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coyang Jan 27. 2024

나를 지키기

세상을 살아내는 치열한 하루하루에 한숨을 토해내며 힘들어 하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매일 뉴스로 접한다. 나역시 그렇게 살았던 세월이 있어서 백퍼센트의 동감으로 그런 뉴스들에 즐겁기도하고  슬프기도하고 때로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삶을 살아내기가  엄청 치열했던 40대가 좀 지나고 50대로 들어오니까 세상이 조금은 쉬워지고 여유라는 것도 좀 생기게 되었다. 너무 바쁘게 살았던 40대때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것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바빴던 50대인것 같았다. 생각이라는 걸 좀 할시간이 생기니까 무엇보다도 나와 세상과의 괴리감이 제일 크게 다가왔었다. "세상은 원래 그런거야. 그런것도 못 이기고 어떻게 살려고 해" 라는 40대의 합리화가 잘 되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하고 사업을 키워야 했던 때에는 모든것이 합리화가 되면서  " 응 그렇지 , 세상이 어디그리 쉽나? 그런거지"라고 했던 꽈베기처럼 유연했던 생각들이 점점 경화제를 뿌린듯 딱딱해지기 시작하다.






"왜그래야 하는데? 내가 왜 그걸 이해해야 하는데 ?" 라며 나에 대한 의심에 앞서 세상에 대한 의문으로 본질이 변하게 되었었다. 인간의 진화과정일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항상 나의 변화를 솔직하게 받아들이던 나는 많은 의심을 세상으로 돌리곤 했다. 당췌 이해되지 않는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부조리를 참아내기 엮겨웠었다. 세상이 그런거라는 합리화가 안되니까 그걸 이해하려고 애쓰는 노력보다는 불평과 지적질이 내 일상이 되어버렸었다. 그러면서 그런 나의 비판을 나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비판이라고 불렀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불평덩어리가 됨을 알기에 합리적인 의심과 결론을 지어야 하는 굉장히 난해한 사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었다. 내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 버릴수도 있는 일들이 생길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결과는 나를 나로서 지켜 나가는데 큰 데미지를 입을 거라는 것을 이미 나는 알았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냉철안 혜안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으며 언제나 그것이 보편적가치 위에서도 특별한 의심과 비판이 되도록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게 쉬웠다.  나를 지키면서도 멋있게 세상을 비판하는 것이 쉬웠다. 그것은 동감이라는 걸 만들어내기 일쑤였고 나는 말잘하고 똑똑하면서도 유머까지 곁들인 만능의 왕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때는 비평가를 꿈꾸기도 할만큼 비평과 혹평과 지적질의 삼총사는 나의 50대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비판과 비평없이 발전하는 문화나 제도는 없을 것이다. 이런것까지 비판하며 나의 지적질은 끝을 모르게 시작했었다.

그것은 더이상 타협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더이상 봐줄수 없는것이며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것이었다.

나의 지적질 50대를 사랑할수 밖에 없는 이유이었다. 나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눈이 남들보다는 좀 뛰어나게 자유로워서 그런것들을 비판하거나 문제점 혹은 좋은점을 찾아내는 일이 어렵게 느껴 지지 않았다.

그 기본은 40대에 무지랭이처럼 살아낸 세상에 대한 무가치적인 순응과 합리화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알기때문에 겪었기 때문에 토해낼수 있는게 아닐까.








세상이 아무리 썩어 문드러 질지언정 그 속에서 온전한 나를 지키며 살아내는 내 자신이 대견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주의의 많은 주부동지들을 보면 눈물이 쏟아질 정도의 감동도 받는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들을 기억함으로써 나는 나를 지키는 거름으로 사용한다. 아이들을 위한 평생의 삶, 못가지고 헐벗은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 무한히 나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다. 나는 50대가 되면서 작게나마 아이들을 위한 국제기구를 돕고 있다. 나의 작은 영향력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제법 권유하고 있다. 나를 지키는 일은 곧 세상과의 타협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받는 감동이 이어지느랴 끊어지느냐의 문제의식으로 결론지어진다.

즉 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늘 지적질하는 투덜이이자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휴머니스트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누가 나처럼 합리적인 생각을 말하거나 글로 쓴다면 나는 금방 그의 팬이 되어버렸고 누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쉴새없이 자기의 주장을 늘어놓을때는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감동과 매력은 늘 같이 다가왔다. 많은 논술비평가들, 패널들, 학자들의 팬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자기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며 산다는 것이고 강력한 나의 표현이 사람들에게 감동이 될때 진정으로 그것은 나를 지키게 되는 것같았다.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많은 것을 보고 읽고 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혼자의 생각에 갇혀 누구와의 대화도 없는 고찰은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치 않은 이유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멋지게 자기의 세계를 창조하고 발전하며 그것을 추종하고 따르는 팬이 생긴다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게 절대 아니며 난 세상에 부러운 사람도 없다. 다만 멋진삶이라고 비평한다. 모두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를 멋있게 지켜내면서 살기를.... 나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