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에게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날

by 지해랑

흰 드레스를 입은 채, 서윤은 커다란 거울 앞에 섰다.
비즈가 촘촘히 박힌 드레스는 눈부셨고, 조명은 마치 축복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거울 속 얼굴은 환하지 않았다.

“어머니랑 같이 오셨어야 더 좋았을 텐데요.”
점원이 무심히 던진 말에, 서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옆에 앉은 예비 시어머니가 “우리 쪽은 괜찮으니 네 마음대로 고르렴” 하고 웃었지만, 그 순간 서윤은 숨이 막혔다.

엄마라면 어떤 드레스를 고르라 했을까.
“어깨가 좁으니까 이런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린다.”
“우리 딸, 웃으니까 세상 제일 예쁘네.”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서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끝은 하얗게 굳어 있었다.

거실 바닥엔 청첩장이 가득 쌓여 있었다.
예비 신랑 민호가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오늘 드레스 너무 잘 어울리던데? 다들 감탄했잖아.”

“응... 그랬지.”
대답은 했지만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민호가 눈치를 챘는지 물었다.
“혹시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엄마가 없으니까.
이럴 때면 더... 그립네.”

민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손끝에 전해지는 따뜻함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다.

며칠 뒤, 아버지와 함께 청첩장을 정리하다가 문득 서윤이 물었다.
“아빠, 엄마는... 결혼식에선 어떤 걸 가장 보고 싶어 했을까?”

아버지는 잠시 말이 막혔다가, 조용히 웃었다.
“네가 웃는 얼굴로 걸어가는 거.
그게 전부였을 거다.”

그 말에 서윤은 눈물이 맺혔다.
결혼이란 행복한 과정이어야 하는데, 그 행복의 한쪽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청첩장을 다 보내고, 드레스를 고르고, 예식을 준비하는 하루하루는 분주했다.
그러나 밤마다 방 안에 혼자 누우면, 서윤은 휴대폰을 쥔 채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보았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머리띠를 고쳐주던 손길, 떡볶이를 나눠 먹던 웃음.

“엄마, 나 결혼해. 근데... 엄마 없이 괜찮을까?”
작게 중얼거리고 나면,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결혼식 준비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곧 서윤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친구들이 “결혼 전에 마지막 생일이네! 신랑이 뭐 준비해 주냐?” 하며 웃을 때마다, 서윤의 속은 텅 비어갔다.
엄마라면 이 생일상에 무슨 음식을 올려줬을까.
간장게장을 좋아하던 딸을 위해, 새벽부터 시장에 다녀왔을까.

그 상상만으로도 목이 메었다.


비가 내리던 늦가을 저녁, 서윤은 낡은 골목 끝 공중전화 부스 앞에 멈춰 섰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은 희미했고, 빗방울은 부스의 유리창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유리문에 손을 얹는 순간, 서윤의 손끝은 덜덜 떨렸다.

다음 달이면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누구에게 축하받아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엄마.
서윤의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부엌에 서 있었다.
김치찌개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 다진 마늘을 손끝으로 무심히 털어내던 모습.
그 따뜻한 냄새와 손길은 오래전에 멈췄지만, 그리움은 지금도 숨처럼 따라붙었다.

그녀는 소문을 믿고 찾아왔다.
“자신의 생일에 단 한 번,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오늘은 그녀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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