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도 없는 쌍꺼풀 수술이라니!

안달복달 반년 차..

by 뻥쟁이글쟁이

아주 오래전 눈병이 난 건지 어쩐 건지 왼쪽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계속 닦아내도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자동으로 흐르기를 반복,도 닦아대니 나중엔 눈동자까지 얼얼한 게

눈 알이 다 헐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날은 집안 결혼식이 있어 지방 어느 웨딩홀 행차를 앞두고 있던 터라 망가진 눈에 눈물 줄줄 흘리며 안대를 하고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잠시 고민을 했었다.

아들만 넷인 먼 친척 뻘 어르신의 4번 타자 결혼이었는데 아마 두 번째이었던 것 같았다.

비밀인 듯 비밀 아닌 예식을 보며 숨긴다고 숨겨질 일은 아니었으나 모두들 쉬쉬하는 가운데 신랑입장을 큰 박수로 맞이해 달라는 시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쟤가 아마 처음이 아니지?

저 집구석은 어찌 된 게 다 두 번씩이여.

지 애비부터 그 모양이니 아들 넷이 다 사이좋게 두 번씩 가는 거라는 내 시어머니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박수소리와 뒤섞이던 순간이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도 아니고 하염없이 줄줄 흐르던 눈물을 훔쳐내며 당황 해 하던 중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두 번째 설명이 이어졌다.

그 댁 어르신은 바람이 나 두 번, 1호도 바람 나 두 번, 2호는 사별, 3호 역시 바람 나 두 번 했으나 현재스코어 혼자라며 그 와중에 4호 또한 바람피워 새 장가 행진을 위풍당당하고 있았다.

그래도 사별한 둘째가 젤 양심적이고 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에구 쯧쯧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눈물이 줄줄줄 ,뉸은 울고 입은 웃던 해괴한 상황이었다.

그날 이후, 안과 진료에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동네안과만 서너 군데 순례하며 냅다 눈물만 닦고 또 닦는 고역스런 나날이 이어졌다.

손에 휴지를 달고 산지 보름 정도 지나니

어느덧 눈물이 스르르 잦아들었고 벌개진 눈을 보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낫긴 낫는구나, 중병이 아닌 이상 저라고 별 수 있을까,

참으로 기특한지고!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 어느 순간 한 쪽만 짝눈으로 변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꺼풀이 크게 생기는 동시에

그것이 눈을 짓누르는지 눈동자를 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름하야, 안검하수증

아이고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내 사전에

이런 눈을 갖게 될 줄이야..심난하고 우울한 삶이 이어졌다.

동네 아는 엄마가 언젠가 속삭이듯,

언닌 눈도 이쁘고 말하는 것도 이쁘고 목소리도 이쁘고, 걷는 것도 이뻐.

아직 여러모로 쓸 만 햐...하며 묻지도 않은 것을 지 자랑인 양 얘기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눈이 망가지다니.. 하이고 너무 오래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눈이 그 지경이니 사람 만나는 것도 버겁고

눈을 마주 할 용기도 없었고 그냥 우울한 그 자체였다.

병원이나 주사랑 안 친하고 어지간해선 약도 가까이 안 하는데 망가진 눈을 어찌하오리까

심난하기만 했다.

스스로 낫길 바라기는 언감생심, 의느님의

기술적인 손길을 거쳐야만 해결되는 병이 틀림없었다.

차일피일 미루던 중, 1호 언니의 손녀가 대학입학 기념으로 쌍꺼풀 예약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40년 차 경력의 그야말로 신의 손,

1호네 딸렘이 대학입학 당시 갔던 병원이라 다시 거길 택했노라고 자신감 뿜뿜이었다.

병원이라면 소 닭 보듯 멀리하던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호님 앞세워 바로 견적에 돌입했다.

누구에게든 친근한 말투의 반말로 일관하는 원장님의 상담이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양쪽 눈을 찔러가며 라인을 만드는가 싶더니

쌍꺼풀 수술 후 망가진 쪽 눈매 교정을 할 꺼라 했다.

예약 기간 일주일 전, 1호네 손녀는 거뜬히 쌍꺼풀에 앞 트임까지 하고는 만족스러운 사진이 마구 날아왔다.

풋풋하고 싱그런 방년 19세, 일주일이 지나자 붓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눈매가 훨씬 순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뽀얀 피부와 더불어 두툼했던 눈덩이가 선명하고 예쁜 눈으로 변했다.

성공적인 눈을 보며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대망의 그날이 다가왔고 두두두두, 전혀 긴장을 안 한 척 씩씩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고정멤버 4인방인 남편과 1,2호 언니와 더불어 병원을 들어서자마자 세수를 하고 사진을 찍고 번쩍이는 원형 불빛을 바라보며 수술대에 누웠다.

긴장 안 한 척, 혼자 몰래 심호흡을 크게 하는데 혈압이 200에 170 이라며 왜 혈압약 먹는다 소리 안 했느냐는 간호사의 꾸중이 들렸다.

