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Earth Apr 26. 2022

모든 (둘째) 아이는 천재다

재주 많은 둘째 아이 이야기

"엄마, 왜 난 '작은'아이야?"

늘 사연 많은 큰 아이 이야기만 늘어놓다 보니 무난하기 이를 데 없는 작은 아이가 나중에 알게 되면 속상해하지 싶어 이번엔 작은아이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작은 아이는 터울 많은 둘째답게 뭐든지 빨리 해냈다.

형아가 방과 후에서 하겠다고 하다가 시시하다며 포기한 로봇 블록(레고에서 조금 더 진화한 레고와 코딩 로봇 중간쯤?)으로 무언가 뚝딱거리며 만들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는 드라이버와 나사가 있어야 만드는 로봇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올해 2월 경 둘이 로봇 재료 가지고 싸우기에 중고마켓에서 2만 원에 2세트씩이나 들고 와서 쥐어주면서는 둘이서 각각의 로봇 만들기에 심취한 적도 있었다.


그 뒤로 설명서를 보면서 로봇이나 레고 블록 만드는 게 재미있었던 지 가끔 생각날 때면 로봇 상자를 들고 와서는 뜯고 돌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아침,

반찬 만드느라 내가 바빴던지라 아이들이 무얼 하는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데 작은 아이가 로봇을 하나 내 앞으로 내밀었다.

헉...

형아의 로봇 책 2권에 있던 경주 로봇 자동차인데 그걸 작은아이가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설명서만으로 완성한 것. (참고로 형아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들었던 로봇이었다.)

아빠가 전선을 꼽아주었는데 작동을 안 하기에 아이가 잘못 만들었나 했는데, 형아가 리모컨을 바꿔주었더니 바로 힘차게 나아가는 로봇 자동차!!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걸 5살짜리가 해내다니. 정말 신기했다. 아빠는 방 안에서 형아는 거실에서 각각 책을 보느라, 나는 반찬 만드느라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는데 아무도 놀아주지 않으니 스스로 노는 방법을 터득한 작은 아이는 그렇게 처음으로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작은 아이는 종이접기도 좋아했다.

사실 큰 아이는 종이접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7살 즈음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위니 카 접기에 꽂혀서 잠시 접고 접고 접어서 코코볼 상자 한 가득 담은 이력은 있지만 어린이집 상담 때면 늘 "소근육이 늦은 아이"라며 미술놀이를 시켜주라는 말만 듣곤 했었다. 커다란 종이에 손바닥도 찍고, 모래놀이도 하곤 했지만 종이접기는 내 능력 밖이었고 아이의 관심에도 없었더랬다. 커서는 손으로 로봇도 만들고 종이비행기도 만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리거나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둘째 아이는 그리는 것도 좋아하거니와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사촌 형아를 거쳐 큰 아이를 통해 3대(?)째 내려오는 장난감들은 제 모습을 찾기 어려워 아이가 상상을 마구마구 동원해야만 제대로 갖고 놀 수 있는 망가진 것들뿐.

게다가 직장맘으로 주말 할 것 없이 일하다 보니 아이들과 장난감 판매점 조차 가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나마 사촌 형아가 갖고 노느라 미처 큰 아이를 거치지 못해 온전(?) 한 형태로 물려받은 레고 블록이나 자석 블록 등 손으로 조몰락거릴 수 있는 놀잇감들이 작은 아이에게서 제 역할을 다했다. 코로나 여파로 집에 있게 된 두 아이는 심심했던 나머지 오래된 블록 놀잇감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하더니 택배 상자와 블록들을 요리조리 뚝딱거리며 제법 차고지와 동물 농장까지 갖춘 자기만의 성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기에 입문하고 어느 날, 난지 한강공원에 그늘막을 치고 놀다 심심해진 두 아이가 종이접기 유튜브를 보면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큰 아이가 주도하고 작은 아이는 형아를 따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잘 모르니 형아한테 도움을 요청했더랬다. 하지만, 그 이후 종이접기 책을 빌려다 슬쩍 넣어주었을 때는 설명서를 보면서 비행기도 종류별로 곧잘 접게 되었고, 곧 자기만의 종이접기 세계를 열어가게 되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각각에게 100매짜리 색종이 한 권씩을 넣어주었더랬는데, 결국 작은아이는 자기 색종이 100매를 다 쓰고는 형아 색종이까지 다 써버려 싸움이 나기도 했더랬다.


