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고 질긴 녀석과의 한 달 차!

by 뻥쟁이글쟁이

J를 만나 강남신세계에서 점심을 먹던 날,

으슬으슬 춥고 떨리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따뜻한 국물을 마셔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 늘 가던 스벅 별다방에서의 수다도 흥겹지가 않았다.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 살짝 열도 나는 것 같고 무엇보다

침 삼킴이 몹시 불편했다.

모처럼의 만남이 무색하게 결국은 내가 먼저 털고 일어나자는 소리를 꺼냈다.

"도저히 안 되겠어,

컨디션이 빵점이야..."

이런 일이 극히 드물던 터라 은근 걱정이 앞섰다. 서둘러 집으로 와 쌍화탕에 종합감기약 두 알을 털어 넣고 쇼파의 전기장판 온도를 올렸다.

소싯적, 울 엄마도 약을 얼마나 맘대로 먹고

빼고, 보태고 난리부루수를 췄으면

"니 엄마는 박사야 박사...; 라던 아버지 얘기가 생각 나 혼자 피식 한번 웃고는 금방 잠 속으로 풍덩 했던 것 같았다.

영양제 종류는 물론, 다른 건 절대 가까이 안 하면서도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약 ,

이름처럼 쎈 ㅌㅆ이 있었으니 말해 무엇!

어디 조금만 쑤시고 아픈 기미가 보여도

ㅌㅆ 두 알 거뜬히 까먹는 게 일상이었다.

용법 용량을 잘 지켜야 하는데도 한 알 먹으면 약효가 덜 할 것 같아 애끼 손톱만 한

두 알을 꿀꺽하니 어질어질한 게 속도 메스꺼웠다.

따뜻한 바닥에 온몸을 맡기며 깊은 잠이 들락 말락 한 시점에 결국은 일어나는 계기가 생겼다. 신물이 넘어오는 동시에 후다닥 변기를 벗 삼아 좍좍 토해내는 상황이라니..

쓴 물, 노오란 물까지 아낌없이 토해내고서야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쉽지가 않았다.


아파도 꼭 주말 끼고 아프다 보니 새로 맞이하는 월욜에나 병원문턱을 밟았다.

금요일부터의 감기기운 증상에 으슬으슬 춥고 떨리며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다 쑤시고 아픈 게 젤 관건이었다.

목은 안 아픈데 기침이 심하고 콧물도 훌쩍이라는 증세에 따라 일단 주사 한 방에

영양제를 맞기로 했다 .

주사 덕분인지 온몸 쑤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는데 링거를 꽃은 손등이 욱신거리고 뻐근한 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3분의 1이나 맞았을까 , 간호사를 불러 빼 달라하니 남들은 줄에 있는 것까지 다 맞는다고, 아까워 어쩌냐 소리를 했다.

더 참고 맞았다가는 속이 울렁거림과 동시에

내 못된 버릇 특기인 토하는 결과가 나올 것만 같았다. 조금만 거슬려도 웩웩거리며 잘 토하다 보니 내 스스로 달래며 위안을 삼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도를 닦는 기분으로 화를 참으려 해도 어느 찰나에 속에서 확 올라오는 불길한 예감은 백발백중이었다.

어디 갇혔던 기억도 없는데 폐소공포증

환자라고 해야 하나...

문 닫혀 있으면 깝깝하고 답답 해 집안의 문도 다 열어놓고 살아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현관문을 제외한 모든 문이 개방이었다.


약을 지어 와 내 맘대로 항생제는 빼 버리고 두 봉을 먹었는데 추접스럽게 콧물 훌쩍 에 목이 완전히 가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

이삼일이 지나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병원약은 팽개치고 다시 또 집안 상비약인

종합감기약부터 소염진통제 등 내 최애

약인 ㅌㅆ을 두 알씩 연거푸 까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주일을 버텨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병원문턱을 또 밟았고, 혈액검사를 하고 이번엔 별 불편함이 없이 일명 비타민 주사인 영양제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맞았다.

조금은 가뿐한 상태로 며칠이 지났을까,

콧물증세에 기침이 여전 해 다시 병원을 방문하니 원장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X~Ray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감기는 길어야 2주정도면 낫는데 이리 오래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설마하는 마음과 살짝 겁도 나는 교차함에 검사를 하니 속전속결로 폐는 깨끗하다는 결과가 보였고, 지난번 혈액검사에서 나온 간수치가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주님과 너무도 친했던 아버지의 주정이 지겨워 술을 가까이하는 것도 아닌데 간수치가 높다니 은근 걱정이 앞섰다.