혈압 약 안 먹는데요...하니 이상하네 하며

다시 혈압을 재는데 그래도 높은지 삼세번을 체크 한 담에야 130에 몇이라나, 긴장을 많이 해 그러나 보다는 소리가 들렸다.

양손을 침대 난간에 포박하고 잠시 생선 굽는 냄새가 나는 듯한 가물가물 꿈결 같은 순간이 이어졌다.

어느 꼭대기에 다다르자 허깨비가 된 듯한 아주 가뿐한 몸이 되어 붕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육체이탈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곧이어 기차가 빠 앙 기적소리를 크게 울리며 지나는가 싶더니 * *님 눈 떠 보세요...하며 위아래, 양 옆을 보라는 주문이 이어졌다.

마취로 가물가물 ,비몽사몽인 가운데

바느질이 의느님 눈에 안 찼는지 , 뭐가 잘못 됐는지 망가진 쪽 눈을 다시 뜯고 꼬메는 느낌이 들었다.

따끔거리기도 하고 살금살금 타는 냄새도 계속 나는 것 같고..두번 다시 못 할 짓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끝났다며 일으켜 세웠다 . 휘청거리며 나오니 2호가 특유의 어머머머 웬일이니를 연발했고 남편과 1호가 측은한 눈빛을 발사 헸다.

장장 3시간 반, 반평생 훨씬 지난 시점에 처음 긴 시간 마취를 하고 수술이란 것을 하고.. 긴 긴 세월 병원문턱을 용케도 잘 피해 살아온 듯싶었다.

우웩거리는 속을 달래느라 휴게실에 잠시 누워있자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잘 참아 내 보자, 혼자 위로를 하고 결심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물 한 모금 마시고 약을 털어 넣는 동시에 좍좍 토하는데 나중엔 하얀 물까지 다 끄집어내며 있는 대로 속을

헤집었다. 오장육부가 뒤틀린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싶어 약 먹기도 무서웠다.

어느 약이 문제인가 싶어 약사 조카에게 처방전을 찍어 날리니 한눈에 척, 제일 큰 알갱이 약을 부셔 먹어보라고 했다.

항생제가 안 받을 수 있으니 부셔 먹으면 위에 부담이 덜 된다나, 암튼 약사님 지시를 착실히 따랐다. 그러고도 또 토할까 무서워 여러 종류의 약을 한알씩, 한알씩 간격을 두고 복용했다. 마취나 항생제에 요래 취약한 줄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며 큰 수술이나 무슨 일이 닥치면 어찌 버티려고 그리 예민하냐는 남편의 염려가 뒤따랐다.

아픈 것 보다는 차라리 그냥 꽥하는 게 나을지도...하는 망언이 절로 나왔다.

정말 견디기 힘든 만큼 아프면 그것을 고역스럽게 참고 견뎌내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내 성격상 빠를 것 같았다. 수술 후 3일 동안은 거울을 보지 말라는 원장님 지시를 무시하며 수시로. 들여다볼 때마다 이방인을 보는 듯한

낯선 모습에 당혹스러웠다.

아이들을 낳고도 딱 10킬로 늘었던 몸무게가 3일 만에 원 위치 되는 동시에

전혀 붓지 않았었는데 터질 듯이 팅팅 부은 얼굴이 무슨 괴물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언제 사람 꼴이 될라나~나중에야 듣게 된 1호 언니의 그때 심정이 그렇더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짝눈인 것에 슬슬 꼭지가 돌아가면서 수시로 병원에 항의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깐씩 나갔다 마주치는 사람마다의 반응도 천차만별이었다.

양쪽을 해야지 왜 한쪽만 했느냐...부터

눈이 왜 그리 됐는지 차마 물어보지도 못하겠더라 하는 소리에 이어

이쁜 눈 망쳐놨다는 둥, 간혹은 부기 빠지면 괜찮아질 거라는 전혀 괜찮지 않은 빈말을

해 주기도 했지만

이미 짝눈으로 자리 잡은 게임 이웃이다 보니 하나도 위로가 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모자에 시커먼 선글라스 장착하고는 집 주변 잠깐 나가는 것 외에는 정말 눈 병신이 되었구나 싶어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 앞섰다.

눈이 뻑뻑하니 거북스러운 데다 더 뚜렷해진 짝눈으로 사람을 마주 할 용기가 점점 더 없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최소 3개월에서 6개월까지 기다려 부기가 완전히 빠져야 한다길래 눈만 뜨면 검색에 들어갔다. 몇 날 며칠 검색한 결과, 눈 감았을 때 라인이 같아야 정상이라는 것을 터득했다. 감아도, 떠도 확연히 차이 나는 것이 우 씨 난 망친 눈임에 틀림없었다.


