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OO이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의혹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위기감을 느낀 조국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의혹에 대해 '셀프 해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조국 후보가 셀프 해명에 사용한 메신저는 '카카오톡'이 아닌 '텔레그램'이었다는 것.
텔레그램은 박근혜 정부 시절 '카카오톡 사찰'로 대표되는 민간인 사찰을 피해 사람들이 사이버 망명지 라는 대안을 찾으면서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국회의원들이 쓰는 메신저'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텔레그램은 보안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러시아의 마크 주커버그로 불리는 텔레그램 CEO 파벨 두로프가 '우리의 암호 시스템을 푸는 사람에게 20만 달러를 주겠다'고 상금까지 내걸기도 했다.
마치 <1984>의 빅브라더가 지켜보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도 나도 텔레그램으로 대이동을 했고 나도 카카오톡이 아닌 텔레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카카오톡으로 돌아왔다. 국회의원들이 쓸 정도로 최고의 보안등급을 자랑하고, 무료에, 광고도 없으면서, 빠르기까지 한 메신저를 나는 왜 쓰지 않고 다시 카카오톡으로 돌아왔을까? <콘텐츠의 미래> 의 저자 바라트 아난드는 스티브 잡스의 실패를 통해 이 비밀을 알려준다.
1984년 맥 출시를 시작으로 애플은 운영체제를 놓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면전을 시작했다. 맥은 사용이 더 간편하고 더 안정적이었다. (중략) 하지만 매킨토시 출시 후 20년 동안 애플은 전 세계 개인 컴퓨터 시장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주었고, 2004년에는 시장점유율이 1.9퍼센트까지 떨어졌다. 98퍼센트가 넘는 사용자들은 모두 마이크로소프트를 선택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콘텐츠의 미래> 69p
개인용 컴퓨터 구입을 고려하는 사용자의 주 관심사는 두 가지다. 친구, 가족, 동료 등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이나 정보 공유가 얼마나 쉬운가? 호환되는 소프트웨어 응용프로그램의 범위와 품질은 어떤가? 사실 이런 연결성이 없다는 컴퓨터는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나 다름없다. 물론 가격이나 디자인, 색상, 마케팅도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제품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콘텐츠의 미래> 70p
텔레그램은 더 빠르고, 더 안전하고, 더 쾌적했다. 2016년 2월 기준으로, 텔레그램 월 사용자수는 1억명을 넘어섰고 2018년 3월 기준으로 월 2억명을 돌파했다. 2019년 기준 카카오톡의 월 사용자가 4300만 명임을 생각하면 이용자 수 역시 압도적이다. 하지만 나는 텔레그램에서 카카오톡으로 돌아왔다. 정작 텔레그램으로 내가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특정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것이 또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효과를 네트워크 효과라고 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사람은 자신이 찾는 정보가 가장 많은 곳을 찾는다. 중고 거래를 하면 어디를 떠올리는가? 집 구할 때는 어디를 떠올리는가? 중고나라와 직방을 떠올리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네트워크 시장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제품 특징을 압도한다. 나는 빠르고 안전한 메신저를 두고 카카오톡으로 다시 돌아왔고, 구글플러스의 단체 영상 채팅, 개인 공간, 그리고 위치 공유, 전체화면 HD등의 혁신적인 기능에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은 함께 할 사람이 없어 페이스북으로 돌아왔다. 지난 10년간 누구보다 많은 도전을 받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2016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애플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에 맞섰지만 개인용 컴퓨터 부분에서는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이 3퍼센트에서 7퍼센트로 증가했을 뿐이다.
이러한 네트워크 효과에는 긍정적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90년대 생들에겐 추억의 게임 '바람의나라'가 있다. 모든 연령이 이용할 수 있는 게임은 이제 불법 사행성 도박의 광고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게임에 접속해보면 화면에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불법 사행성 도박의 딜러들이다. 말을 걸면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을 하면 계좌를 알려준다. 입금을 하면 홀짝을 맞추는 단순한 게임에 배팅이 시작된다. 게임의 원래 기능과 상관없이 필요한 정보가 많은 곳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이다.
네트워크 효과가 적용되는 분야에서는 선도자가 점점 많은 시장 점유율 차지하다 결국엔 시장 전체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처음 나오던 때를 떠올려보자. 초기 시장에서 여러 메신저들이 앞다투어 출시되고 있었고 나는 그 당시에 카카오톡은 물론이고 엠엔톡이라는 메신저도 사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용자 수가 빈약했기 때문에 엠엔톡에 접속하는 일은 줄어만갔다. 빈익빈 부익부는 네트워크 효과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핵심은 연결에 있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콘텐츠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연결, 즉 네트워크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이다. 연결없는 콘텐츠 업그레이드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다. 열심히 하는 것은 쉬운 길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열심히 하는 것은 어려운 길이다. 성공은 늘 어려운 길을 간 사람에게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