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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Aug 12. 2022

나라망치는 지도자, 망가진 나라를 수습하는 국민

왜관철교/강민경 글/여는 그림/현암주니어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서 현대사 부분이 차지하는 분량은 매우 미약하다. 40대 부모 세대가 현대사를 교과서로 접했을 시절엔 달랑 5~6장으로 현대사를 두루뭉술 요약 기술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2주 후면 2학기 교과서를 받을테니 그 땐 알 수 있을 듯 하다. 예전보다야 분량이 늘어났을지언정 정치와 물려 역사 교과서 현대사 기술 방향 또한 출렁이고 있는 시기에 얼마나 자세히 정확한 사실을 기술했을지 의문스럽긴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을 보면 본인만 노력하면 주변에 읽을 책들이 무궁무진해서 부럽다. 도서관을 통해서도 서점을 통해서도 본인만 마음 먹고 찾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손 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에 마음을 풍성하게 할 만한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내 기억엔 어렸을 때 서점에 가 본 기억은 아예 없고, 책은 박람회 처럼 기회가 맞아 떨어져야 구입 가능하며, 그 마저도 전집형태라 어머니가 구입을 망설이셨던 기억이 난다. 서점을 가기는 했지만 거의 참고서를 사기 위해 갔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히 거주하던 아파트 상가 내에 조그마한 마을문고가 있어서 박경리의 '토지'같은 책을 수십번도 더 빌려 읽곤 했다. 나만 보면 으레 토지를 빌려가겠거니 하고는 인당 3권만 빌릴 수 있는 책이었지만 나에겐 10권을 한꺼번에 빌려주시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조선 말부터 해방까지의 기나긴 시간을 다룬 거장의 토지도 해방 순간 스토리가 종결된다. 아리랑 태백산맥, 혼불 등등 그 당시 꽤나 열풍을 일으켰던 대하소설들을 읽으면서도 근현대사에 대해 마음 속에서 구체화되기가 쉽지 않았던 건, 아마도 교과서와 문제집 위주로 역사를 접했던 그 시기 내 학습방법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피난 시기 먹고 살기도 어려웠던 그 시기 점심시간에 있을 곳이 없어 학교 도서관의 책들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는 성군(?) 문재인 대통령의 깜냥까지 미처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난 학교 내에 도서관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몰랐으니까.(지금도 모르겠다. 학교 도서관이라는 곳엘 가 본 기억이 아예 없으니.)


그런 이유로 지금 아이를 키우며 읽는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동화책들은 나에게 늘 충격으로 다가오곤 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 책 속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긴 여운은 덤이다.

사설이 길었지만,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왜관철교'를 읽으면서 전쟁 시기 평범한 백성들이 피난 생활을 하며 고난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불과 우리 전 세대 부모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이 직접 겪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작년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올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겪으며 국가간의 갈등과 이해관계로 인한 지도자의 정책이 국민의 평범한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저 상황을 겪지 말란 법이 있을까? 요즘 나라 상황을 보니 우리나라도 그다지 안전지대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책을 통해 전쟁을 간접경험하고 있는 나름 평화로운 시기,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많은 전쟁난민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옆나라로 피난을 떠나고 있고, 수많은 평범한 국민이 포탄에 죽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겪고 있는 전쟁 상황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겪은 지 불과 70년밖에 되지 않았다. 전쟁 시기를 겪어온 세대가 여전히 살아있지만, 우리는 이미 전쟁의 기억을 잊은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전쟁에 대한 역사를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살아왔으니 그렇다치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처럼 아예 전쟁은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가 다소 우려스럽다.


 조선 시대, 세조(?)~성종 시기 평화를 유지했던 약 200여년 동안 어떠했는지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평화로운 조선의 전성기(?)를 지나는 동안 조선 초기 60회를 넘었던 일본 정찰대 파견 횟수는 이 200년의 기간동안 5회에 그쳤다는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평화로운 삶에 젖어드는 사이, 우리에게 슬금슬금 엄습해오는 전쟁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대비를 하지 않아서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재난상황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복잡한 한반도의 지리학적 상황 때문에, 정조에 비유할 만한 성군(?)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당시 자주국방을 외치며 외교를 통한 실리와 함께 국방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뒤를 이은 대통령은 한반도의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미국 쪽에 낼름 붙어버리고, 국정원 비밀 정보수집시스템을 공개해버리며 국가와 국민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반면교사 삼기 위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고 정책을 지지할 수 있도록 역사 특히 현대사적인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역사동화를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로, '왜관철교'처럼 평범한 아이들, 부녀자들이 피난길에 올라 발생하는 일들을 기술한 동화책이 있어 다행이다.


