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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쟁이글쟁이 Mar 14. 2024

점 집 아 기!

간혹 한 번씩  마주치던  점 집 아기 엄마는 늘

깊은 그늘에 가려진  쓸쓸모습이었다.

짧은 뽀글 머리에  작은  눈 에다,  말 수도  적었는데 항상 진분홍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살짝  촌스러우면서도 어찌 보면  수더분하고 소탈해 보이는 것이 마치 분꽂  같았다.

수줍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그 꽃 처럼 소리도 없이 배시시 웃을 때면 그 수줍음 뒤로  뿌리도, 마디도 굵은 분꽃의  꼿꼿함이 느껴졌다.

가끔씩 전파사에 나와 앉아 있는 날은  멍. 하니 바깥쪽만 응시한 채  지긋이 웃는 모습이 하화탈을

 보는 듯했다.

어지간해선  말도 한마디 안 섞는 여자가  뒷 골목 점집을 운영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객이 아닌 관계로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냥 동네의 많고 많은 점 집 중의 하나라고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


그 집 남편의  1인 사업장인 전파사 뒷편으로  쭉 들어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 끝에 붉은 깃발이 꽂힌 대문이 나타났다;

어수선하고  음침한 분위기  탓 인지 어지간해선 그 골목에 발 들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전파사 여닫이 유리문에는 일 년  삼백십오일  언제나 한결같이 ㅇㅇ교회  간증 집회, 치유집회, 전도 축제

등 과 같은 대형 포스터가  붙박이로 붙어 있었다.

간혹  바뀐 듯 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날짜만 변경되어 다시 똑같은 자리였다

주말이면 작은 키에  말쑥한 차림으로  007 가방을

들고 회로 향하는 그 집  남편의 모습을 자주 볼수 있었다

얼굴 전체가  단체로  앞 다투어 웃는 스마일 상 에다

친절하기 까지 해  스마일 전파사로도 불렸다.

실제로는  그 집 아이 이름을 딴 ㅇㅇ전파사였는데

 쥔 장 소문이 워낙  좋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 불리는 것 같았다.

오며 가며  어쩌다 가게 안을 들여다볼 때면  무념무상으로 앉아있는 아기엄마나 혹은 분주히 움직이는  스마일 남편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럴 때면 혼자 속으로  한가한 점쟁인가 보네.

하는 생각이 들았다.


어느 날 인가 , 일부러 작정하고 그랬던 건 아니고  지나다 전구도 하나 살 겸 문을 쓱 열고  들어갔더니  움찔 놀라는  아기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은 전구알을  만지작거리며  교회에 열심인가 보네요 항상 저런 게 붙어 있더라구요..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자 그냥 배시시 웃기만 할 뿐 별 대꾸가 없었다.

스탠드용 전구 몇 개를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오며 가며 심심하면 들러서 놀다 가라길래  배시시가 아닌, 활짝 웃는 것으로 화답을 해 줬다.

돌아서 가는데  문 밖 까지  나와서 한참을 바라보는

 것 같아 뒷통수가 근질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며 뒷모습을 훔쳐 보는 걸까,

누군가가 그러더라. 뒷모습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고.

아마도 사람 뒷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해 보인다는  대답을  해 줬던 것  같다.

남편은 교회로,  아내는 뒷집 점쟁이로  요상한 조화였지만  그야말로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보니

다들 남에 일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는 듯 했다.

흔히들 점집을 찾아 갈 때는  일이 안 풀린다거나 깝깝할때,   혹은 내 선택의 망설임에  부딪쳤을때 작은 조언을  얻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서로들 무관심이 정답이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고  미션스쿨을

 다녔으면서도  껀수만 생기면 점 보러 잘 다니던 엄마의 영향 탓 인지  자연히 그런  쪽으로 기울어지는 피사의 사탑  수준이었다.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기독교에요,  근데 점 보러도 잘 다녀요...하면  대부분이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키는 대로 기독교라고도,  불교라고도 하면서   때에 따라  종교를  다르게 내세웠던  엉터리 방터리

오리지널  사이비였다.

티비 프로그램에 유명 들끼리 종교에 관한 썰전을 펼치는 자리에서  목사나 신부라  안 하고.

 다  ' 님' '자를 붙이느냐고...

그러자 상대방  연예인이  맡 받아치며 하는 소리가

솔로몬 급 이었다;

님 자를 빼고 목사나 신부라고 호칭하면 스님은

'스'  냐. 하던 일화가 너무 웃겨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는데 실제로 '스 '  냐 했던 그분의 아버지가 아마 목사님 이었다지.


하루는 남편이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교통사고를 냈는데 어찌하냐고 안절부절이었다.

사고를 냈으면 수습을 해야지 이러고 있을 게제냐

자초지종을 물으니 넋이 나가서는  점쟁이 아들을 치었다고 했다.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갑자기 전파사 앞에서 확 튀어 나오는데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았고 애는 저만치  튕겨 나갔다고 좔좔좔..

