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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y 03. 2023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크리스천 멕케이 하이디커 저/뉴베리 상 수상작

바깥이 시끌시끌하다.

슬그머니 바라보노라니 집앞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즐기느라 웃고  떠들며 한껏 들뜬 작은 아이네 반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동생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 놀이기구를 독차지할 수 있는 큰형님반.

에어 바운스 미끄럼틀을 바쁘게 오르내리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귀여워 듣던 음악 소리도 줄이고 빨래를 개며 가만히 바라보고는 읽던 책으로 고개를 돌린다.

재미없을 것만 같아 오랜 기간을 망설이다가 앞서 읽은 뉴베리 수상작(어둠을 걷는 아이들, 구덩이, 기억전달자)들이 앞다퉈 홈런을 날리다보니 슬그머니 읽을 용기가 생겨서 데리고 온 아이.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다.


제목만 보고 어린 여우는 독자들을 가리키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이 책은 철저히 동물인 여우시점에서 쓰여진 책이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아이들의 보챔에 엄마가 슬그머니(?) 흘린 무서운 이야기꾼 이야기.

엄마가 잠든 새 일곱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는 이야기꾼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으로 액자식으로 구성된 소설 되시겠다.

(수상한 진흙이나 구덩이 같은 루이스새커 대표작들도 액자식 구성이다. 복잡하게 얽힌 두세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긴밀하게 엮어가는 게 액자식 구성의 핵심이다.)


미아와 형제자매들이 암여우 빅스 선생님을 찾아가던 중,  알피를 구하려다 노란 악취에 감염된 알피에게 물려 자신조차 감염된 빅스 선생님을 마주한다.


아이들과 마주한 빅스 선생님이 온몸으로 노란악취가 퍼지기 전 아이들에게 도망치라며 경고를 하지만, 로아는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선생님을 구하겠다며 그 자리에 서버린다.

결국 선생님은 노란 악취에 완전히 감염되어 미아의 동생들을 하나씩 쫒기 시작하고 미아만 간신히 빠져나와 엄마에게 향한다.

미아의 설명에 사태를 빠르게 알아챈 엄마는 미아만을 데리고 필사의 탈출을 하는데...


하낫도 무섭지 않다며 애써 태평함을 가장하던 새끼 여우들은 이야기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무서운 나머지 한 마리씩 사라진다.


이야기꾼이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는 크게 미아의 이야기와 절름발이 율리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베아트릭스 포터 이야기를 기점으로 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진다.


광견병(노란악취), 덫, 동물 학대, 장애 등 제법 묵직한 주제들을 여우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공통적으로 경악하는 부분이 베아트릭스 포터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여우들에게 무서움을 유발하는 양대 축, 몹쓸 아버지인 발톱 마왕과 몹쓸 인간인 베아트릭스 포터.


장애를 가진 아들 율리를 죽이려고 끝까지 쫒는 아버지 발톱 대왕.

그리고 우리가 피터래빗 이야기의 저자로 알고 있는 베아트릭스 포터, 그 포터가 맞다.


부모세대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심의 대표격인 피터래빗의 저자가 설마... 하면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나처럼 충격을 받아 베아트릭스 포터에 대해 알아본 독자들이 꽤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피터 래빗이란 이야기를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 순수한 동심의 상징인 피터래빗이 토끼의 피로써 씌여진 이야기라니....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더라도, 무서움의 끝판왕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무녀리는 버려지는 게 당연하기에 오히려 살리려 애쓰는 어미가 이상하고 무서운 악마처럼 묘사된 발톱대왕의 삶이 더 자연스럽다.


잔인하겠지만, 작년 농촌유학 시절 고양이 미우가 제 새끼 중 가장 약한 아이를 잡아먹는 것을 보았을 때 사람 시점의 엄마들이 모두 경악한 반면, 동물의 생태를 잘 이해하고 있던 우리집 큰 아이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무덤덤했었다.

"엄마, 자연 속에서 가장 약한 동물이나 장애를 가진 자식을 잡아먹거나 버리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야. 가장 약한 새끼를 포기하지 않으면 나머지 새끼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 우월한 새끼 위주로 살아가는 건 자신의 생존과 자손 번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거든. 자연 속에서 약한 동물은 천적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으니까. 그걸 인간 관점에서 패륜이니 뭐니 이야기할 권리는 없어. 인간과 살아가는 환경이 다른 동물 시점에서 이해해야지."


그 사건을 겪어서일까.

전지적 여우시점이라지만 발톱 대왕은 장애에 대한 인간의 관점을 꼬집기 위해 악당으로 억지 포장된 것일지도 모른다.

전지적 간의 관점에서....

그런 이유로 작가가 악당 역으로 데리고 온 발톱대왕은 아이들에게 자칫 약한 새끼를 잡아먹는 동물은 나쁘다는 편견과 오해를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다.

(인간 세계에서는 장애에 대해 혐오나 편견을 갖는 것이 나쁜 게 당연할지라도...)


하지만 베아트릭스 포터는 다르다.

덫을 놓고, 이야기를 쓰고 그리기 위해 동물을 잡, 이야기를 쓰고 나면 동물을 죽인 후 고기를 먹고 박제를 하는 무서운 인간의 양면성.

귀엽기만 한 토끼 피터 가족 이야기 이면에는 동물 박제, 해부라는 인간의 잔인성이 숨겨져 있는데, 이 사실을 알고 피터 래빗을 다시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장애를 극복하고 생판 모르는 다른 여우의 새끼를 구한 율리,

그리고 추운 겨울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들다며 새끼들 곁을 떠나려다가 형제들을 생각하며  위기에 처한 새끼를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맞선 미아까지.


마지막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남은 막내 여우, 미아와 이야기꾼 미아.


그렇게 이야기꾼이 들려준 이야기와 현실의 미아가 합쳐지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앞으로 더 험난한 여정이 있을거라는 예고와 함께...


앞으로 여우로 대변되는 동물들이 살아갈 이 땅은 살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기후 위기와 각종 쓰레기, 인간들의 전쟁과 자원 개발로 인한 삶의 터전의 훼손....


우리 아이들이 새끼 여우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도 무서웠지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더 섬뜩할 것만 같은 한 권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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