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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5. 2022

지하철 투어

무계획 여행의 즐거움

주말 아침이면 늘 고민에 빠진다. 아마 세상 대부분 부모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어디 가나..."

며칠 전 캠핑의 즐거웠던 경험 덕에 한껏 기대치가 높아진 큰 아이는 아침부터 어디 갈 거냐며 물어보았다.

반면, 밖에서 뛰어노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조작하는 걸 좋아하는 둘째는 형아의 나가자는 말 한마디에 표정이 어두워지며 "난 안나가."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늘도 엇갈리기 시작하는 둘의 관계를 어찌 풀 것인가.

난감한 나의 표정을 읽은 큰 아이는 이러다 오늘도 엄마를 동생에게 뺏기고 자기는 아빠와 둘이서만 외출하겠다 싶었는지 이런저런 말로 동생을 구슬리기 시작했다. 내가 설득이 안되니 기다리라고 아무리 말려도 나가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흥분한 큰 아이는 아무말대잔치로 나아갔고, 결국 작은아이 눈에는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내가 작은 아이를 달래고 있자니 큰 아이가 무심결에 예전에 작은 아이 어렸을 때 아빠와 다녔던 지하철 투어를 제안했다. 사실 그것조차도 큰 아이의 밑져야 본전인 아무말대잔치의 일부였는데, 작은 아이의 표정이 순간 바뀌면서 씩~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절대 이룰 것 같지 않았던 합의를 이끌어내며 모두가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 투어를 하게 되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타고 싶은 버스 번호가 달랐는데, 큰 아이가 기분이 좋았던지 자신이 타고 싶었던 버스를 타고 2정거장 간 후 동생이 타고 싶어 하는 버스를 타자고 제안해주어서 공평하게 한 번씩 기회를 갖기로 했다.

우리는 421번->2016번을 거쳐 5호선 행당역-> 종로3가역->1호선 서울역을 거쳐 4호선 이촌역까지 이동한 후 502번 버스를 타고 신세계백화점 인근에서 내려 남대문까지 걸어간 후 남대문이 바라다 보이는 편의점 앞에서 싸온 김밥과 음료수, 간식 등을 먹었다. 큰 아이는 작은 아이를 설득해서 남산을 올라가자 했지만, 이번 결정권은 작은 아이에게 있었기에 우리는 서울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동 중 2층 버스를 발견하며 생각이 바뀐 두 아이들. 202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작은 아이의 의견에 따라 내려서 청계천을 따라 걸어갔다.  처음 청계천을 가 본 아이들. 콸콸 시원하게 흐르는 물살에 밀릴 듯 안 밀리려고 끙끙거리던 물고기가 포착되었고, 물고기 이름을 맞추느라 한바탕 소란해진 아이들. 돌고기인지, 갈겨니인지 한 때 꿈이 어부였던 큰 아이는 어느새 이름을 잊어버렸는지 맞추지 못했지만 모두 무계획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마침 이번에 결정권을 가진 큰 아이는 북악 스카이를 가고 싶다며 집 앞에도 오는 7212번 버스를 타겠다고 했고 우리는 그렇게 7212번을 타기 위해 청계천을 따라 종로 3가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폐점했는지 많은 가게의 문이 닫혀 썰렁한 공구상가들을 지나 종로 3가에 도착해 커피와 음료수를 각각 마신 뒤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뀐 큰 아이. 광화문에서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우리도 내리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세종대왕 상 뒤편에 있는 이순신 박물관에 들르니 신이 난 두 아이들.


큐알 인식을 하고 입장하니 한글 놀이터인 줄만 알았던 작은아이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갑자기 전쟁이라며 영상 속에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무시무시한 대포소리와 함께 묵직한 사람 목소리까지 귓불을 때리니 소리만으로도 무서웠던 듯 나가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재빨리 손을 잡고 영상을 빠져나오니 다행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체험이 가득한 이순신 박물관. 큰 아이는 총쏘기로, 작은 아이는 요즘 한참 빠져있는 한글 방명록 쓰기를 무한 반복하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박물관을 즐겼다. 큰 아이는 예전에 온 곳이었지만 잘 알고 있는 곳이라 익숙해서 더 신나 했고, 작은 아이는 한글로 방명록 쓰는 건 익숙한 일이라(상상나라)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던 듯했다. 익숙한 체험물에 마음을 놓은 두 아이들과 한참을 놀다가 한글박물관으로 이동해서도 재미있는 체험물을 꾹꾹 눌러대며 우리 가족은 오감만족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이제 슬슬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데 가고 싶은 곳이 달랐던 두 아이들.

작은 아이는 낮잠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인 데다, 이제 슬슬 지치기 시작했던지 묵묵히 뒤에서 따라오던 아빠까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요즘 아빠 짜증이 부쩍!!! 늘었다.)

결국 여기서 둘씩 찢어져 나는 큰 아이와 대학로 서점으로, 작은 아이는 아빠와 6호선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행히 대학로 서점까지는 4 정거장의 가까운 거리. 성조기와 태극기를 등에 매고 확성기와 큰 음악에 맞춰 춤을 춰대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뚫고 버스 정류장까지 거의 날 듯이 걸어온 우리는 버스를 타고 대학로 알라딘으로 왔다. 원하는 서점에 데려다 놓았으니 나의 임무는 완수. 큰 아이는 익숙하게 벌레 책을 찾아다 읽기 시작하고 나는 책 쇼핑에 나섰다.

 한참 각자의 책에 빠져 읽고 있자니 "카톡"이 뜬다.

 6호선->3호선을 타고 신분당선을 타러 이동 중에 꾸벅꾸벅 잠들어버린 작은 아이의 사진.

결국 아빠는 잠든 아이를 안고 집으로 먼저 가고, 우리는 마음껏 책을 읽고는 아빠와 작은 아이 몰래 미니 붕어빵을 호호 불면서 맛나게 먹는 것으로 지하철 투어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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