석 달에서 6개월은커녕 혼자 조바심에 간신히 두어 달이 지날 무렵 병원 가 한바탕 땡깡을 부리고 하소연을 하고 다시 예약을 잡고, .. 안검하수인 쪽 눈만 두 번 집는 재수술을 받기로 했다. 한쪽 눈만 처진 경우 두 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이미 원장님 계획이었는지 이런 저런 설명 없이 라인 한번 척~찔러보더니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처음 수술 땐 절개로 하느라 이마를 당겨 득득 갈아내는 느낌에 눈썹밑으로 쫙 찢어 양쪽 눈꺼풀을 째고 꼬맸으나 이번엔 한쪽만 두어 군데 구멍을 내어 집을 거라 더 아플 거라고 마취도 강하게 한다는 설명이었다.

혹여 마취 한방에 가 버리는 건 아닌가,

혹 그대로 못 깨어나고 코마상태가 되는 건 아닌가 갑자기 불안이 밀려왔다.

오래전 보았던 코마라는 영화가 자꾸 떠올라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짝눈으로 살 걸, 앞으로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다고 칼을 대고 째고 꿰매고 두 번째 이 짓을 하는 건가 싶었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스스로 또 한 번

달래고 위안 삼으며 40분 정도를 견뎌냈다.

혈압약 어쩌고 하길래 먼저도 그랬었죠, 한마디로 일관하고 다시는 오르고 싶지 않았던 푸르스름 불 빛 수술대에 누웠다.

이번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길고 컴컴한 골목길을 마구 달려 나오다 환한 빛이 촥 반겨주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지 눈이 욱신거리면서 쑤시고 아팠다. 시리고 아픈 것도 모자라 눈동자는 핏줄이 터졌는지 뻘겋고 눈물이 저절로

마구 흘러내렸다.

먼저 통증은 쨉도 안되게 많이 아픈 것이

핸폰도 어른어른 두 겹으로 보이고 저 끝

발 밑에 시계도 안 보이는 것이 신경을 잘못 건드려 놨나 싶게 불길한 생각이 고개를

번쩍번쩍 들었다.

역시 3일은 거울을 보지 잘라는 지침이 있었지만 아예 거울을 벗 삼아 들여다 보며 떴다, 감았다 흘겼다 치떴다 혼자 쌩쑈를 부렸다.

제발 이번엔 성공적이길, 두 번 다시 그 자리에 눕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는 간절함이 이어졌다.

수술 하루 만에도 먼저보다는 훨 양반이었고

사람 눈 같은 모습에 이제야 내 눈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터질 듯이 팅팅부어 벌겋게 변해버린 눈덩이도 거뜬히 참아낼 수 있었다.

약간의 비대칭은 여전했으나 이제 2주 차, 부기가 빠지려면 최소 3개월이라니 이번엔 난리 부르쑤 쳐 대지 말고 닦달도 하지 말고 조신하게 기다려 보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눈 뜨면 여전히 거울부터 들여다보는 게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얼굴이 무기이고 세상 겁 날 것 없다는 불혹의 나잇대에 쌍꺼풀진 눈을 썩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팔자에도 없을 쌍꺼풀 수술이 머선 일이고!

하안검수술 후, 눈매교정이라는 진단서를 보며 새삼 얼굴 어느 부위든, 어떠한 시술이든 수술이든 받는 사람들이 더없이 위대해 보였다.

간뎅이 부은 년이란 소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으면서 막상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내 간이 개미 간 사이즈만이나 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 혼자 씁쓰름하게 웃기도 했다.

병원 문 턱 앞에서만은 쫄보에 겁보였구나

새삼스러웠다.

자라면서 매사에 무서울 것 없고 거칠 것 없었던 나는 어디로 가 버렸을까.

나이 듦에 따라 어떠한 일을 하기에 앞서 자신은 없어지고 두려움만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싶은 서글픔이 껑충 달려 나왔다.

인생무상을 절실히 느끼는 거의 반년의

시간 속에서 망가졌던 눈은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고, 푹 내려왔던 눈꺼풀을 당겨 꿰매자 시야가 넓어진 탓에 잘 보이고..

아, 누군가 그랬지 참.

진작 할 걸 왜 뒤늦게 수술했나 모르겠다고.

세상이 이리 잘 보이는 줄 예전엔몰랐노라고.

반만 보이던 것이 앞이 훤하게 너무 잘 보여

온 세상이 밝아 보이더라고.

어버이날 선물이 안검하수 효도수술이라는

말을 들으며 기발한 발상이구나 싶었다.

한동안 수술에, 재수술에 안달복달하느라

집귀신이 되어 딩굴거리다 보니 일상이 여유로운 게 마음도 넉넉해지는 기분이었다.

바쁘게 늘 시간에 쫓기며 허덕이던 것을 잠시 내려놓으니 이 공간에도 머무를 수 있음에 뿌듯함까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주 오랜 세월 지나 돌이켜보니 눈물 죽죽 흐르던 눈 병 시절, 눈을 무지막지 비벼대서 근육에 힘이 떨어지는 불상사로 안검하수가 생긴 거나 아닌지~순간의 실수로 늦으막이 멍멍 고생 지대로 하는구나 싶었다.

지나간 뒤에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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