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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11. 2022

곤충장례식

곤충 덕후가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권합니다.

곤충덕후 아들을 둔 엄마들에게 적극 권한다. "곤충장례식"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필요한 것들을 구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생활 필수품, 문구류 등부터 심지어 동물, 심지어 거저리같은 작은 벌레들까지도...


큰 아이가 그랬다. "곤충은 마트에서 살 수 있어!!"라고...

문제집을 한 권 다 풀고 보상으로 곤충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채집해서 키우라 했지만 채집은 어려우니 마트에서 용돈으로 사겠다고 했다. 혼자서 용돈을 들고 마을버스를 타고는 8정거장도 훌쩍 가야 있는 모 마트까지 가서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장수풍뎅이 한 쌍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곤충을 잘 돌보는 아이인지라 몇 달을 잘 살기는 했지만, 장수풍뎅이 수컷은 수명을 다했는지 학교에서 아이가 돌아온 어느날 죽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이번엔 아이는 울지 않았지만 나는 아직 아이가 어렸던 5살 즈음, 키우던 장수풍뎅이 충이가 죽었을 때 아이가 통곡하며 장례를 치뤄주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당시 아이는 충이와 풍이 두 마리의 장수풍뎅이를 키우고 있었다.

합사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날 아침, 내 앞에서 암컷 풍이는 몸을 뒤집고는 한껏 힘을 주더니 한참이 지나 조그맣고 하얀 알을 하나 몸에서 쑥 뽑아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아이에게 보여주었고 아이는 좋아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암컷도 수컷도 우리가 잠든 어느날 조용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충이가 먼저 죽던 날,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그 사실을 알자마자 통곡했다. 어린이집엘 가야하는데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몹시 미안해진 나는 어린이집 친구들을 소집해서 등원 전 회사 옥상 텃밭(어린이집은 회사 바로 옆이다.)에 작은 장례식을 열어주었다.

큰 아이와 친구들은 우리가 분양받은 텃밭의 빈 공간에 조그맣게 땅을 파고 충이를 넣어주었다. 큰 아이는 흙을 덮어주면서 울었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어주며 조촐한 장례식이 끝났다.

그리고 나서 다시는 곤충을 키울 일이 없을 거라고 믿었는데, 몇 년 후 그 기억을 까맣게 잊은 것인지 큰 아이는 마트에서 장수풍뎅이를 다시 사왔고, 그렇게 또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곤충장례식이라는 책을 권해주었다. 마트에서 아이들이 손쉽게 사는 "물건"인 곤충들이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다 짧은 생을 다하고 죽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새봄이네 반에는 곤충싸움이 유행이다. 너도나도 장수풍뎅이니 사슴벌레를 키우며 반으로 곤충을 데리고 와서 싸움을 시키고는 재미있어라 한다. 라이벌인 동주의 이순신(사슴벌레 이름)이 절친 정택이의 갈퀴(사슴벌레)를 냅다 집어던지며 이기자, 새봄이는 동주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기 위해 엄마를 졸라 사슴벌레를 사고는 헐크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곤충에 원래 관심이 없던 새봄이가 사슴벌레를 어찌 키우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마침 동주가 와서 친절하게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엄마들끼리 친한 사이인지라 새봄이가 사슴벌레를 산 것을 용케 알고 염탐을 온 것이지만 그걸 알리 없던 새봄이는 모범생 동주 말이라면 뭐든지 믿는 엄마 때문에 멍하니 동주의 설명을 듣다가 절친 정태를 만나고서야 염탐 온 것임을 깨닫는다.


동주와의 곤충싸움을 앞두고 이번에는 새봄이가 동주네 집에 염탐을 가게 되는데, 곤충 사육장에 곤충젤리도 과일껍질도 보이지 않아 의아해한다.

"너도 설마 사슴벌레 굶기니?"라는 정수의 물음에

"무슨 말이야?"라며 의아해하던 새봄이는 정수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깨닫는다.


이기기 위해서 굶겨라!!


