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를 그려보자

온라인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by Hello Earth

아이의 한 달 프로젝트가 끝났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성공을 자축하며 아이는 이틀간 숙제를 끝낸 후 1시간씩의 넷플릭스를 즐겼다.

(그래봐야 그리지와 레밍스, 도라에몽 수준의 아직은 순수한 초딩아들이다.)

한 달이 끝이 아니니 또 다시 한 달 실천계획을 짜기로 했다.

일단 아이의 의견에 따라서, 한 달 프로젝트에서 했던 스케줄과 비슷하게 짜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가 대뜸 새로운 것을 끼워넣겠다고 한다.

"너무 지루해. 무언가 새로운 걸 했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이야기했다.

"독서일기를 추가할까?"

아이는 곰곰 생각했고, 마침 지리 책에 심취해있던 나는 지리에 약하다는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그럼 지도 그리기는 어때?"


꽤 괜찮은 제안이었나 보다. 국기 알아보는 건 자신있다면서도 지리에 약하다며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큰 아이인데, 요즘 부쩍 둘째아이가 지구본과 나라에 관심이 많은지라 은근히 추월당할까 걱정되었던 걸까?

(5살인 작은아이는 세계 여러나라의 국기와 지리에 부쩍 관심을 가지면서 지구본과 국기책을 끼고 사는 중이다. 덩달아 한글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결국 고심 끝에 아이는 매 주 월요일에 한 나라씩 지도를 그리고 그 나라의 개요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나는 아무 지침도 없이 시작하기엔 아이 혼자 막막하지 싶어 직업병을 발휘해 조사 양식을 만들어서 출력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첫 월요일.

온라인 수업도 끝나고, 간단한 딸기잼을 빵에 바른 점심도 휘리릭 먹고 나니 심심했던 모양.

지도부터 시작하겠다며 책을 뒤지며 어떤 나라를 할 지 궁리하고 있었다.

"미리 조사하지 않으면 지도 만드는 날에는 지도 만들기도 빠듯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꾹꾹 눌러담았다. 첫 날이니 해보고 아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다.

결국 아이는 어떤 나라를 할 지 30분은 온 거실을 맴맴 돌며 고민하더니 우리나라를 골랐다.

"처음은 우리나라부터!!"


하지만 시작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이의 첫 프로젝트임을 고려해서 미리 아이의 언질을 받아 도서관에서 관련 지도책만 여러 권을 빌려 거실에 깔아두었건만 아이는 보질 않았던 것.

게다가 내가 빌려둔 "지도 그려보기" 책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우리나라 작가가 쓰고 그린 책인데 정작 "우리나라"는 그 지도 안에 없었던 것!!!!

아이도 나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아마 작가는 우리나라니까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해서 생략한 게 아닐까?"

우리는 이런 말을 주고 받으며 제일 무난한 나라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다시 기나긴 고민 끝에 아이는 자기가 가고 싶은 나라라며 "용선생이 간다"에서 본 오스트레일리아를 골랐다.

그리고 미리 사둔 기름종이에 세계지도부터 조심스레 그린 후

드디어 첫 나라인 오스트레일리아 지도를 성공적으로 기름종이에 베껴냈다.

(맞다. 우린 여태 이런 기본적인 활동조차도 해 본 적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찾아본 블로그에는 2~3학년 아이들이 즐비하던데... 아들도 엄마도 달팽이임을 인증)


아이는 기름종이에 그린 지도를 오려 조심스럽게 활동지에 붙이고, 왔다갔다 책을 여러 권 가져가면서 문화니 인구니 역사니 적기 시작했다. 아주 간단한 1장짜리 활동지이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조사하는 게 서투른(본인도 서투르다고 인정했더랬다.) 아이로서는 꽤나 어려웠을 터.

1시간 여를 낑낑대던 아이가 드디어 거실로 나왔다. 역사가 짧은 나라라 상징적인 역사는 없을 법한데도 책에서 본 내용을 콕 집어서 잘 정리했더랬다. 전통음식이 딱히 없는지 그 칸은 비워두었지만 문화니, 역사니 하는 것들은 꽤 빼곡하게 정리하고는 스스로도 프로젝트 숙제 중에서 시간은 제일 많이 걸리는데 할만했다며 꽤나 뿌듯해했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 추가하는 것을 잊진 않았다. "다음엔 미리 조사해야겠네..."라고


아주 간단한 활동지 한 장일 뿐이었는데, 아이는 전 세계 모든 나라를 하고 말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그래도 전 세계를 다 하면 칭찬으로 선물은 줄 수 있냐며 나에게 물었다.

(우리집 학습 원칙은 스스로 계획, 스스로 실천, 스스로 보상이다.)

나는 아이가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귀여워 하는 것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성공 보상은 스스로 할 것이고 엄마인 나는 자랑스럽다는 말과 함께 보상이 아닌 "선물"을 주면 될 듯했다.


아이는 지도 그리기가 끝나고 자신감이 붙었는지 일기 두 편, 수학 문제집 두 장, 영어 테스트 등 내일과 모레의 이틀치 숙제까지 해치워버렸다. 한 장 빽빽한 일기를 쓰면서 저녁 9시가 넘도록 끙끙대며 힘들다 하면서도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아들이 귀여웠다. 숙제를 미리한 건 내일 가게 될 모처럼의 카라반 여행이 기대되었기 때문일텐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행 당일날 숙제 때문에 쌔우는 일이 없도록 내가 말하기(잔소리하기) 전에 스스로 한 것이었다.


결국 독서록은 못 하고 졸리다며 씻으러 들어갔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아이를 응원한다.

아주 느리지만, 아이는 분명 스스로 공부에 대한 재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앞으로도 가끔은 놀러 나가는게 숙제보다 더 급하다고 생각해서 싸울 일도 있을테다.

중요한 건, 예전만큼 몸으로 싸우지 않고 몇 마디의 말로도 아이의 의지를 되돌릴 수 있을 정도로 아이 스스로 단단히 여물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도 아이도 오늘 한 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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