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Earth Nov 29. 2022

엄마도 '욱'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물론, '욱'하고 후회하기는 합니다마는...

"아들! 이렇게 늦게 일어났으면서 또 책이야! 밥 먹을 시간도 없으면서 그렇게 느즈막하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차라리 밥 안 먹던지, 스스로 차려 먹고 가!"

"오늘 체육인데 밥 안먹고 어떻게 가?"

"아들아, 그리고 영어 말인데 레벨테스트지만 그래도 그동안 배운 건 맞추는 게 맞지 않니? 좀 더 노력해야 될 것 같지 않아?"
"?"
"1년동안 고생했는데, 아직 2학년 수준의 단어조차 모르면 어떡해!"
"하아...."


아이의 1년 동안의 영어 수업이 모두 마무리되고, 새로운 교재를 찾기 위해 관련 홈페이지에서 레벨테스트를 보고 난 후, 그야말로 "욱~"을 참지 못하고 아침부터 날카로운 말을 아이에게 쏟아붓고 말았다. 1년인데, 그래도 1년 동안 영어 교재를 꾸준히 했으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기본단어조차 아이는 모른다며 다 넘겨버리고 있었다. 결과는 2~3학년 수준의 레벨. 예상은 했지만, 레벨에 상관없이 아이가 응당 알았으리라 믿었던 아주아주 기본 단어(심지어 내가 알기로 매우 자주 나온 기본 단어)조차 모른다며 넘겨버리는 큰 아이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아이의 노력을 칭찬하자며, 기본단어를 몰라서 헤맬 때에도 속으로는 답답함을 꾹 참을지언정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아이의 노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려 노력했는데 그깟 레벨테스트 한 번으로 그간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려버렸다. 아이도 화를 내지는 못했지만 한숨만 푹푹 쉬며 애써 화를 참으며 학교로 등교했다.

그렇다.

나는 그간의 인내가 무색하게도, 한순간에 아침부터 '영어영어!!'를 외치며 등교 전부터 가뜩이나 영어거부감이 큰 아이에게 영어스트레스를 더해준 천하의 나쁜 엄마가 되었다.


작년 꼭 이맘 때였다. 엄마가 주도해서 잡아주지 않으면 공부가 안 되고, 엄마가 주도해서 잡아주자니 아이와 싸움만 되는 Bricks30을 포기하고, EBS초목달 온라인강의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Mercury과정과 Venus 과정까지 모두 마쳤다.

Earth 과정으로 진급하느냐, 아니면 다른 교재로 넘어가느냐 고민해야 할 시점.

일주일에 한 번씩 테스트를 보았더니 아이와 갈등이 잦아져, 모든 걸 아이의 주도 하에 하도록 한 Venus 과정. Mercury 때는 나와 함께 이야기를 모두 읽고 해석까지 했었는데, Venus는 초반엔 나름 매일 출석과 성적 우수로 3달은 장학금을 받다가, 자기주도를 시작한 이후로는 테스트를 못봐서 장학금을 놓치기 시작하더니 결국 마지막 테스트까지 3번 모두 장학금을 놓쳐버렸다.


아이가 어렸을 때 왜 한글에 심취하는 시기가 있지 않던가. 지나가는 간판의 한글을 읽으려고 애쓰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큰 아이도 요즘 영어에 재미를 붙였는지 길가다가 영어 간판 있는 걸 읽으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시험에 망치며 장학금 획득에 실패하다보니 함께 자신감도 뚝! 떨어져버렸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다른 프로그램으로 갈아타야 할 시점.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찾다가 괜찮은 프로그램을 찾아서 아이에게 레벨테스트를 해보자며 부추겨놓고는 그동안 아이의 실망스러운 학습 과정에 애써 눌러두었던 불만이 결과로 나타난 걸 보고 인내심의 한계를 내 스스로 드러내놓고 말았다. 그래도 레벨테스트를 하겠다며 다가온 아이의 노력에 대한 칭찬은 커녕 악담을 퍼부어버렸으니, 큰 아이는 등교하면서 엄마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어려서부터 'Peppa Pig'나 'Elephant and piggy' 'Fly Guy', 기타 수많은 원서그림책을 한글책과 섞어서 읽어주다보니 영어에 딱히 거부감이 없는 6살 둘째. 둘째에게 책을 읽어주다보면 가끔 큰 아이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들을 때가 있다.(큰 아이까지 노린 내 의도가 조금은 섞여있었지만..하하) 그런 경험이 누적되다보니, 큰 아이도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래도 여전한 영어거부감 때문에 영어 원서는 생각도 못했었다. ORT니 Reading Tree니 하는 엄마들끼리 유명하다는 원서 읽기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너무도 머나먼 세계의 이야기였다.

