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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6. 2022

난 원래 공부 못해

줄 세우기 공부에 직격탄을 날리다

제목이 넘나 직설적인 책.

'난 원래 공부 못해!'

줄세우기 식 공부에 믿음을 상실한 나였지만 나 역시 줄 세우기식 공부로 지금을 살고 있고, 또한 그 틀에서 자라왔기에 그 틀을 깨기가 여전히 어려움을 깨닫게 해준 책.

공부를 못하는 찬이, 그리고 그런 찬이 옆집에 살면서 찬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공부 잘 하는 주인공 진경.

찬이는 공부보다 같이 살고 있는 염소와 병아리들을 돌보는데 더 익숙하다.

공부가 왜 필요한지 잘 몰라서일까. 늘 숙제는 남의 것을 베끼거나 주인공이 대신 풀어주거나.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하지만, 이번엔 또 하나의 복병이 나타났으니. 바로 신출내기 신입 담임선생님.

''

라는 중국속담처럼 첫 부임인지라 요령은 없어도 의욕이 가득한 담임선생님.

야심차게 아이들과 친해져보겠다며, 호칭부터 '멋진 연희샘'이라고 불러달라 하고, 아이들을 한명 한명 안아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이 유치하고 어색하다고 말하면서도, 스펀지처럼 선생님 교육방침에 따라가준다.


공부 못하는 찬이도 그런 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공부 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다보니 주인공 진경이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 가면 병아리며, 염소며 돌봐야 할 가축들이 한가득이니 그런 찬이에게 먼 나라 이야기인 영어니 수학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랜 교사 경험으로 저런 아이는 어차피 구제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교사라면 그저 지켜보거나 부모에게 학원으로 보내라는 등의 상담만 하고 끝냈을 테고, 오랜 교사 생활을 통해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잘 따라오는지를 늘 연구하는 선생님이었다면 찬이를 토닥거리며 학부모와 상담 후 방과후맞춤수업을 진행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열정만 가득했던 신입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암기수업을 시키고 만다. 참 아이러니하지만 이 열정 가득 신입선생님은 아이들을 어찌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를 남들보다 더 고민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자신이 가장 잘 했고, 제일 무난한 공부 방법인 암기식 수업을 채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예상하는 대로 아이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낙오자가 속출한다. 외우지 못해 50번씩 써와야하는 숙제는 언젠가부터 안 하는, 주인공을 제외하고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여전히 본인 방식을 고수하며 아이들을 달래보려 하는 "사태 파악 덜된 요령 없는 신입" 선생은 공부를 거부하며 간신히 버티던 찬이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방과후 수업을 거부하고 교실을 뛰쳐나간 찬이.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찬이 집으로 향하는 진경과 선생님.

그리고 그곳에서 찬이가 공부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생명들과 마주하게 된다. 돌보는 동물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찬 찬이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며 선생으로서 일방적으로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고 자만했던 햇병아리 선생님은 깨달음을 얻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주입'시켜서 많은 지식을 '쌓게' 하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며,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호 교류를 통해 생활 속에서 배움을 통해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책을 내려놓으며 나 또한 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나 또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교육'시키려 했던 것은 아닌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내 아이들이지만, 사실 아이들이야 말로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된 존재들이기에, 그 다듬어지지 않은 옥이 토닥토닥 다듬어질 수 있도록 '조언'해주면 될 것인데, 마치 내가 세상 모든 이치를 아는 것마냥 아이를 다그치지는 않았는지 반성의 기회가 되었다. 관심 없는 분야에서는 한없이 약해지지만,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는 한없이 깊이 들어가는 아이들. 세상사에 찌들어 '대충' 이러이러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마음속에 '한계'선을 그어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그런 한계선이 없기에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도,  어른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범위 내로 들어오도록 미리 한계선을 그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나도 아이도 세상에서 힘겹게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 엄마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엄마보다 못한 엄마의 한계 선상에 들어오는 아이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아이가 세상 밖으로 스스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생각을 아이에게 구구절절 늘어놓기보다, 아이가 하려는 생각을 존중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쪽으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다시 원래의 우악스러운 엄마로 돌아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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