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by 뻥쟁이글쟁이

어릴 때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듯,

그런 장면이었다.

나뭇가지 사이사이, 작은 풀 숲도 헤쳐가며 애를 썼지만 네모 모양으로 접은 종이쪽지를 하나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른 것 같았다.

"경희야 , 이 쪽으로 와 봐..."

정분이가 불러 가 보니 돌멩이와 흙이 살짝 덮인 사이에 보물 딱지표 세 장이 나란히 숨어있었다.

자기는 이미 몇 장을 찾은 터라 나더러 그걸 다 가지라고 했다.

어떻게 그러나며 하나만 갖는다고 벅벅 우기자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쓰읍...하더니 굳이 손에 다 쥐어주고는 총총총 사라져 버렸다.

하늘하늘 코스모스 같았던 그 애를 그렇게

또 놓치고 말았다.


체형도 호리호리, 얼굴도 조막만 한 데다

동그란 눈을 가진 정분이는 여고시절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어디든 함께 했고, 학교 앞 근거리에 있던 그 애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딸만 넷 중 막내였는데 호탕한 성격에

아무한테나 친절하고 상냥하고,

덜렁거리는 선수에다 그 애 표현을 빌리자면 반 미친년이었다.

가장 가까이 살면서 지각을 밥 먹듯이 했고

머리도 늘 쉬는 시간을 이용해 단장했다.

눈곱만 떼고 온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에구, 이쁘니 그나마도 봐 넘기지 소리가 주변에서 자주 들렸다.

같은 스카우트를 하며 학교 행사에도 적극적이었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매주 월요일이면 학교 앞 사거리에서

단복 착용 후, 교통정리를 했는데 버스 안의 남학생들 환호가 끊기질 않았다.

휘파람 소리에 이어 비행기모양으로 접은 쪽지가 사방에서 날아왔다.

그뿐 이 랴!

남고와의 미팅 주선하는데도 앞장섰고

애들 끌어모아 일일 찻집이며, 티켓판매며 동분서주로 바빴다.

후뚜루마뚜루 걸걸한 성격대로 요리조리

따지고 재는 거 없이 그냥 밀어붙였다.

2학년이 되어 반이 갈라졌는데 우리 교실은 맨 앞이었고 12반이었던 그 애는 복도 끝이라 쉬는 시간이면 달리기 하듯 서로 뛰었다.

고 잠깐 사이에도 무슨 수다가 그리 많은지 수업 종소리가 들리면 아쉬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2학년 담임은 까칠하고 새침한 노처녀 선생이었는데 한 달여 지났을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 이름과 혹은

거리두기 대상인 경우를 염두해 이름을 적어 제출하면 참고하겠다는 주문을 했다.

교우관계에 나름 관심을 쏟으며 오작교 역할을 해 준다 하니 그런가 보다..

따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학기 초라 같은 반 아이들 파악도 안 된 상황에서 누구랑은 친하고 싶고, 누구랑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자체가 부담스럽고 거슬리는 건 사실이었다.

1학년때의 교우관계가 굳건하게 자리매김했을 때라 서로 서먹한 시점에서 딱히 어느 특정인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크지 않았다. 순간 친하고 싶은 사람보다는 저 애를 경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뇌를 강타했다.

내 자리 사선으로 뒤에서 일거수일투족 감사하듯이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다 몇 번을

어설프게 눈길 피한 그 애를 목표물로 정했다. 뒤통수가 따가워 한 번씩 돌아볼 때면 일 저지르다 들킨 듯이 회피하는 시선이 영 꺼림칙하고 불편했다.

하필이면 같은 성씨인 그 애를 경계대상 1호로 정해 또박또박 이름을 썼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담임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교무실로 향했다.

대부분의 몇몇 아이들이 누구누구랑 친해지고 싶다 써냈는데 왜 친하고 싶지 않은지, 왜 그 아 이름을 썼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왜??? 에다 특히 힘을 주는 것이 못 마땅 해

내가 뭘 실수한 거냐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갑자기 확 기분이 상하려던 찰나에 담임이 넌지시 얘기를 꺼냈다.

"은미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꼭, 꼭

을 강조해 써냈는데 왜 넌 그 애를 멀리하고 싶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순간 뭔가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가슴까지 철렁했다.

아뿔싸,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자꾸 뒤에서 쳐다보다 눈길 피하는 게 불편하더란 얘기를 하니 담임이 소리 내어 깔깔 웃었다.

