없었다.
망치라도 있어야 깨부수기라도 하던가 칼 이라도있어 실리콘을 떼어내야 내용물을 꺼낼텐데 그야말로
대략 난감이었다.
마음만 급해 당황한 남편이 궁여지책으로 애기 주먹만 한 돌멩이를 집어 들고는 유골함을 콩콩콩 내리치는데 술기운이 퍼져서인지 헛손질만 연신 해 댔다.
하이고. 돌덩어리로 내리쳐도 깨질 똥 말똥인디. 소꿉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 우 씨
미리 좀 꺼내보고 망치라도 챙겨 왔어야지...
보고 있자니 깝깝한 마음에 타박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생각이란 건 막걸리 병 에나 모셔다니는 사람인지 원.
날은 덥지 , 하는 짓이 영 못 마땅해 궁시렁대자 첫 번째 실수를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제법 큰 돌덩이를 주워 위에서 내리치려는 순간, 유골함이 떼구르르 숲 속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아이구, 잘 한다 잘 해, 아들 놈 잘 둬 우리 아버님 떼굴떼굴 굴러가시네.
오늘 같은 날 맨 정신이어도 션찮을 판국에 술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디?
방언이 터지듯 욕이 저절로 술 술 흘러나왔다.
저 놈의 인간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뭐든 제대로
허는 게 없어.
오늘 같은 날 띠용 취해 참 잘 하는 짓이다.
떼굴떼굴 굴러가는 유골함을 지켜보던 남편은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 할 뿐이었다.
그제서야 술기운이 머리꼭대기까지 차 올라 숨이 가쁜지 결국은 그 자리에 고꾸라진 채 꼼짝을 안 했다.
살아생전 불효자였던 남펀을 대신해 굴러가는 유골함을 찾아 모셔오는 일도 결국엔 맨 정신인 내 차지가 되어버렸다.
근처 야산에 몰래 뿌리려던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고 수목장 영구안치로 모시게 되었다.
돌덩이에 빗나간 유골함이 축구공 신세가 되어 풀 숲으로 굴러가는 상황에서 결코 웃어서는 안 되는 거 알면서도 어이없고 웃기기도 해 혼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느 한 여름 낮의 꿈같은 유골함 사건은 살아생전 결코 잊을 수 없는 웃픈 추억이 되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