작은 아이는 영어에도 관심이 많았다.

큰 아이 때와 마찬가지로 등원하는 차 안에서 늘 영어노래를 틀어주었는데, 큰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영어 수업을 해도 집에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아 어린이집을 졸업한 이후로는 영어에 손 한 번 대지 않았다.  결국 4학년이 된 지금에서야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어를 공부로 생각하지 않는 작은 아이는 집에 와서도 끊임없이 알파벳과 영어책에 관심을 가지고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영어 선생님이 올 때면 제일 뒤에 앉아있다가도 스멀스멀 앞으로 나와 끝날 때는 제일 앞에 앉아있다고 했다. 한글도 채 시작 못한 아이가 4살 때부터 집 앞 놀이터에 분필로 알파벳을 쓰면서 놀았고, 지금은 더듬더듬 책을 읽는 큰 아이보다도 더 많은 단어와 더 많은 문장을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작은 아이가 잘한다기보다 큰 아이가 너무 많이 뒤처졌기 때문이기는 하다...)


신기한 건, 큰 아이는 한글책을 읽을 때 거의 외우다시피 해서 혼자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읊곤 했는데 작은 아이는 워낙 다양한 책에 노출되어서 그런 것인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 많은 사연은 있었지만 큰 아이는 여전히 남자아이 치고 이야기를 비교적 조리 있게 말하는 스타일인데 비해, 작은 아이는 동일 나이의 큰 아이에 비해 다소 어눌한 편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나오면 저절로 눈이 반짝이는 작은아이, 그에 반해 둘째 아이가 영어를 시작하면 슬그머니 숨어 버리는 큰 아이. 다른 건 몰라도 영어를 말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5살짜리 동생이 11살 형아를 압도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영어를 일찍 못 시켜서 괜히 아이가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사실 큰 아이는 독박 육아의 스트레스와 아토피, 그리고 국어가 먼저라는 신념이 합쳐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국어가 먼저라는 신념에 충실했던 까닭에 큰 아이는 중간중간의 방황은 있었지만 책을 좋아하고 자기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줄 알았다. 내가 이야기 앞을 말하면 제법 뒷 이야기를 이어갈 줄도 알았다. 꾸준히 했더라면 제법 글쓰기나 토론에도 두각을 나타냈을 아이였는데, 2~3학년의 암흑기를 거치느라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린 듯하다.


다행히, 4학년 엄마의 휴직과 함께 영어를 처음으로 공부(?)하게 된 큰 아이는 여전히 영어를 어렵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떠듬떠듬 조금이나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3학년 교과서 영어 수준을 따라가느라 고생하고 있기는 하지만, 꾸준히 해서 내년 아빠와의 해외여행에 써먹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가지고 제법 노력하는 중이다.


육아서를 보면 영어가 사교육의 영향으로 학생 간 편차가 가장 큰 과목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접한 아이들은 비교적 영어 수업을 어려워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원어민 선생님과 대화로 농담까지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하면서도 무슨 말인지 몰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저 씩 웃고만 있었을 아이 모습을 상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심지어 집에서조차 동생에게 영어로 밀리는 상황일 터이니 형으로서 체면이 영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움조차도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는 걸 아이도 알 것이라 믿는다. 그 상황을 극복하려면 지금 늦었다 생각 말고 부지런히 익히고 익혀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되었다.


반대로 어려서부터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형아의 경험을 통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영어를 접하게 된 작은 아이는 둘째라는 혜택 속에서 조금 더 수월하게 학교 수업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둘째라는 것 만으로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더 빨리 접할 수 있기에, 둘째는 모두 천재가 되는 건 아닐까?

 능력의 천재, 눈치의 천재 말이다. 하하...

작가의 이전글 숙제 vs 연휴의 평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