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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y 19. 2023

가짜 모범생

손현주 저

책을 읽다보면 책 취향이 명확해진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비슷한 느낌의 책을 읽는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책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느낌?

책 취향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독서 편식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우리집 큰 아이 책 취향이 새 다큐멘터리 류라면, 내 취향은 시대 비판적인 소설 혹은 동화.

시대 관습을 뛰어넘는 아이가 주인공인 역사동화나,

시대 관습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는 아이가 주인공인 동화책 종류에 흥미를 갖곤 했다.


최근 읽은 '클로버' 가 그랬고, '어둠을 걷는 아이들'이 그러했는데, 청소년 소설이기에 대개 끝은 해피엔딩이었던 듯하다.


이번에 읽은 책 가짜 모범생도 어찌 보면 해피엔딩(?)일 수 있는데 다른 책과 달리 조금 찜찜한 결론이랄까.

대한민국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결말을 가진 책이라 소개해보려 한다.


건휘와 선휘는 일란성 쌍둥이다.

게다가 부모들이 부러워할 만한 영재 쌍둥이!

문제는 이 엄마가 아이들을 무려 15년만에 가졌다는 것.

아니, 문제는 이 엄마의 주변 조건이 너무 우월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쌍둥이는 엄마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스파르타 식으로 조련된다.

놀잇감 대신 책으로 온 집안을 도배하고,

그날 그날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하면 잠을 재우지 않고 할 때까지 다그친다.


읽다보니 이야기가 참 익숙했다.

그렇다. 공부가 머니(?) 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한 연예인 가족의 이야기.

다둥이 가족이었는데, 큰 아이부터 작은 아이까지 서너 명의 아이가 받고 있던 수업이 총 34개라고 했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숙제와 수업을 끝내지 못하면 잠을 재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방송이 나오고 그 가족이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방송이라 연출된 면이 있었을 테지만 그 걸 감안하더라도 꽤 어린 나이의(막내가 6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가 밤 열한시 열두시까지 숙제에 매달리는 모습이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었을 터.


공부만을 강요받던 아이는 엄마의 노력으로 전교 1~2등을 도맡아 하지만 공부만을 강요받느라 정작 인성을 기를 기회가 없었던 형 건휘는 폭력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농구를 하다가 성질에 못 견뎌 상대 아이를 목 졸라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것인데...


모범생 형의 스펙을 위해 동생 선휘가 죄를 뒤집어쓸 것을 부탁하는 엄마. 하지만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피해아이가 사실을 말하며 형 건휘는 소년원에 갈 처지에 몰린다.


예상했겠지만 형 건휘가 자살하고, 모든 엄마의 기대치는 동생 선휘에게 향하지만, 충격을 받은 선휘는 갈수록 삐뚤어져 가는데...


여자친구인 은빈을 만나고 블라블라...

이야기는 어찌보면 우리나라 현 시점을 극화 시켜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드라마지만 현실보다 덜 드라마틱한 듯도 하다.

얼마 전 교육열이 높은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친구를 찌르고 자신도 자살을 선택한 아이.

그 이후 일주일간 무려 세 명의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도대체 입시가 뭐기에 전 대한민국 학부모와 학생이 쩔쩔 매고 있는지.


그 즈음, 나는 교육이 없는 나라라는 책을 읽고 있으며 관련 동영상들을 찾아 보고 있었는데,  일본의 십년 전 모습이 바로 지금의 우리나라 모습이라고 한 전문가가 말한 것이 인상깊었다.

사교육의 대부라고 불리던 그 분은 우리나라 지금 모습이 일본의 십년 전 모습과 똑같다고 말하며, 십 년 안에 수능은 지금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 될 거라고 예언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대거 의사로 몰리는 기형적인 형태. 의사로 키워내려는 시점이 초등학교로 내려가버린 이 기형적인 교육형태는 대치동 사교육 열풍이 꺼지기 직전의 모습이라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 별들이 터지기 직전 가장 밝은 빛을 내는 것처럼,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직전 가장 호황을 누리는 듯 보이는 것처럼, 이 기형적인 교육형태도 머지않아 종말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


학부모지만 사실 내 아이가 좋은 대학교에 가길 바라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아니, 좋은 대학보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대학 중 최고의 교육 시스템을 갖춘, 그 분야 최고의 권위자가 있는 곳으로 가길 바라는 나로서는(지금은 최재천 박사님이 이화여대에 계시니....아이 성별을 바꾸지 않는 한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긴 하다.허헛...) 이런 사교육 열풍에서 살짝 비켜나 있기는 하지만, 주변 엄마들을 보면 어린 아이들은 예체능으로 비교를 하고, 고학년으로 갈 수록 영어 실력, 수학 실력으로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며 아이를 학원으로 학원으로 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엄마의 뜻을 처음으로 거스르는 선휘에게 엄마가 용서를 빌고 엄마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사실 이 결말은 많은 독자들도 그렇겠지만 그렇게 공감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엄마가 아이에게 용서를 비는 건 엄마가 아이에게 지는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에게 용서를 비는 건, 내 교육방식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아이를 아이 뜻대로 하도록 놓아준다는 건데, 일전에 엄마 반성문으로 유명한 작가의 책처럼 책으로 나올 만큼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조부모의 재력이 더해져야 영재가 나온다 했던가.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이 말이 유효하고, 조금씩 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교육의 우선권은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 있는 게 현실이다.


십년 전 일본에서도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청소년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며 아이 행복 우선 교육을 실시해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학력 퇴행이 일어나 요즘은 다시 학력을 강화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일본이 그랬듯 우리도 얼마 안 있어 수능이 무너지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큰 아이가 입시를 치르는 시점이 될 지, 6년 터울의 작은 아이가 입시를 치르는 시점이 될 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 아이들은 입시라는 기형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조금 자유롭기를 바라는 건, 나만의 꿈일까.


이 책을 읽으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을 떠올렸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나라나 다른 나라나 비슷할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성적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적성이라는 기본 틀만큼은 지켜내고 싶은 이상적인 학부모 1인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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