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아닌, 나를 먼저 사랑할 수 있을까
드레스 투어 첫날, 나는 한참 동안 레이스를 만지작거렸다. 거울 속 내가 웃고 있었지만, 웃음의 끝이 자꾸만 금이 갔다. 스태프가 허리선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신부님은 허리가 예뻐서 머메이드가 잘 어울리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서 약혼자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거 괜찮다. 우리 회사 선배도 이런 스타일했었어.”
‘우리’라는 말이 기분 좋게 들릴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회사 선배’라는 이름이 내 옆자리의 공기까지 점유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드레스 자락을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마치 숨을 참듯 미소를 고정했다.
웨딩홀 계약 날, 하얀 복도 끝에 신부대기실이 있었다. 남들이 말하던 ‘인생샷’ 포인트. 나는 걸음을 멈추고 빈 의자에 앉았다. 둥근 거울 속에서 내 표정은 낯설었다. 약혼자는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숫자를 적더니 말했다.
“주말 프라임이면 이 정도면 혜자지. 우리 부모님 일정도 맞춰야 하고.”
나는 ‘좋아’라고 했고, 그의 엄마에게서 바로 전화가 왔다.
“우리 예식은 가까운 곳이었으면 해. 이쁜 것보다 가까워야 우리 식구들이 가기 편하지.”
나는 “네” 했고, 통화를 끝낸 약혼자는 “우리 엄마 좀 직설적이지? 신경 쓰지 마”라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렇게 해야 어른이 된 기분이 나니까. 그렇게 해야 관계가 오래갈 것 같으니까.
상견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창밖에 흘러가는 간판들이 다 같은 모양으로 보였다. 나는 조수석에서 무릎 담요를 당겼다.
“오늘 부모님이 기분 좋아하셨지?”
“응. 아버지도 네가 복덩이라고 예의 있다고 하셨어.”
그가 대답하며 내비게이션 볼륨을 키웠다. 차 안에 남의 목소리가 큼직하게 들어왔다. 그 목소리가 우리의 침묵을 메우는 동안, 나는 창에 이마를 댔다. ‘잘하고 있는 거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말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라 회피일 때가 있다. 그런데 그날 나는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날 밤, 작업대 위에 놓인 달력을 펼쳤다. 날짜마다 작은 점으로 빼곡했다. 드레스 2차, 본식 메이크업 테스트, 청첩장 인쇄, 신혼집 도배. 작은 점들이 모여 거대한 얼룩이 되어가는 느낌. 나는 볼펜으로 점 하나를 조심스럽게 동그라미 쳤다. 결혼식 당일. 통째로 동그라미 치기에는 손이 떨렸다.
‘나는 정말,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까?’
다음 주말, 청첩장 샘플을 보러 갔다. 서체를 고르는 내내 약혼자는 핸드폰을 두 번이나 바꿔 들었다. 회사 전화였다.
“미안, 잠깐만.”
그는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유리문 너머로 그의 등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나는 서체 A, B, C를 차례로 손끝으로 눌렀다. ‘우리 이름이 이 글자 사이에 잘 앉을까.’ 그 생각이 이상하게 눈물을 데려왔다.
그가 돌아와서 내 눈가를 보더니 물었다.
“왜 울어?”
“아니, 그냥.. 감정적이라서.”
“아, 그렇지. 결혼 준비라는 게 원래 그래.”
그는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였다. 마치 ‘그럴 수 있어’와 ‘이제 괜찮지?’가 섞인 리듬이었다.
나를 괜찮게 만드는 일은 알겠는데, 나를 ‘듣는’ 일은 누구의 역할일까.
그날 밤 나는 친구 서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왜 이렇게 불안하냐.
서연은 전화로 답했다.
