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의미 있는 인생이어도 괜찮다. 그 의미를 나밖에 모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이고 우스워 보이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원래 인생은 의미가 없는 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우체통에 꽂힌 국제우편을 보고 아이가 되고 말았다. 누군지 모를 산타할아버지가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 눈 앞에 있지만 내용물은 모를 때의 그 설렘. 박스를 이리저리 흔들어보다 안의 내용물에 확신이 왔을 때조차 바로 풀어버리지 않고 그 흥분을 더 간직하고 싶어 하는 마음. 모두 같았다.
집을 나서는 길이었기에 돌아올 때 우체통에서 찾아도 되건만 나는 굳이 우편을 뽑아 들었다. 안 주머니에 넣었다. 내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다. 하루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모두가 잠에 든 새벽, 조심스럽게 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돼지 목살의 선홍색도 이런 색이겠지.
에어비엔비 카드
이 카드를 마주친 건 1년 반 전, 발리에서였다. 발리에서 두 달 동안 살다 보니 핫플레이스는 어느 정도 꿰고 있었고 그중 한식당 역시 알고 있었다. 그중 단연코 탑은 마포갈매기. 다른 곳과 달리 그곳만은 저렴한 인도네시아 가격이 아니었지만 자주 갔다.
은인 같았던 친구를 발리에서 만나 한국 음식을 소개해줄 겸 대접하기 위해 마포갈매기로 갔다. 그 친구는 발리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북부 멘장안에서 만난 사업가이자 슈퍼 기버였다. 이 친구 덕분에 현지에서 생긴 마주친 문제를 해결 함은 물론 그 당시 낚시에 빠진 나를 자신의 차에 태워 발리에서 인도네시아 본섬으로 나를 배로 태운 후에 자기 차로 총 6시간을 운전해 강태공 친구에게 데려다주었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 이 친구도 그 책을 알고 삶에 영향을 받은 터라 이 친구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내내 우리는 경제적 자유와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가까워진 친구에게 대접을 하기 위해 발리를 뜨기 전에 마포갈매기로 간 것이다.
에어비엔비는 아니었지만 임대 사업 역시 하고 있었던 그 친구는 술은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사이다로 거-하게 한 잔 하고 계산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있던 프랑스 커플이 무척 낯이 익은 카드를 꺼내는 게 아닌가. 그때였다. 에어비엔비 카드를 처음 마주친 게.
궁금한 건 잘 못 참는 성격 탓에 바로 말을 붙였다. 이걸로 결제가 되느냐고. 어디서 에어비엔비를 하며 이 카드는 대체 어디서 발급을 받는 거냐고. 그냥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는 거란다. 결제하고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일 년이 지났다. 슬슬 추워지니 발리가 그리웠다. 그리고 대금을 수령하는 방법을 설정하는 곳에서 에어비엔비 카드 발급하는 방법을 찾았다. 알리바바에서 주문한 것처럼 신청해놓고 언제 올지 잊어 가던 차에 카드가 도착했다.
에어비엔비에서 슈퍼 호스트이기도 하고 나에게 취직이 아닌 다른 길이라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알려준 것 역시 에어비엔비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것이 사업의 크기를 떠나 특별한 의미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때론 연필 한 자루가, 빛바랜 쪽지 한 장이, 못 생긴 스프링 노트 하나가, 길에서 산 반지 하나가 누군가에겐 특별할 수 있다. 나는 저 카드를 보면서 꼭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 카드를 받는다고 해서 매일 들고 다니며 사용할 생각이 딱히 없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도,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저 카드가 필요하지는 않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저 카드를 신청할 이유가 전혀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카드가 갖고 싶었다. 내가 근로자에서 자영업자로, 그리고 사업가로 나아가게 만들어 준 첫 번째 계기니까.
세상엔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황정민이 '꽃분이네'라는 가게를 좀처럼 팔 생각이 없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파는 게 당연한데도 말이다.
'꽃분이네'는 그에게 경제적 가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만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있다. 그것이 장롱에서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모자보건일지' 처럼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우리 인생은 좀 더 주관적으로 특별해도 된다. 어차피 내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나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삶의 의식이 풍부하면 삶은 자연스레 풍부해진다. 삶의 의미를 찾을 줄 아는 사람은 더 자주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감정이고 주관적이다. 내가 느끼는 행복과 만족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다.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당신만의 의미를 찾아도 된다. 당신의 인생엔 좀 더 의미가 있어도 된다. 당신의 인생은 좀 더 특별해져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