애 엄마가 바로 쫓아 나와 애를 일으켜 세우더니

아무렇지 않다고, 그냥 가라며 밀어붙이더라고 했다.

병원에 가자는 것도, 사고접수를 한다는 것도

막무가내였다고.

결론은 다시 가서 잘 설득해 병원엘  꼭 데려가라는 요지였다.

그 길로 전파사로 가니 애는 앞에서 겅중거리며 뛰고 있었고 안으로 들어서자  배시시 웃는 애 엄마 모습이 보였다.  사고내용을 전하며 우리 집 남편이라고 말 꺼내기 무섭게   병원엘 뭐 하러 가느냐, 기도하면 뭐든 다  낫는다며 고집을 부렸다.

애가 워낙  작고 가벼워 튕겨나가도 다치지 않았다며

그것도 기도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안된다...요지부동이었다.

가끔 놀러 오라는 언질을 받는 것으로 교통사고는 수습되었고  십년감수한 마음을 쓸어내렸다.

집에 돌아와 얘기를 전하며 기도 하면  된다더라

그 집 아빠가 얼마나 교회에 열심인데 ,점쟁이 아들

소리 말라는. 충고를 했다.



전파사에  길 터 놓기 바쁘게 틈만 나면 들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다 보니  훨씬 친밀감이 느껴졌다.  잘 웃고 속내를 터놓는 걸 보며  그동안 알게 모르게  편견이었던  마음에  리를  내리쳤다.

워낙 조심스러운 성격인지  말도 조곤조곤, 억양에

전혀  변화가  없었다.

글과 내용에 사연이  담겨 있어  수행에 바른 길잡이가

된다는 경문 읽듯이  도가 튼 모습으로 말 하는 동안 자세 한 흐트러지지 않았다.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 것을  남 얘기 하듯 술술 풀어내기도 했는데  시아버지 되는 분이 목사(님)에

 친정엄마는  점쟁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조합인지 원..

 집안이  길길이 뛰며 뜯어말리는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혼하는 동시에  양 쪽을 다 끊어 내니 홀가분하더라며 배시시 웃었다.

점집 여자는 소리 없이 배시시 웃는 게 버릇인가 싶었다.

남  가정사에 뭐라 관여하기도 애매하다 보니 졸지에 심각하게  경청을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어려운 선택으로 한  결혼임에도  행복하긴  커녕,

몸은 천근 만근,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아이가 생기면 자꾸 잘못되다 보니  세월만

확 지나가 버리더라고..

뒤늦게 친정엄마와  교류가 생기면서 한 번씩 마주할 때면 섬뜩한 소리로 겁을 주었다고 했다.

 왜 니네 집에만 오면  구석구석에서  아기 모습이 보이는데 어찌나 울어대는지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그 소릴 들을 때마다 잘못된 아이들이 떠올랐는데

너댓명은 되는 것 같아 한 번은 우스갯소리로

 엄마 , 애들이  몇 명이나 보여?

 물어 본 적이 있다고도  했다.


원래는 무녀가 아니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친정엄마를 신엄마로 모시며 그 길로 들어선 지

 몇 년  안 된 초짜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그 후로  기적인지  삼신할덕 인지 여곡절 끝에

다시 아이가 생겼는데  혹여라도 잘못될까 싶어 늘 노심초사하며 지냈노라고  했다.

사는 게 무섭고 현실에 안주하는 일상이 두려워  두 돌까지 아이를  숨기다시피  키웠다는 얘기는   동정심 유발하고도 남았다.

그래서 하회탈 웃음 뒤로  그늘지고  침울해 보였나 생각하니  가운 생각마저 들었다.

늦은 나이에 간신히  얻은 자식이다 보니  점집 애기

소리가 싫어  더 숨기게 되더라고 말 끝을 흐렸다.

기구한 운명이려니  하면서 남편은 교회로,  본인은

무녀라는 직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끝내는 눈물을 보였다.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착잡해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엔 참 별일도 다 있구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으로도 멀어진다지만  가까이에서 자주 보니 마음이 먼저 다가가는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작은 고민이라도 생기면 사주를 들이미는 재미도 붙이며 나름대로의 고민 타파를 했다.

어떤 때는 밥 하다 말고 앞치마를 두른 채 전파사 골목을 냅다 가로질렀다.

무슨  죽기 살기도 아니고  그런 모습을 마주 대하며 서로 껄껄 웃는 재미에도 빠졌다.

웃는 듯 우는 듯 소리 없이 배시시가 아닌, 진짜 큰소리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이런 인연으로  점집여자와 친구 먹으며  오랜기간  한동네 살았는데  재개발이 되면서 다 뿔뿔이 흩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섬그늘에 굴 따러 간 엄마가 아니라  점 보는 엄마밑에서 자란 점집아가는 오랜 세월이  흘러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되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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