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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뻥쟁이글쟁이 Mar 10. 2024

닭 잡아먹고 삐약삐약!

나  가출할 거야.

타고난 성품 자체가 살갑고 싹싹했던 우리 집 막냇동생은  숨통 트인 현실에서 원 없이 응석 부리며 보살핌도 맘껏 받던 대상이었다.

엄마를 빼다 박은  붕어빵 판박이였는데  조신한 생김새와는 달리 암팡지고 까탈스러운 반면나름대로의 애교쟁이 막내딸 노릇을 톡톡히 해 냈다.

어느 날 학교 앞에서 지 손바닥 반 만한 병아리

마리를 사 들고  와서는 금방이라도 꼴까닥 넘어갈 것만 같은 여린 목숨 앞에서 안절부절이었다.

수시로 들여다보며 생사 확인을 했고  아침,저녁  

우쭈쭈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도 모자라 학교 갈 때면

 엄마한테  신신당부를 했다.

"얘네들 죽으면 안 되니까 나 올 때까지 잘 봐줘야 해..",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 앞에 생선 맡기는 꼴이라는 걸  아무도 예상 못 했다.

2대 독자로 외롭게 자란 내 아버지는 엄마한테서 느낄

수 없는 잔 정이  많은 이었는데 사람이든 짐승이든, 심지어 풀 한 포기조차도 살뜰히 가꾸고 보살피는

 것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

고질병 같은 술주정으로 인해 자식들에게 인심을 잃고 쪼매 거시기 한 신세이긴 지만 그 섬세하고 따뜻한

 속 정을 가족 누구도 헤아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버지 인생의 가장 큰  과제였다.

주정이 특기인 아버지는 평상시 조용한 성품이었으나

 술에 취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잠도 멀리 쫓아내면서 따따블로 열변을 토하기 일쑤였다.

아이구  웬수 같은 인간아,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듣기 싫으니 잠이나 좀  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주정의 종류도  각양각색,  가지이겠으나  

내 아버지의  주정 스타일 특징은!

 잠을 기피한다는 것,

같은 소리 백만  쯤은 반복한다는 것,

술 김에 정신 줄이 잠시 외출한 상태에서

주머니  탈탈 털어 용돈을  마구 집어 준다는 것,

아이쿠야, 지난  밤에 내가 뭔 짓을 했던고...

다음 날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

웬수니 지수니 하며 마가 미치고 팔짝 뛸 주정뱅이 특유의 요소요소들을  고루 다 갖춘  케이스였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귀하고 이쁘다는데 홀홀 단신으로 외롭게 자란 처지이다 보니 자식에 대한 애착심이야 오죽할까 싶었지만 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가로막고 있었다.

술의 ㅅ 자만 기웃거려도  엄마의 잔소리와 더불어 아이구 이년의 팔자야...하는 신세한탄까지 곁들인  폭탄주로 대신해야  했다.

하찮은 병아리 새끼조차도 죽음으로 인해 어린 자식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웠던지 온갖 정성을 쏟아 키웠다.  잘 먹이고 보살핀 덕분에  기운이 넘치는 수탉들은 펄떡펄떡 날아다니며 기를 쓰고  력질주로

막내를  쫓아다녔다.

꼬꼬댁 꼬꼬꼬  소리를 목청껏 내질러 겁을 주기도 하고, 주위를 맴돌며  쪼아대는 통에 기겁을 하게 만들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어린 주인을 만만히 보았던 탓일까, 늘 울상이 되어 닭에게 쫓기는 신세를 면치 못 했다.

아침이면 엄마 치맛자락 붙잡고 숨어 나가는 것도 모자라 집으로 돌아올 때쯤 이면 담벼락에 붙어 아주 작은 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숨어서 불러도 귀신같이 목소리를 알아듣는 건지

두 놈이 기세등등 나타나는 바람에 하루 두 차례 이상은 눈물바람이었다.

지가 거둔 작은 생명체 공격으로  눈물을 쏟을 망정  오늘도 무사히  살아 있음에 안도하면서 세상 다 가진 흐뭇한 표정으로 환하게  었다.

마치 내 새끼 살아 있어 고마워...하는 표정이었다.

" 그깢 눔의 닭 새끼가 잡아먹는다니,

 무섭긴 뭐가 무서워"

말은 그리 하면서도 뒷꽁무니에 매달려 숨어 다니는 막내의 재롱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어김없이 담벼락에 기대어 엄마를 부르던 어느 날 인가,

마당을 기웃거리며 살금살금 들어왔으나 여지없이 나타나 쪼아 댈 그놈의 우렁찬 꼬꼬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순간 후련한 마음보다는 불길함이 맴돌았다.