“불안이 꼭 나쁜 신호는 아니야. 그런데, 네가 물어봐야 해. ‘이 사람과 살고 싶은가? 아니면 삶이 늦을까 봐 겁나서 뛰는 건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서랍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냈다. 혼자 떠났던 바닷가. 발목까지 차오른 파도. 사진 속 내 표정은 조금 과장되게 기뻤고, 지금의 나는 조금 과장되게 침착했다.
신혼여행 이야기를 꺼냈던 건 그다음 주였다.
“우리 어디 가고 싶어?”
“음.. 요즘 바빠서 길게는 못 가. 가까운 데로 가자. 휴양지든 뭐든 네가 정해줘.”
‘네가 정해줘’라는 말은 배려였고, 동시에 책임의 전가처럼 느껴졌다. 함께 꾸는 꿈이 아닌, 누군가가 결정한 꿈을 나눠 가지는 느낌.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며칠이라도 좋아. 그냥, 우리가 같이 있는 걸 ‘기다려’ 보고 싶어. 준비하는 동안만이라도.”
그는 멋쩍게 웃었다.
“기다림보다 효율이 중요하지. 예약 못 하면 더 비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가 논리를 가질 때, 감정은 늘 자리를 잃는다.
그날 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따뜻한 목소리였지만, 말끝에 작은 불안이 묻어 있었다.
“너, 얼굴이 좀 수척해졌다더라. 준비가 힘들지?”
“괜찮아. 다들 그렇게 하지, 뭐. 원래 결혼 전에 잠깐 우울해진다더라”
“네가 괜찮다고 말하는 건 알겠는데.. 네가 괜찮아 보여야 나는 안심이 된다.”
나는 그 말을 오래 붙잡았다.
예물을 보러 가던 날, 우리는 다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다투고 있었다.
진열장 안에서 반짝이는 반지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그날 내 시야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 귀에는 내 목소리만 울리고 있었으니까.
“왜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아? 왜 늘 나보다 남의 편에 서서 얘기하는 거야?”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들었지. 그저—”
나는 그 순간, 멈출 수가 없었다.
“오빠는 내가 뭘 원하는지, 네가 ‘궁금해하는 표정’을 못 본 것 같아서. 네가 날 이해하려는 눈빛이 아니라, 나를 가르치려는 눈빛 같아.”
함께 걸어온 시간 동안, 나는 그에게 수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직장에서 억울했던 일, 친구와의 갈등, 때로는 가족에게서 들었던 무심한 말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네가 좀 더 참고 넘어가면 되잖아.”
“네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거 아닐까?”
“그 사람 말이 맞네, 네가 한번 더 이해해 주면 되잖아.”
그의 말은 늘 합리적이었지만, 나를 전혀 안아주지 않았다. 나는 위로가 필요했는데,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논리를 대신 전했다. 마치 내 이야기는 불완전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만 완성되는 것처럼.
그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내 편을 잃었다. 아니, 내가 기대던 사람이 내 편이 아니었다는 걸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사람이 상처받는 건 큰 사건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대화할 때 노력하고 싶지 않은 듯한 하찮은 표정, 대화 끝의 작은 표정, 기대하지 않은 외면. 그것들이 하루하루 쌓여 마음에 틈을 낸다.
나는 그의 곁에 앉아 있지만, 내 옆자리는 언제나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내 편이 아닌 듯 보였고, 결국 나는 스스로를 변호하느라 더 지쳐갔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자동차 히터 바람이 따뜻했지만, 가슴 안쪽은 자꾸만 싸늘해졌다.
내가 원했던 건 나는 거창한 이해나, 완벽한 해결책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말해주길 원했다.
“네가 그렇게 느꼈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그 한마디가 내 어깨에 내려앉은 짐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논리와 타인의 입장을 먼저 꺼냈다. 결국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 앞에서조차 혼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날 예물 가게에서 흩날리던 반짝임은, 사실 내 눈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반지가 아니라 내 마음이 깨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함께 살 사람은 평생 나를 가르칠 사람이 아니라, 평생 내 옆에 서 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