곤충 싸움의 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든 속에서 이순신과 헐크의 대결이 벌어지고, 굶은 두 곤충이 서로를 물어뜯는 광경을 지켜보며 흥분하기 시작하는 아이들. 하지만, 조용하던 아이 정수가 곤충 두마리를 갑자기 집어들며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나랑 대결하자. 나랑 대결해서 내가 이기면 더이상 곤충싸움을 하지 않기로 다짐해줘. 대신 네가 이기면 아무렇게나 해도 좋아."


그렇게 정수의 곤충과의 대결의 날.

더듬이를 물어뜯긴 이순신과, 다리 한짝이 너덜너덜해진 헐크가 한 편이 되어 정수의 사슴벌레와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곤충에 대해 관심이 없는 새봄이는 헐크를 잘 먹이고 쉬게 하면 다리가 다시 나올거라는 동주의 빤한 거짓말을 굳게 믿으며 충분히 먹이를 먹인다. 하지만 결국 정수가 데리고 온 커다란 사슴벌레에게 헐크와 이순신은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만 싸움을 벌이며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다.


동주와 새봄이는 모처럼 마음이 맞아 정수에게 복수를 하자며 중미산 자락 정수네 집으로 찾아가는데...

산자락 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에서 살던 정수를 만나며 두 아이는 정수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정수가 데리고 온 곤충은 "키우는" 곤충이 아니라, 늘 관찰하던 곳에서 그 날 대결을 위해 특별히 하루 데리고 간 야생 사슴벌레였던 것. 숲에서 자라면서 숲 속 참나무에 살던 사슴벌레를 깊이 관찰해온 정수는 누구보다도 강한 자에게는 덤비지 않는 사슴벌레의 생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늘 관찰하던 그곳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센 놈으로 데리고 왔던 것이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다치지 않고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거라 믿음과 함께...


그렇게 씁쓸하게 대결도 복수도 끝나고, 새봄이에게 헐크는 잊혀져갔다. 곤충싸움이 없으니 오히려 관리가 귀찮아져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날 정택이의 갈퀴는 목숨이 다해 죽고 새봄이의 헐크는 관리를 못받아 죽음을 맞이한다... 장례식을 치루겠다는 정택이에 어느새 잊혀졌던 헐크를 떠올린 새봄이, 새봄이의 무관심 속에 죽어간 헐크를 발견한 새봄이는 정택이와 함께 장례식을 치뤄주며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하지만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조그만 미물이지만 엄연히 생명체인데 사람에게는 늘 장난감 취급을 당하곤 하는 불쌍한 아이들. 혹자는 벌레라며 징그럽다 하고, 혹자는 새봄이처럼 갖고 놀 수 있는 물건처럼 여기기도 한다. 필요가 없으니 무관심해지는 아이들의 마음이 잔인하기조차 하다.

새봄이만 그럴까. 마트에서 물건처럼 판매되고 있는 강아지며 고양이, 물고기며 애완 거북이, 햄스터들은 또 어떠한가. 마트에 진열되어 팔려나가고, 관심이 없어지면 죽거나 버려지는 아이들.


내 아이는 과연 이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큰 아이는 생명에 대해서는 진심이라 일부러 싸움을 시키지도 않고 지극 정성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편이기는 하다. 그래도 생명을 키우는 데 대한 책임감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을거라고 믿는다.


큰 아이는 톱사, 넓사, 물방개와 거저리 등을 키우고 있다. 얼마 전엔 이곳에서 때이른 개구리를 잡아 며칠 키운 적도 있는데 친구들이 괴롭히려고도 하고, 아직 이른 봄이라 매일 먹이를 잡아 넣어줄 수도 없어 친구들 몰래 저수지에 풀어주었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다. 먹이도 있어야 하고 넓찍한 생활환경도 필요할 터. 생명을 키울 자신이 없다면 살던 곳으로 되돌려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트에서 파는 것을 사기 보다는 정수처럼 자연에서 채집하고 관찰후 놓아주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일일테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더 이상 곤충을 징그러운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 마트에서 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 취급을 하지 않길 바란다.

 곤충 또한 이 세상에 귀하게 태어나 자란 생명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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