극성부리며 잡아먹을 기세로 쫓아다니던 닭 놈 대신에 기분 좋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때 엄마가 음흉한 웃음을 띤 얼굴로 나타나더니

대단한 일을 벌인 것처럼 자랑스럽게 브리핑을 했다.

"  얘,  이제 숨어 다니지 않아도 돼 "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맘 놓고 드나들어야지. 원,

내 집에서 허구한 날  쫓겨 다닌다는 게 말이 되냐..

무슨 얘기인지 영문을 몰랐던 막내는 맛있는 냄새에 현혹되어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것들 내가  삶아버렸다,  다 컸으면 잡아 먹어야지

언제까지 키울 거냐,  더 키워 장가보낼래?

쫓겨 다니는 신세도 한심하고 그게  어디 할 짓이냐..."

좔좔좔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에 거의 반 기절 상태로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들기 시작했다.

엄만 사람도 아니야,

어떻게 걔네들을 잡아먹을 수가 있어?

리도 키워서  어느 날 다 잡아먹겠네.

식인종  엄마 밑에서  나 안 살아,  

이  딴 집 나가 버릴 거야.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던 엄마를 상대로 집 나가겠노라  호언장담 하며  게거품을 물던 아홉 살 인생은  그 후,

십수 년이 지나 정말 집을 나가버렸다.

흐미나, 무써운 모녀 사이!


아무리 닭에게  쪼이며 쫓겨 다니는 신세라지만 산 생명을  제 손으로 처음 사 들고 와 그만큼 키우는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터라 꺼이꺼이  목 놓아 울며

지랄 발광을 했다.

졸지에 온갖 정성을 쏟으며  간혹  대화 상대도 되었던  동무를 잃어버린  아버지는 허전한 마음으로 마당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 쉬었다.

처음 데려 올 당시 눈도 못 뜨고  삐약삐약 울던 놈 들이라 삐약이 원,  삐약이 투로 이름 지어 부르며  숨바꼭질도 하던 상대였다.

원, 투야.. 부르면 알아 들었다는 듯이 마당을 가로질러

겅중겅중 날아오르는 모습에 시름을 잊기도 했다.

재롱떨며 삐약삐약 하던 소리가 맴돌아 그날은

귀한 안주를 앞에 두고도 그 좋아하던  술을 찾지 않았다.  오전까지만 해도 앞에서 알짱거리던 녀석들을 목구멍에 도저히 넘길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두 놈이 푸드덕 거리며 힘차게 꼬꼬댁 꼬꼬꼬를 외칠 것만 같아 왠지 허전하고 쓸쓸했다.

막내가 닭 삶은 솥단지를 쏟아 버린다며 사납게 굴었으나 엄마는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어여 먹기나 하라며  강제로 숟가락을 손에 쥐어 주었다.  " 에미 덕에 이제 숨어 다니지 않아도 될 텐데 뭐가 서러워  통곡이냐,  니 에미라도 죽었니?

아침에  쫓겨 나가 저녁엔 숨어 들어오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깟 닭 새끼 때문에..."

자식의 슬픔이야 안중에도 없는 듯 한 말투에  게걸스럽게 솥 바닥까지 박박 긁으며 보기에도 민망

할 만큼 궁상을 떨었다.

비단 닭 뿐만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것이 한참 거꾸로 돌아가는 집구석임에 틀림없었다.

비록  둘째가라면 서러 울 만큼  술주정의 대가 이지만 아기자기하게 가꾸며 키우는 걸 좋아하던 아버지에 비해 늘 가로 뛰고 세로 뛰며 억척에 극성스러운 엄마를 보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무색할 만큼

전혀 딴 사람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난 절대로 그리 살지 말아야지. 하는 혼자만의  다짐을 하면서도  고된 인생의  절규인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가슴 저 편에  쌓였던 기억들이    하나, 둘 오를때 마다 그때의 엄마 심정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던  이후, 막내의 심통은

장기간 계속되었고  장본인인 엄마는  그런 딸래미를

 달래기 위해  다시  병아리를  사 들였다.,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 되리라는 걸 뻔히 알지만

키우는 정성에, 커 가는 재미에 뿌듯함을 느끼며

다시 또 삐약이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닭 잡아 먹던 그 날의 사건은  희미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고  이제는 흔해 빠진  치킨이라도 시켜 먹는 날이면 그때의 엄마 모습이

 떠 올라  먹먹해지는  마음도 떨칠수가 없았다.

 

엄마 생각 난 김에

저 하늘 나라로  치킨 배달 시켜 드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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