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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12. 2022

카라반에서의 하루

2층침대에 대한 로망이 시작되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던 듯 하다.

아파트에 살던 내가 처음으로 인근 단독주택에서 살던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랬다.

이름도 기억난다. 배**

중후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쿵"하고 울렸고,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그 친구네 집에 대한 기억은 그 친구의 얼굴과, 하얀 잡종견 로키, 그리고 2층침대가 전부다. 침대가 없던 나였기에 침대가 있는-그것도 2층침대- 친구 집에 대해 부러움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하얀 '로키' 라고 부르던 개는 나중에는 친해졌지만,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이후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후 가난하면서도(?) 형제가 많아 나에게 오롯이 투자하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 아닌 원망을 속에 담으며 2층침대의 로망을 품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와의 추억은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전까지도 가끔은 내 꿈에 나타나곤 할 정도로 강렬했던 것 같다. 살았던 아파트, 하교하면서 헉헉대던 비탈길, 그리고 갈림길에서 친구와 헤어지던 일, 그리고 그 친구네 집에서의 2층침대의 추억과 교회 같은 곳에 같이 가서 받았던 초코파이의 달콤함까지도...


몇 십년이 지난 지금, 친구와의 추억에서 2층침대의 로망이 시작된 나와 달리 우리 아이들에게 2층침대의 로망은 카라반 캠핑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출발도 하기 전에, 현장 사진 속 2층 침대를 본 큰 아이가 환호했고, 뭣도 모르는 작은 아이는 도착하자마자 본 2층침대에 열광했다.

큰아이는 들어가자 마자 2층침대로 올라가서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고, 작은 아이는 낑낑대면서 못 올라가니 아빠가 들어올려주고 나서야 2층침대로 올라가서는 같이 꺅꺅 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본의아니게 피해를 받았을 주변 카라반 이웃들에게 이자리를 빌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처음에는 2층침대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작은 아이를 계속 받쳐주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스스로 올라가더니 결국 혼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데에도 성공한 작은 아이.

부족할 뻔했던 고기도, 미처 챙기지 못한 쌈장도, 아예 깜박하고 생각도 하지 못한 맥주까지...

챙겨온 장비는 한가득인데 정작 먹을 게 없어 소문난 캠핑 먹을 것 없이 온 가족 배 꼬로록 굶을 뻔했으나, 멋쩍어하는 엄마, 황당한 아빠와 달리 2층 침대 하나만으로 아이들은 너무도 즐거워했다.


예전 난지 캠핑장 글램핑을 갔을 때에는 한강공원의 훌륭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놀 거리가 없어 하루종일 티비만 보던 두 아이였지만, 이곳에서는 2층침대로 대동단결하며 한참을 뛰어놀다가 배고픔에 미처 고기굽는 아빠는 자리에 앉지도 못한 사이 카라반 안에 있던 식탁에 앉아 고기와, 파인애플, 밥으로 한그릇씩 뚝딱 비워냈다. 2층침대로 기분이 좋았던 집돌이 작은 아이도 여세를 몰아 가족산책에 나서자하니, 약간의 반항 끝에 같이 산책길에 나서주었다.


휴양림에 위치한지라, 주변엔 그야말로 벌레투성이. 여태까지의 큰 아이는 채집 채집을 노래부르면서도 정작 채집을 가자하면 핑계를 대서 안가려고 했는데(아마 곤충 채집에 실패했을 때 겪을 실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미리 방어막을 치는 듯 했다) 아빠와 곤충에 해박했던 아빠 친구와 등산을 한 번 하더니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곤충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춥지 않은 날씨여서 곤충을 관찰하기에는 딱 좋은 날씨.

그만 들어가자는 집돌이들(작은아이와 아빠)을 들여보내고 큰 아이와 본격적으로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도 더 많은 곤충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아이는 책에서 본 곤충 모습을 떠올리며 이름을 척척(틀렸을지도 모르지만) 맞추며 적극적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숙소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아이가 소리를 질러댔다.

헉...

나무 아래 있던 풀숲에서 잘게 부서진 톱사 사체를 발견한 것.

다행히 뿔은 멀쩡했지만, 거친 야생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실패한 톱사가 몸이 세 군데로 분리된 채 죽어있었다.