몇 년 전, 건강검진 초음파에서 간암이니 췌장암이니 하는 소견서에 따라 최종적으로 기스트암 진단을 받은 1호 언니가 파바박 스쳤다,

간경화로 배가 남산만큼 불러 관 뚜껑도 닫히지 않았던 내 십 대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과 간 이상으로

수술 후에도 꿰맨 자리가 아물지 않아 피고름 얼룩진 중환자실에서의 아버지 마지막 모습이 클로즈업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140이 정상인데 149라길래 간장약을 처방받아먹기 시작하면서 은근 걱정이 앞서는 것을 숨기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병원문턱을 밟을 때마다 어느덧

불안과 걱정을 동반해야 하는 나잇대가 되었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이 듦에 따라 한 번씩 보약도 먹어줘야 버티는 상황이다 보니 남편과 나란히 지어다 놓은 것도 일단 보류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간 치료가 우선이라 한약은 먹지 말라니 모셔놓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세 번째 병원을 가 복부초음파에 갑상선까지 추가로 검사를 하고 영양제도 맞고,

처방받은 간장약을 마무리하는 날 다시 간수치 결과를 보기로 일단락 지었다.

다른 약은 맘대로, 멋대로 추가하고 빼고

까먹으면서도 간장약만큼은 착실히 시간 지켜 용법 용량대로 따르는 내 자신을 보며 역시 가족력은 무시할 수 없나 보다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술도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간이 안 좋다는 것에 놀라던 내 아들의 걱정 한가득 눈빛도 떠오르고, 평소 병원 문턱을 멀리하는 고집에 잔소리하던 남편도 떠올랐다

이상이 있을 때 가면 이미 늦었다는 거, 재깍재깍 다니며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잔소리가 더 스트레스가 되어 병이 날 판국이었다.

평소의 잔소리에 보란 듯이 잘난 체가 엿보이는 톡을 날렸다.

"내 스스로가 병원 갔을 때는

많이 안 좋다는 얘기여,

어디 아프면 다 알아서 갈 테니까

잔소리는 뚝!"


하기야 남편도 십여 년은 훨씬 더 지났을까,

금연하느라 애쓰던 시절 어찌어찌 뻐꾸기 우는 사연으로 늑막염에 폐렴이 걸려 옆구리에 생살을 뚫어 구멍을 내고 호스로 피고름을 뽑아내던 과거사가 있었다.

뭐 좋은 거라고 결핵까지 추가해 보름을 꼬박 입원해 있으면서도 그놈에 담배를 몰래 피우다 들켰으니~~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던 차에 느닷없이 병실에 들이닥쳤는데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일인실이었으니 갈 곳이 뻔했던 터라 옥상에 올라가 보니 뻐끔뻐끔 연기를 내뿜는 게 바로 레이더에 걸렸다.

그야말로 길길이 뛰면서 개난리를 치고 퇴원할 생각도 말라는 엄포를 놓았다.

그래도 여전히 담배를 가까이하는 듯한 느낌이 들던 차에 이번엔 왼쪽 가슴이 뻐근하다는 낌새를 미리 알아채고는

2차 입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헌번 경험이 있던 터라 본인이 바로 이상증세를 캐치해 약물치료가 가능했고

덜컥 겁이 났는지 담배도 완전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원장님은 남편의 주치의가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엎친데 덮친 격이라 해야 하나, 출근을 하던 길에 바로 병원으로 간다길래 놀라서 가 보니 갑자기 오른팔이 스르륵 힘 없이 떨어지더라는 소리를 했다.

각종 검사를 거쳐 뇌경색인지 보름을 입원해

수술 없이 약물투입으로 뚫는 치료를 받았다.

정기적인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며 같은 나잇대의 원장님과 친밀한 관계이긴 하지만 나하고는 참 안 맞는 병원이라는 게 결정적이었다.

며칠 배가 꼬이고 아파 이 약 저 약, 역시

맘대로 까먹었지만 나아지지가 않아 병원에 가니 원장님은 세미나 중이었고

다른 내과 선생님의 진단이 맹장이 부풀 대로 부풀어 터지기 직전이라고 했다.

