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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ul 01. 2022

옹주의 결혼식

최나미 글, 홍선주 그림, 푸른숲 주니어

"그런데요? 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주인공 운휘는 역사 속 실존인물로서 태종의 열일곱째 막내딸로 태어났다.

고삐 풀린 망아지같은 성격의 운휘에게는 마음껏 애교를 부리고 떼를 써도 받아 줄 엄마도 궁궐에서 쫓겨나 사가에 있었고, 아빠인 태종도 운휘가 태어난 해 승하한지라 궁궐 사람들에게는 골칫거리였다. 지금으로 따진다면 어렵게 어렵게 회사에 입사했는데 하필이면 우리 팀에 성격 괄괄해서 만날 사고만 치는 상사가 있어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니, 회사를 다녀도 오늘은 또 어떤 사고가 터질지 조마조마해하며 출근하는 느낌일까?

호기심에 숨겨온 폭죽을 터트리다 화재까지 내고 만 운휘에게 휴식중이었던 염상궁 입궁이라는 벌이 내려진다. 그래봤자 상궁이고, 그래봤자 아랫사람일테지만 이 염상궁, 오랜 궁궐 생활로 다져진 경험과 내공이 눈치코치 하나 없이 남들이 하지말라는 온갖 말썽을 혼자 다 해 온 괄괄한 말괄량이 운휘에게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어미 없는 운휘와 달리 어미 선빈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익녕군은 운휘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며 운휘를 골탕먹이니, 조선 왕인 세종은 말썽꾸러기 운휘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때의 운휘는 몰랐겠지만, 멀게 느껴졌던 중전도, 궁에서 쫓겨난 생모를 대신해 운휘를 키워준 숙의 최씨도 익녕군의 짓궂은 장난과 모함으로 운휘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운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게다가 현명했던 군주인 세종 또한 운휘가 행동은 과하나 거짓말할 아이는 아니라며 운휘를 지켜주려고 애쓴 터.


운휘는 유교 사상으로 세워진 조선의 왕실에서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당연(?)한 생각도,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커서는 지아비를 따르고, 아들을 잘 낳아 기르는 것이 여인의 삼종지도'라는 책의 가르침에 반기를 든다. 운휘에게 지어미의 도덕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 염상궁은 오랜 경력으로 웬만한 질문에 흔들림없이 답하던 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가르침이 틀릴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조차 없었던 까닭에 "왜 꼭 남자가 하늘이어야 하고, 여자는 땅이어야 하냐구요. 여자는 하늘 되면 안되는 건가요? 그리고 아들을 잘 낳아 기르는 것이 삼종지도면 씨를 위해 키우는 종마와 다른 게 뭐지요?"라며 반항하는 운휘에게 땀을 뻘뻘 흘리며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한다.


"아기씨, 책에서 그게 맞다고 씌여있으니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안되나요?"

복섬이는 그런 운휘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생모가 위독하다는 익녕군의 말에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려다 왕에게 발각되고, 자신을 지켜주던 숙의 최씨도, 최고 권력자인 중전도 하지 살기 위해서 개인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언행을 조심하며 살고 있음을 깨달아가면서 운휘는 또다른 삶을 꿈꾸게 된다.


명나라의 압박 속에 세자를 지키려 운휘를 명나라 성리학 방식대로 친영례를 치루기로 결정한 세종과 대신들.

자신을 지켜주려 병상에 있으면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왕 앞에서 결정을 철회하도록 읍소하는 숙의 최씨와 염상궁 앞에서

"전하, 전교를 내려주시옵소서. 친영례를 치루겠나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더이상 고통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어차피 혼자서도 잘 살았는데 궁궐 밖에서도 혼자 힘으로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운휘는 다른 옹주들이 하가를 하는 것과 달리 조선 왕실 모범을 보이기 위한 첫 사례로의 친영례를 결심하게 된다.


파원군 윤평이 숙신옹주를 친히 맞아가니 본국에서의 친영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운휘가 파원군에게 시집 와서 시가에서 생활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전례도 없었지만, 꽤나 까다로운 성격의 시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옹주가 자신의 아들과 혼인한 것에 대해 못마땅해했고, 운휘가 아직 어려 초경이 없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몇 해가 지나 자신의 몫으로 궁궐에서 내려오는 봉록으로 생모의 제사를 치루려던 운휘를 시어미가 시집 와서는 궁궐의 법도가 아닌 파평윤가 사람이라며 막게 되고, 결혼하고 파원군으로부터 봉록을 모아 생모의 제사를 치루게 해주겠다며 평생 자신의 편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한 파원군이 옆에서 이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고 운휘는 집을 뛰쳐나오게 된다.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에 자신이 여인이 아닌 그냥 운휘로서의 생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책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결혼하고 남편 쪽을 우선시하는 풍습이 사실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성리학이라는 괴물이 500년도 넘는 세월을 훌쩍 넘는 지금의 우리를 여전히 다스리고 있는 걸 보면 문화, 편견, 관습의 힘이 우리를 얼마나 오래 지배할 수 있는지 그 힘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제도는 생기다가도 없어지지만, 그 제도로 한 번 바뀐 생각은 쉽게 돌리지 못한다.

조선시대의 성리학, 유교 관습이 근대, 일제강점기, 전쟁 등을 거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우리를 괴롭히는 것도 그렇고,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교육의 영향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그렇다.

교육이란, 세뇌란, 문화의 힘이란 참 무섭다는 걸 새삼 느낀다.


능력만으로도 살 맛나는 세상을 꿈꾸었던 운휘, 조선의 남성 위주의 삶에 반기를 들었던 운휘가 누리고 싶었던 평등의 꿈이 지금 과연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운휘가 꿈꾸었던 남녀가 동등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모처럼 젠더 이슈를 가지고 생각해 본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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