그 애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몰래 쳐다본 것이었는데 그걸 내가 오해 한 모양이라고 했다. 오해를 풀고 둘이 잘 지냈으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면담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째리듯 뒤돌아보며 큰 눈 희번덕거리던 걸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벌인 일, 내가 수습하는 데는 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종례 후, 우리 얘기 좀 할래?"

이번엔 뒤돌아 보며 째리는 것이 아닌,

따뜻한 눈빛으로 쪽지를 건넸다.

쌍꺼풀진 큰 눈으로 환하게 웃는 그 애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확 째릴 땐 겁먹은 듯 움추러들던 눈빛이 이렇게 어여쁘고 맑은 소녀의 모습이란 걸 그때 처음 느꼈다.

분수대 옆 목련이 흐드러지던 그 순간 이후,

우린 또 다른 단짝이 되었다.


쉬는 시간이면 목련밭으로 뛰어 나가 새새거리느라 수업 종 치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어디든 둘이 함께 하디 보니

쉬는 시간이면 정분이가 내 자리에 와

앉아 있다 가더란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책상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 내 물건도 만지작거리다 종 치는 동시에 지 교실로 가더라고 했다.

나를 향한 일종의 해바라기였다는 것도 나중에야 깨달은 바보 같은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데면데면한 사이는 아니었고 언제나 마음속 1순위는 그 애였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자매결연 학교로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는데 이천의 사과농장이 딸린 곳에 텐트를 치게 되었다.

우린 여전히 환상의 한 조였고 봉사활동기간 내내 함께 지낼 수 있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달빛이 쏟아지는 원두막에 앉아 낫으로 수박을 쪼개먹던 것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고, 손에 손잡고 부르던 동구밖 과수원 길 노래도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었다.

2년을 채 다니지도 않은 대학을 때려치우는 동시에 결혼을 선택한 그 애는 세상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이뻤다.

어린 신부가 던진 부케의 주인공은 당연히 내 차지였고, 띠 동갑인 신랑의 친구를 엮어주려 무던히도 머리를 굴렸다.

느닷없이 불려 간 자리에는 늘 가운데 가르마가 함께였는데 몇 번의 의미 없는 만남 이후, 미련 없이 퇴짜를 놓았다.

눈이 눈썹 위에 붙은 눈 높은 친구가 있는데..

하며 끝없는 맞선 자릴 주선했다.

직장 옆 플라자 호텔 커피숖이 한동안 내 맞선 장소로 자리매김할 정도였다.

하다 하다 지가 살고 있는 동네 약국에 약 지으러 갔다가도 맘대로 허락도 없이

자리를 만들어 통보했다.

순한 인상의 연하남 약사님이 약국일도 팽개치고 뻔질나게 광화문 행차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아, 키가 너무 작은 게 흠이었나..;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수다가 흠이었나...

점잖은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을래야

찾아 볼수가 없을 정도였다.


처음 부케를 받으면 6개월 이내에 결혼을 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꽃보다 더 이쁜 21살에 부케를 받았으나 무슨 조화인지 결혼은 젤 꼴찌로 하는 신세를 면치 못 했다.

점심시간이면 어린 아들을 동반한 그 애와 함께였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내 결혼식에 젤 첫 번째 하객도 그 애였다.

뒤풀이자리는 물론, 늦은 시간의 공항배웅도

마다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었다.

신혼 초,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어제 보고 오늘 또 만나는 여고시절처럼 시간을 보냈다.

그런 사이였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연락이 끊기고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던 그 애 친정 집 전화번호도 먹통이 되었다.

동창들 사이에서 그 애의 이혼소식이 들렸고

어릴 적 잘 생긴 도령이 어디 신문사 사회부기자라는 소문도 같이 들렸다.

마지막 한 줄기 희망으로 신문사로 전화해 보았으나 사건제보가 아니면 담당기자와

연결이 안 된다고 하는 답변에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다신 정분이를 볼 수 없으려나 보다,

이대로 우린 끝이로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간혹 꿈에 나타나곤 했는데 꿈속에서도 배시시 웃으며 멀리 사라지는 주로 그런 꿈의 연속이었다.

개포동에서 오래 살았으니 주로 그쪽 방면이 활동 범위겠지 싶었으나 정말 만날 방법이 없었다. 애면글면 찾기 위해 애쓰는 내 마음을 전혀 모르겠지 싶어 혼자 아쉬움만 가득할 뿐이었다.

꿈을 꾸고 난 후에는,

꿈속에서의 만남 이후엔 더욱더 그 애가 보고 싶고 그리워질 뿐!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하고 질긴 녀석과의 한 달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