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의 작은 생명

준호에게서 온 전화(1)

by 지해랑


사이렌 소리가 밤하늘을 찢었다.
“연화동 주택가 화재 발생, 인명 구조 요청.”

준호는 무거운 방화복을 걸쳐 입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동료들과 함께 소방차에 올랐다.
차 안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누군가는 짧게 기도를 했고, 또 다른 이는 헬멧 끈을 여러 번 확인했다.

준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깜빡이는 적색 불빛 속에서, 다급하게 도망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기억이 스쳤다.
아홉 살 무렵, 집에서 키우던 흰 강아지 ‘설이’.
불장난으로 작은 불이 났던 날, 놀라 울던 설이를 안고 마당으로 뛰쳐나왔던 순간.
그때부터 그는 알았다.
“내 인생에서 지켜야 할 것은, 도망치는 게 아니라 끌어안는 거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세 층짜리 낡은 주택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주민들은 이미 대피했지만, 건물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사람들이 외쳤다.

“안에 강아지가 있어요! 제발, 제발 구해주세요! 제 가족이에요 제발! ”
주인은 피투성이 손으로 울부짖었다.

대장은 잠시 망설였다.
“지금 상태로는 위험하다. 지붕이 곧 무너진다. 인명 구조도 아닌데...”

하지만 준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대장님,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안 돼, 위험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들어가야겠습니다.”

그의 눈에는 어린 시절 강아지 설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설이를 지키던 그날처럼, 오늘도 지켜야 한다.”

불길은 이미 집을 삼키고 있었다.
타는 나무 냄새, 뜨겁게 달궈진 연기, 시야를 가리는 검은 매연.
준호는 물을 뿌리며 길을 만들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대 밑, 연기에 갇혀 숨을 헐떡이는 작은 강아지였다.
작고 흰 털이 그을음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괜찮아, 아가. 금방 나가자.”
준호는 장갑 낀 손으로 조심스레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두 눈은 간절하게 빛났다.

순간, 천장이 부서지며 불덩이가 떨어졌다.
준호는 몸을 웅크려 강아지를 품에 감쌌다.
등 위로 뜨거운 충격이 내려앉았다.
숨이 막혔다.

“준호! 나와!”
밖에서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헬멧 안으로 뜨거운 연기가 스며들며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는 품에 안은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작은 눈동자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래, 넌 나가야 한다.”

준호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창문 쪽으로 몸을 밀었다.
강아지를 창문 틈으로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설이... 아니, 너라도 살아야 해.”

순간 창문 밖에서 팔이 뻗어 들어와 강아지를 받아냈다.
주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얘야! 살아있구나...”

그리고 그 순간, 지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준호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목수 일을 하며 늘 굳은 손으로 나무를 다듬던 아버지.
“다른 집 불은 거도, 내 집 불은 끄지 마라.”
농담처럼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버지... 죄송해요. 하지만, 이 집도 제 집 같아서...강아지도 설이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강아지를 살리지 않으면 제가 죽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는 어린 시절 설이의 따뜻한 체온을 다시 느꼈다.
불길 속에서, 그의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
“내 생은 짧았지만, 누군가를 지켜냈다. 그걸로 충분하다.”

밖에서는 강아지의 울음과 사람들의 오열이 뒤섞였다.
동료 소방관들은 무너진 집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누군가는 망치로 문을 두드렸고,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무너진 지붕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구조된 강아지는 주인의 품에서 힘없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살아있었다.
그 작은 생명이, 누군가의 마지막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동네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연화동의 불길 속에서, 강아지를 품고 떠난 소방관이 있었다.”

사람들은 꽃을 들고, 작은 사료 봉지를 들고, 그의 영정 앞에 놓았다.
“고맙습니다. 우리 가족을 지켜주셔서.”
“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강아지는 시간이 흘러도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가끔 밤마다 멍멍 짖으면, 사람들은 말했다.
“아직도 그 소방관을 찾는 거야.”

몇 해 뒤, 그의 아버지는 낡은 공중전화 부스 앞에 서 있었다.
생일날에만 단 한 번, 세상에 없는 사람과 통화할 수 있다는 부스.연화동 골목 깊숙한 곳,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 기묘하게 놓인 공중전화 부스가 하나 있었다.
누군가는 90년대에 설치되었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아예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고도 했다.
낡은 유리문은 밤마다 습기로 흐려졌고, 전화기 손잡이는 오래된 손때로 반들거렸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부스를 철거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소문’이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스는 생일날에만, 단 한 번 전화를 걸 수 있다.
그리고 그 전화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연결된다.

처음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되었지만, 이 부스를 찾는 사람들의 표정은 늘 간절했고, 부스를 나온 이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농담처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믿거나 말거나, 비밀스럽게 부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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