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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Sep 15. 2019

설렘은 공짜가 아니다

손이 큰 내가 써도 오타가 나지 않으면서 주머니에 넣어도 부담스럽지 않아 딱 좋았던 아이폰, 시계도 안 하고 손에 뭔가 들고 다니기 싫어하는 내가 기능성과 디자인 모두 마음에 들어 구매한 블랙 가죽 케이스, 돈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게 중요하고 돈은 무조건 기분좋게 써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내가 디자인 보자마자 쓸 때마다 기분좋겠다는 생각에 바로 발급받은 그린카드.

내 인생엔 좋아하는 것만 남기자는 생각에 필요없거나 설레지 않는 것들을 줄여나가는 과정에 있는데 이 녀석들은 언제 봐도 좋았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 나라는 말이 있듯, 늘 함께 하는 물건일수록 좋은 기운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느끼는 중이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 투성인 삼종 세트를 어제 잃어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일단 스트레스도 엄청 받고 잠도 잘 못잤을텐데 생각보다 감정적인 타격이 없다. 공인인증서부터 시작해 어마어마하게 귀찮은 백업 작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마음은 가볍다.

필요하지 않고 설레지 않는 것들이 삶에서 사라지면 시원한 감정이 드는데, 이번에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동안 좋은 기운을 주고 함께해줘서 고마웠노라는 인사가 먼저 올라왔다. 좋아하는 것이 의도치 않게 사라지는 경우는 좀처럼 경험하지 못해서 이런 감정이 낯설다. 원래 더 불편하고 아쉬워야 하지 않나. 마치 최선을 다한 결과에 승복하는 그런 마음인 것일까.

삼종세트의 빈자리는 상상하는 것보다 나에게 많은 불편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이 의도치 않게 사라지는 경험과 그 동안 함께한 것에 대해 감사를 느끼면서 앞으로 함께 할 녀석들도 좋아하는 녀석이 아니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미니멀리즘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고 소중한 것만 남기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정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을 구별하는 눈이다. 미니멀리즘은 빨간 줄로 그을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삶의 방향성이다.

추석 때는 장례식을 다녀왔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데 순서는 없다. 언제 다할 지 모르는 생의 매 순간을 아름다움으로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자. 당신을 설레게 하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정리하라. 인생은 짧고 설레는 건 많으니까.




#한달쓰기 day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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