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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yang Jan 20. 2024

부족해서 나다운 나

사람마다 다른 개성이라고 할까? 타고난 심성이라고 할까? 기질이라고 할까?   사람마다 다 다른 개인의 인격과 성향을 설명하는 많은 연구가 있는것으로 안다. 환경적인 요인, 교육적인 요인, 유전적인 요인으로 나눠본다면 그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낼수 있는것은 유전적인 요소가 아닐까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해본다. 누가 일부러 시킨다고 인간의 성격이 바꾸어진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자신이 원치않는 성격을 알아도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많은 사례를 보면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내자신이 몹시 마음에 안든다고 확 다  뜯어고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글쎄 썩 찬성할 일은 아니지만 오죽 답답하면 그런 생각을 할까 라는 의문만 가지게 한다. 설령 그런 성격때문에 회사생활이나 다른 곳에서의 문제가 생긴다해도 그게 그렇게 자신을 싫어해야 할 문제일까? 이렇든 저렇든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인건데  주체성을 가지고  좀더 자세하게  나에 대한 고찰과 인정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걸까?  남에겐 너무나 관대하면서 자기자신에겐 너무나 엄격하고 꼼꼼한 태도는 자신을 비참하게만 만들 뿐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장이들이라서 그런가?



나는 원래 남의 일에 관심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요즘 점점 나약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스스로 목숨도 버리는 독한 사람들도 많아서 그런 극단적인 자아와의 싸움을 좀 안하면 안될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왜냐하면 나는 살면서 나에대해 '뭘 뜯어고쳐야겠다' 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을 뿐더러 만들어진데로 사는거지 모두 다 잘나서 다 서울대하고 모두 다 예뻐서 탈랜트하면 그거야 말로 몰개성아닐까?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원인이기도 한 것같다.








어릴 적 별명은 덜렁이 였었다. 꼼꼼하지 못하다고 우리 할머니께서 맨날 나한테 하시던 말씀이었는데 그게 귀에 못이 밖히면서도 꼼꼼하게 뭔가를 끝내지 못하는 내 성격은 늘 조금은 느려도 꼼꼼하게 임무를 완성하던 언니와 비교되어 내게 붙어다니던 수식어처럼 되어 버렸었다. 시킨 일을 덜렁덜렁  대충대충 한다고 ... 어디 그것뿐이랴.. 한참 육아를 할때는 우리형제자매 집집마다 우리아기 젖병이며 옷가지며 아기용품들을 흘리고 다녔고 완벽하게 챙긴다고 해도 늘 그건 나에게 숙제이상의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안 잃어버리고 놓고온것도 없을때는 약간 나 답지 않은  자신에 실망스럽다고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 왜그래? 그거 나답지 않았어 "라는 칭찬도 해준다. 약간은 덜렁거리고 잘 까먹기도 하고 사람이란게  좀 그런 숨구멍이 있어야 멋있지 않을까? 꽉꽉 채워서 빈틈이 없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 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그 자신에게도 신선한 호흡이 되어주지 않을까. 커피를 시켰는데 뜨거운커피를 찰랑찰랑 담아주면 어떻게 그맛을 즐기겠는가말이다.



나란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에 앞서  주어진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일 만큼은 일등인 나... 거듭된 실수도 '나아니면 누가 그러냐'는 식의 초긍정적사고를 하는 나. 완벽하지 않아서 너무좋고 덜떨어져서 너무 좋고 빈틈구멍이 확실히 나있어서 너무 좋다. 가끔씩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속에서도 나는 여유로우며 긴장하는 법이 없다. 골목길 끝에서 되돌려나올수 있는 공간이 없어도 긴장하는 법이 없다. 빠꾸로 천천히 나오면 될 일이니까...빈틈이  곧 여유가 되고 여유는 곧 편안함이 되는것 그게 나다운 나 같다. 모두들 그 답을 혹시 찾고 있는것은 아닌지...


이세상의 누가 나처럼 여유로우랴.. 가진건  많이 없어도 다 채워지지않음이 좋다는데... '나는 왜이럴까? 나는 왜 이모양일까? '라고 후회하고 방황하는사람들이 있다면 도시락싸서 들고다니면서 나의 덜렁이며 사는 완벽함에 대해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이겠지만 있는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들여다보면 쉽게 나갈수 있을것이다. 자연은 원래 직선도 아니며 자연에 원래 계단도 없다. 애쓰지말고 태어난품성데로 만족하고 살아가는거 그게 자연의 일부로 살아야할 인간의 숙명아닐까.


요즘 마트에서도 심심치않게 못난이 과일들을 보게된다. 못난이 과일들은 나를 미소짓게 해준다. 너무나 완벽해지는 사람들,  정형화되어지는 사람들, 몰개성의 가치추구 등 많은 문제들을 보이는 현대사회에서 나처럼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은  보물이 아닐까?  부족한거 그게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함에서 오는 여유또한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는 출발일것이다. 부족해서 완벽한 나자신한테서 느끼는 자부심 또한 하늘을 찌른다.

당당한삶을  플랜하고 영위해가는 부족한 나의 완벽한 삶! 그게 나의 큰 장점이라는 것이다.


절대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 쓸데없는 노력이야말로 나를 망치는 일임을 안다.

20대 때 나는 내가 없는 이 세상을 상상해 본적이 있다. 과연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둘때는 어떨까.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놓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다 두고 마지막으로 눈을 감을 때 그 때를 상상해 본적이 많다.  '죽음이라는 것은 세상을 거대한 검은천으로 덮는것이다' 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 나는 내가 본 우주의 중심이고 내가 본 세상의 중심이었다. 내가 눈을 감아 깜깜한데 뭐가 있을수 있겠는가. 각자의 세상에서 중심으로 살고 있다면 이제 장막을 치고 어디엔가에서의  제2막이 오르길 기다리면서 자는  꿀잠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성찰한 후에는 내 짝꿍도 나의 자식도 다 나와 같은 존엄하고  그 자체로 완벽한 인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모두에게 잘 대해야 하는 이유이며 사랑해야 할 이유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렇게 또 너무 완벽하게 살아가면 재미없지 않겠는가. 나는 그이후로는 어떤 깊은 생각도 더이상 하지 않는다. 그냥 즐겁고 재미있게 산다.  사람이 심오해지는 것만큼 재미없어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내가 가진 유머감을 잃지않게 노력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실수를 즐기고 여행과 소비를 즐기며 더 이상은 심오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 난 이미 나늘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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