동화의 앞 표지에선 피난을 떠나는 아이들과 남장한 봉임이 엄마에게서 미래를 알 수 없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일반 백성들의 불안함, 두려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아빠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는 정신줄을 놓아버린 봉임이만 무표정으로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있을 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봉임이, 흥순이, 동수는 만수의 형이 기관사로서 전쟁 물자 이송을 하다 죽음을 맞이하고, 봉임이 아빠가 공산당을 배신한 반동분자로 총살을 당하며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이한다. 평범한 아이였던 봉임이는 그 현장을 목격하고는 정신줄을 놓아버렸고, 넉넉한 살림에 이웃들과 나눌 줄 알던 봉임이 엄마는 자신을 따라 피난길에 나서게 된 봉임이, 흥순이, 동수만을 챙기기 위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잃어버린다.


연합군의 작전 상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해 왜관철교(지금의 칠곡군에 위치) 폭파 결정이 내려지고, 피난민들은 폭파되기 전 서둘러 철교를 건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행히 폭파 직전에 철교를 건넌 흥순이 일행은 폭파와 함께 무서움에 덜덜 떠는 봉임이를 달래는 한편,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피난 현장의 참혹함을 직접 마주하며 피난길을 재촉한다.


끝없는 피난 행렬 속에 섞여 갓난아기를 안은 한 가족과 피난길을 함께 하게 되는데, 미처 먹을 거리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부부에게 고구마를 나누어준 아이들. 하지만 평소에 주변 어려운 사람들에게 먹을 거리를 나누며 살던 봉임이 엄마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먼저 살아야 한다며 더이상 먹을 것을 나누지 못하도록 타이른다. 결국 굶주리던 부부는 어느 날 봉임이네가 소중히 지켜온 곡식들을 몰래 훔쳐 도망가버리고, 봉임이네는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조우한 그들 일행은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화해하고, 전쟁 시기 서로에게 기대며 지난한 삶을 살아낸다. 편안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로 아기 이름을 '수안'이라고 지었다는 수안이 아빠는 봉임이 일행을 위해 자그마한 움막집을 지어주었고, 일을 해서 벌어온 먹을거리들을 봉임이네와 나누어준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지만 나라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이 서로서로를 위로하며 국가의 공백을 채워나가고 있었던 것.


어른들이 일하러 나간 사이 흥순이와 봉임이, 동수가 잠시 외출을 나갔을 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봉임이가 정신을 놓게 되지만 이름 모를 학도병의 도움으로 흥순이 일행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전쟁에 참여할 의무도 없는 학생으로 나라의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지원해서 전쟁에 참여중인 학도병을 보며 수안이 아빠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하고, 군수물자를 나르는 일에 지원을 하게 된다.


차도 수레도 닿지 않는 산으로 무거운 군수물자를 나르느라 매일매일 지친 몸으로 돌아오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수안이 아빠는 급박해진 전쟁 상황에 군대로 투입되어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연합군이 승리하면서 이야기는 결말로 숨가쁘게 달려간다.


모두가 행복하게 끝나면 다행이련만, 전쟁이 어디 그렇게 모두의 행복으로 끝나던가. 전쟁에 참가했던 수안이 아빠는 다리를 한 쪽 잃은 상이병사로 돌아오고 그렇게 전쟁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흥순이가 헤어졌던 할아버지와 재회하며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희망이 시작됨을 알려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야기를 읽으며 느끼는 건, 나라를 망치는 건 정치지도자지만, 망가진 나라를 수습하는 건 국민이라는 것이다.

요즘도 꽤나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매일매일 불안함을 안고 뉴스를 틀어놓지만 암울하기 짝이 없는 뉴스를 들으며 박탈감과 함께 불안함만 가중되는 느낌이다. 세상과 연결된 끈을 잠시 놓아보려해도 결국 역사동화를 읽다보면 요즘 현실과 연결시킬 수밖에 없으니 참 딱하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며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개개인이 힘겹게 지켜나가야 하는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붙임) 6 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비슷한 류의 동화로 최근에 출판된 '열세살 봉애'도 읽을 만 하다. 그러고 보니, 두 동화의 주인공 모두 여자아이. 아무래도 남자아이는 소년병으로도 많이 자원해서 나가고, 여성이 피난민의 주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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