다음 날 9시 수술예약을 잡고 집에 와

입원할 준비를 하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집에 다시 돌아 올 수가 있을까...부터 만일 내가 없다면 이 어린

두 놈에 남편은 홀애비로 또 어찌 살아갈까 싶어 심난하기 짝이 없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청소를 하고 사방팔방

내 부재를 대비해 메모를 불이고 애들 저녁을 챙기고, 자는 녀석들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도 훔쳐내던 시간이었다.

여행을 가던, 당일치기로 어딜 가던지

집안 청소에 마지막 화장실청소까지 마무리하는 것을 보며 언젠가 남편이 하던 소리가 떠올랐다.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다신 안 돌아 올 사람 모냥 왜 그리 다 치우고 나가느냐던..

나갔다 와 집이 깨끗한 게 좋아서 난 그리 하던 습관이었는데 매번 싸그리 치우고 나가는 것에 남편은 보다 보다 못해 꺼내는 말이라고도 했다.

각자 생각의 차이라고나 해야 하는 건가,

애들 이릴 적, 휴가 전날이었던 기억!

세 살 터울 두 녀석이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얼마나 심하게 했던지 잡아다 씻기면서 아마 궁시렁대며 애들을 혼냈었나 싶다.

그게 싫었던지 남편이 순간 뭐라 화를

냈었던 것 같고 , 난 그러거나 말거나 두 놈 씻겨 놓고 방에 가 휴가 갈 짐을 챙기느라 가방을 꾸리는데 슬며시 방문이 열리며

남편의 힘없는 목소리가 따라 들어왔다.

"이 사람아, 내가 좀 뭐랬다고 짐 싸

나가려는 건 아니지?~~" 하는데

아이고야 웃을 수도 없고 대꾸할 명분도 없어 그냥 주둥이만 푹 내밀었던 과거..

"엄마 아빠는 대박로또야,

안 맞아도 너어무 안 맞아. 하는 작은 아들

말처럼 진짜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데

어떻게 이리 오랜 세월을 살 수가 있는 거지 참으로 의아스럽긴 하다.


다음 날, 병원 앞에서 1호를 만나기로 해

남편이 주차하는 사이 팔랑팔랑 뛰어가는 나를 보던 1호 언니가 대뜸 너 맹장수술

하는 거 맞느냐 확인을 했다.

배 아픈 사람 뛰는 게 영 수상하더라는 말을 들으며 순간 앗, 진짜 배가 아프질 않았다.

그 길로 수술은 없던 일로 하자 싶은 마음에 발길을 돌리는데 '맹장수술 00회 달성'

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다다닥 검색을 해 보니 맹장수술에 관한

이슈가 한눈에 보였다.

조금만 아파도 횟수달성을 위해 수술을 권유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냥 쌩까려다 병원에 전화를 하니 수술준비 다 하고 기다리는데 왜 안 오느냐는 볼 멘

소리가 들렸다.

자고 나니 안 아픈 듯 해 수술 취소한다는 멀을 던지고 사거리 다른 내과로 가

초음파를 받았다.

맹장이 많이 부풀었다 약 먹고 가라앉았을 경우도 있고 0.2미리라 수술은 안 해도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 뒤로 난 남편의 주치의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은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고 하마터면

안 해도 될 맹장수술을 해 00회 달성에 횟수를 추가해 주는 불상사가 될 뻔 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갖게 되었다.

더 그 병원하고 안 맞는 건 감기몸살 인가로 수액을 맞을 일이 있었는데 세 번을 찌르고도

혈관을 못 찾아 간호사를 교체한다길래 싫은 소리 하며 돌아서기도 했다.

예방접종 같은 거야 남편이랑 같이 가지만

난 건너편의 다른 병원에 간다는 게 참

씁쓸한 기분이었다.

병원도 다 본인 맞는 데가 있으니 누가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같이 다니는 게 낫진 않을까 싶으면서도 내 고집에 안 맞는 건 안 맞는겨!


암튼 감기인지 독감인지 코로나인지,

몇 년 전 코로나 시절이었다면 격리되어

꼼짝 마라 할 우울한 일상이었겠으나

지금이야 콧물 훌쩍이던 켁켁거리던

누가 뭐랄까 싶었다.

내 스스로 날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도 쓰고 용법용량 준수하며 착실히 검사도 받는 와중이지만 감기냐, 독감이냐,

나한테 한 달씩 들러붙어 있다니..


너 정말 질기고 독하긴 독하단 말 밖에!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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