 

마침 유학 후반기, 1학기에 비해 부쩍 여유로워진 시간. 한가해진 시간에 뭘 할까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동안 손을 놓았던 중국 드라마, 중국 소설 등을 다시 보게 되었다. 중국 드라마의 특성이 엄청나게 긴 분량 아니던가. 최장 120부작까지 있는 드라마에 빠지다보면 아이들이 집에 와도 계속 틀어놓으며 집안일을 하곤 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외국어 드라마를 틀어놓고 저걸 알아듣나 싶었는지 슬쩍슬쩍 들여다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냐고 묻곤 했다.

한번은 큰 아이가


"왜 엄마는 계속 핸드폰 드라마 보면서 우리는 유튜브 못 보게 해?"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잘 됐다 싶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큰 아이에게 말해주었었다.

"자 엄마거 드라마 잘 봐봐...여기 한국어 글자가 있어? 없지? 중국어 자막은 사투리가 워낙 많은 지역이라 원래부터 붙는 거니까 엄마가 없앨 순 없고 말이지.

아들아, 너도 네가 좋아하는 거 자막 없이, 아니면 영어 자막만 켜고 보면 마음껏 봐도 돼. 시간 제한 없음!!"

"....."


엄마를 공격해서 유튜브 시청 시간 좀 늘려보려 했던 큰 아이는 당황했다. 하지만, 뭐 어쩔 것인가. 자막없이 볼 수만 있다면 무한으로 보라는데... 하하하...


중국어를 배울 때 영어처럼 회화책으로 안 배우고, 중국 드라마, 원서 소설(주로 중국 근현대사 시기의 위화 소설)이나 뉴스 기사로 언어를 배웠던 덕분인지, 중국어를 놓은지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닫힌 귀가 수월하게 뚫렸다. 물론 한 달도 훨씬 넘게 드라마를 하루종일 틀어두었더니 굳이 회화 책을 보지 않았지만 말도 영어보다는 잘 한다. 하핫.

(반대로 영어는 어렸을 때부터 회화책으로만 배우다보니, 배운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말을 못한다. 미드를 봐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이지...)


그래! 그럼 아이들도 애니메이션으로, 원서읽기로 영어를 익히게 해볼까?

말은 좋다. 얼마나 좋은가.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보았을 뿐인데 영어가 술술 나온다면 말이다.

나는 며칠에 걸쳐서 인터넷을 이 잡듯이 뒤졌었다. 역시나, 광고글로 가득찬 인터넷 세상에서 '내 아이를 위한 옥'을 가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머나먼 길을 돌고돌아, 초목달과 같은 EBS 같은 사이트에서 원서읽기 프로그램이 있어 찾아보니 오오오...선생님이 참 재미있는 분이네??

그렇게 재미나게 원서 'Nate the Great'를 읽어주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아이의 동의를 얻어 프로그램을 등록하면서도 '과연 이번엔 아이가 제대로 할까?'마음속으로는 심란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던 모양이다. 분명 꾹꾹 누른다고 눌러왔는데, 계속 시험 결과가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건만, 굳이 아이가 1년 간의 영어 수업이 모두 끝나 기분이 최고조일 때 그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버린 천하의 나쁜 엄마.


육아서대로 하고 있다며 나름 뿌듯해하던 내 마음도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렸다.


"아들,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매거진의 이전글 제19회 YES24 어린이독후감대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