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해도 알아달라는 감정 착취

말하지 않아도 알라는 건 이기심이다

by 지해랑

나는 한때,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었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표정 하나로 내 속마음을 읽어내는 사람.
그게 깊은 관계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말 안 해도 알아주길 바라는 건
때로는 사랑이 아니라
감정 착취였다.

상대방이 알아차리길 기다리면서
속으로 상처를 키운다.
“이 정도면 눈치챌 만한데 왜 모를까?”
“내가 말해야 알 수 있는 건가?”
그리고 그 몰이해를 ‘무심함’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건 일방적인 시험이었다

상대방은 시험을 치르는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미 답안을 정해놓고 있었다.
“이걸 맞히면 날 사랑하는 거고, 틀리면 관심 없는 거야.”

이건 사실, 내가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를 조용히 옭아매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마음도 점점 지쳐갔다.

내 자존감을 자신이 갉아먹는 일이었다.

왜 ‘말 안 해도 알아달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게 ‘진짜 관계’라는
로맨틱한 환상 때문일 거다.
어릴 때부터 영화와 드라마에서 봐왔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장면들.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대본이 없고, 카메라도 없다.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진짜 건강한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관계가 아니라
말했을 때 귀 기울여주는 관계다.

내 감정을 알아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내 감정을 먼저 정확하게 꺼내 놓아야 한다.
그게 오히려 나를 지키고,
상대방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는 방법이다.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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