아이는 생각보다 작은 크기라며 굶어죽은 것 같다고 했다. 작은 크기로 살아남기에는 이 작은 아이가 버텨내야 했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평화로운 사람들의 삶과 달리 매일매일 자연 세상에서 조그마한 몸으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을 톱사의 삶이 안쓰러워보였다.


그 뒤로 커다란 민달팽이부터, 거대 참나무 수액, 고마로브 집게벌레와 거미, 곱등이 같은 제법 다양한 벌레 혹은 곤충들을 만날 수 있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아이의 표정은 엄청난 수확에 상기된 듯 보였다.


다음 날, 아이는 카라반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었고, 우리는 아이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려 체크아웃을 했다.

휴양림 안으로 들어가볼까 했는데 아이 둘 다 다른 곳으로 가길 원하는 듯해서 아쉽지만 그냥 나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용인 에버랜드에 가자는 큰 아이.

아이 아빠가 검색해보니 네 가족이 갈 경우 20만원이 넘을 정도로 비싼 곳이었다.(놀이동산 도대체 언제 가보고 안 간 건지 기억도 안나지만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헉...)

서울랜드로 협의를 보고 과천으로 향한 우리는 너무 오랫만에 온 곳이라 입장권 결제부터 헤맸다.

그래도 친절한 직원 덕에 제일 저렴하다는 가격으로 결제를 하고 들어오게 되었다.


작은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 온 적은 있지만 아마 3~4년 전인 듯하다.

밤새 비좁은 침대에서 잠 못자고 설친 작은 아이가 걱정되었지만, 오랜만의 나들이에 설렌 큰아이를 위해 과감히 온 이곳. 아빠와 큰 아이를 떨궈놓고 작은아이와 실내놀이터로 향했다.

엄마와 실내놀이터는 처음이라 처음엔 흥미롭게 놀던 아이는 시간이 40분을 채우지 못하고 먼저 나왔다. 표정이 어두워 속으로 이를 어쩌나 싶어 걱정하며 차를 좋아할 아이를 위해 어린이 범퍼카에서 40분을 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막상 차례가 되어 앉았는데 돌연 출발하기 직전 나가겠다며 울먹거렸고, 그렇게 우리는 첫번째 놀이기구 타기에 실패했고, 한참을 돌아다니며 미끄럼틀도 타고 했지만 아이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괜히 억지로 태우는 건 안좋을 듯해서 돌아다니다가 호두과자를 꺼내 주니 배고팠는지 정신없이 받아먹는 녀석. 말을 좀 해 주지....


신기하게도 호두과자를 정신없이 입에 넣고 나니 갑자기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 듯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피터팬 배타기도 깜부 비행기도 엄마와 함께 타는 건 무섭지 않았던 걸까?? 용기뱃지 하나에 눈 딱 감고 한 번 놀이기구를 타보니 재미있었던지 아이는 타고 또 타며 즐거워했고,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따로 떨어졌던 아빠와 큰 아이랑도 가끔 마주칠 때가 있었는데 금방 지쳐 집에 갈 줄 알았던 아이들은 결국 6시간이 넘어서야 돌아섰다. 날씨는 쌀쌀해져 추워서 가자했을 법도 한데, 작은 아이는 무서워서 타지도 못하는 티키톡 열차를 바라보며 춤을 추었고, 어느새 범퍼카에서 티키톡으로 넘어온 형아는 두번을 타는 동안 손을 마구마구 흔들어주었다. 예전에 탔을 땐 무서워서 손을 내밀 생각도 못하던 큰 아이가 언제 저리 컸나 싶은 생각도 들고, 아까 어둡기만 하던 작은 아이의 표정이 왜 이리 밝아졌는지 추위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며 신남을 온 몸으로 발산하던 작은 아이의 모습도 신기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 근처 즐겨 가는 설렁탕 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씩 먹고 나니 몸이 따뜻해지며 훈훈하게 여행을 마무리했다. 티비가 없이도 재미있었다는 아이들, 놀이공원이라는 우리와는 맞지 않을 줄 알았던 의외의 장소에서 즐겁게 놀던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했다.


다음에 언제 또 올까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자연과 인위 사이에서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접점을 찾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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