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생일에 걸려온 전화

아들 준호의 목소리, 부스 너머에서

by 지해랑


생일날에만 단 한 번, 세상에 없는 사람과 통화할 수 있다는 부스.


생일이 다가오자,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곳으로 향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밤, 준호의 아버지는 작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부스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들어가 수화기를 들자, 아무 번호도 누르지 않았는데 신호음이 이어졌다.

뚜르르... 뚜르르...
그리고 이내 들려온 목소리.

“아빠?”

준호의 아버지는 그대로 무너져 내릴 뻔했다.
손이 떨려 수화기를 놓칠 뻔했지만,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 준호야? 준호 맞니?”

준호: “아빠... 아빠 맞죠? 목소리가... 너무 그리웠어요.”

아버지: “준호야... 내 아들아... 진짜 너냐? 꿈 아니지? 아버지 귀에 지금 네 목소리 맞지...?”

준호: “맞아요, 아빠. 오늘이 아빠 생일이라서... 제가 먼저 전화했어요. 축하드려요.”

아버지: “생일... 그래, 네 엄마가 아침부터 케이크를 준비했지. 네가 좋아하던 딸기 케이크.
아직도 네 자리 비워놓고 숟가락 올려놓는다. 너 없는데도... 네 엄마는 늘 네 몫을 챙기더구나.”

준호: “엄마한테... 전해주세요. 울지 말라고. 전 괜찮다고.
정말이에요, 아빠. 여기서는 무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요.

아빠, 그 강아지... 잘 살아있죠?”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버지: “그래, 살아있다. 네가 지킨 덕분에. 녀석이 매일 주인 곁에서 잘 먹고 잘 지낸다. 준호야, 왜 그렇게 무모했니. 왜 네 목숨보다 강아지를 먼저 안고 나왔어...
아빠는 네가 살아만 있어 준다면 뭐든 견딜 수 있었는데...”

준호: “아빠... 그 순간에... 어릴 때 불이 났을 때 제가 설이 안고 뛰쳐나왔던 거, 기억하시죠?
그 강아지가 제게는 가족 같았어요. 이번에도 똑같았어요. 누군가의 가족을 꼭 지켜내고 싶었어요.
아마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 “내 아들아... 너는 끝까지 네가 옳다고 믿는 걸 지켰구나.
아버지가 그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미치도록 원망스럽기도 하다.
왜 세상은 그렇게 착한 사람만 데려가는 거냐...”

준호: “아빠... 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제가 제일 잘한 일은... 아빠 아들로 태어난 거예요.
어릴 때부터 늘 제 편이 되어주셨잖아요.
누나가 떠나고, 우리 집이 무너질 것 같을 때도, 아빠는 저를 붙잡아 줬어요.
그래서 전... 끝까지 두렵지 않았어요.”

아버지: “... 준호야, 네가 없으면 아빠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하니.
아버지 가슴은 네가 떠난 날부터 불탄 집처럼 무너져 내렸다.
매일같이 네 사진만 바라보고 산다...”

준호: “아빠, 그러지 말아요. 제발 웃으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던 아빠 얼굴은, 힘들어도 웃을 때였거든요.
목수 일을 하다가도 ‘이건 내 아들이 쓸 책상이다’ 하고 웃으시던 그 얼굴...
그게 제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표정이었어요.”

아버지: “준호야... 네 엄마도, 나도... 네가 없는 세상은 너무 버겁다.
하지만 네 말대로... 웃어야겠구나.
너는 끝내 지켜냈으니, 남은 건 우리가 네 몫까지 살아내는 거겠지.”

준호: “맞아요, 아빠. 제가 지켜낸 건 작은 생명이지만, 그게 곧 삶이고 희망이에요.
아빠도, 엄마도... 살아주세요. 제가 못다 한 삶까지.
매일 후회하지 않게, 즐겁게, 사랑하면서. 누나 떠나고 제가 엄마 아빠 끝까지 지키려고 했는데, 그 약속 못 지켜서 죄송해요...”

아버지: “내 아들아... 네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조금 숨이 트인다.
네가 여기 있었다는 걸, 아버지가 평생 잊지 않겠다.
너는 내 자랑이다. 내 영원한 아들이다.”

준호: “아빠, 이제 끊어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다 됐어요.
하지만 잊지 마세요. 전 언제나 아빠 곁에 있어요.
그리고 매년 아빠 생일날... 저는 꼭 전화할 거예요.
아빠, 사랑해요.”

아버지: “준호야... 나도 사랑한다.
다음에 또... 목소리 들려다오.
그때까지... 아빠가 웃으며 살아볼게.”


뚜— 뚜— 뚜—

수화기가 끊기자, 아버지는 수화기를 붙잡은 채 오열했다.
그러나 눈물 너머로 번지는 미소는, 아들이 남긴 마지막 선물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문이 닫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가슴 한편에는 아들의 목소리가 깊이 새겨졌다.
“괜찮아요, 아빠. 저 여기서 무섭지도, 아프지도 않아요.”


부스를 나온 뒤, 그는 곧장 아들의 묘소를 찾아갔다.

준호의 아버지는 케이크 초를 켜고 혼자 중얼거렸다.

“준호야, 네가 지킨 생명 덕분에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해졌다. 나는 그걸로 됐다.”

묘 앞에는 이미 누군가 작은 사료 봉지를 두고 간 흔적이 있었다.
아들을 살린 그 강아지의 주인이었을 것이다.

“아드님 덕분에 우리 가족은 살 수가 있었어요. 너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예전에 주인이 흘리던 말이 떠올랐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 속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아빠, 웃으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던 아빠 얼굴은, 웃을 때였거든요.”

그날 밤, 준호의 아버지는 오래간만에 거울 앞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름진 얼굴 위로, 서툴지만 분명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로써 다시 살아간다.

월, 화, 수 연재
이전 03화불 속의 작은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