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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un 11. 2023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씨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카이캐슬을 접하다

대한민국에 한 때 스카이캐슬이 유행한 적 있었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사실 난 스카이캐슬 드라마를 접한 적이 없다. 워낙 유명해서 뉴스기사를 통해 제목 열혈엄마들이 제 아이를 SKY에 보내기 위한 분투기라는 내용 정도로 알고는 있지만...


아이의 요청으로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두었던 '도시 오목눈이 성장기'가 드디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한달음에 도서관으로 달다. 2주 전부터 아이에게 책 언제 오냐고 달달 볶였던 탓에 이젠 해방되겠구나 싶어 책을 받고 느긋해지니, 문득 집에 가기가 싫어져 햇살 좋은 도서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책을 골랐다.


그렇게 내 눈에 띄어 읽게 된 책, 한때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보다 더 현실같은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맘 순영'되시겠다.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골랐는데, 초반부터 서울대에 들어간 아이의 자퇴선언이라는 파격 사건과 함께 이야기는 마순영씨의 유년기, 마순영씨의 아들 영웅이의 탄생으로 넘어가 영웅이의 초4, 초5~~ 등 학년 순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가장 많이 들어갔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내용이 꽤나 직설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심지어 아파트 이름인 마린시티, 제니스나 짜장면집 상호까지 실제 존재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 그대로이다보니 현실감이 더 확 와닿았다. 


마순영씨가 우연히 어린시절 라이벌이던 친구와 조우하면서 서울대에 들어간 세련된 모습의 라이벌에게 느낀 질투가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다.


얼마 전 읽었던 가짜 모범생과 비교해보니

입시 기반의 소재, 주인공이 공부를 잘한다는 설정, 엄마가 지독한 헬리콥터 맘이라는 상황은 동일한데, 겉으로라도 모범생이었던 가짜 모범생의 선휘와 건휘와 달리, 영웅이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아이 같아 보였다.


눈썹 후달릴 것 같은 엄마와 자식 간 극단의 갈등상황 속에서 가짜 모범생의 선휘와 건휘는 그저 참기만 하다보니 독자로서는 대거리 한 번 못하는 아이들에게 고구마 삶아먹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영웅이는 천부적인 낙천성 때문인지 몰라도, 혼내는 엄마에게 사극 말투를 쓰면서 느물거리거나, 혼나면서도 당당하게 거짓말도 하고, 혼나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게임에 몰입하는 느긋함을 보여준다.


수학 전국 1등까지한 놀라운 실력이지만,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기행들을 보여주며 마순영씨를 기함하게 한다. 놀라운 회복탄력성이기도 하지만 모범생의 전형에서 벗어나 본능에 충실한 영웅이의 엉뚱함 어이없어 혀를 끌끌 차면서 허헛... 헛웃음 마저 나올 정도다.


시험 결과를 보면 분명 영재를 넘는 천재인데, 쾌활발랄하기도 하고 먹고 자고 야동 보고 게임하는 걸 좋아해서 마순영씨 몰래 오만 비행은 다 저지르는, 묘하게 매력적인 영웅이도 그렇고, 나쁜 엄마 마순영씨지만 가짜 모범생의 일방적인 나쁜 엄마라고 하기엔 한숨 나오는 아들 키우며 사업하다 망한 남편을 대신해 공부방을 통해 악착같이 사는 그의 모습이 마냥 미워만 할 수 없는, 같은 엄마로서 동질감마저 느끼게 되는 묘한 매력의 책. 


분명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와 열혈엄마들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묵직한 주제의 책인데 영웅이의 뻘짓(?)을 땀 삐질거리며 수습하고 오히려 그 뻘짓조차 기회로 삼아버리는 역시나 대단한 마순영씨의 뒤를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블랙코미디같은 두 모자의 티키타카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말미에 작가가 자신의 아들(혹은 영웅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로 갔지만 수많은 다이아몬드, 금수저들 사이에 흙수저로서 이질감을 느낀 후 서울대를 박차고 나 아들이지만 당당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주어 고맙다고 전한다.


 온실 속의 화초 느낌의 모범생 선휘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기행이란 기행, 방황이란 방황은 모조리 겪어내며 자란 영웅이는 천부적인 낙천성 덕분에 뒤늦게라도 자신의 적성을 잘 찾아갔을 것 같다.


대다수의 선휘같은 모범생들은 막다른 길에 몰릴 때 길을 찾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방법을 찾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영웅이는 엄마 마순영씨에게 달달 볶이면서도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려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줄기차게 까던 실력이니, 20년 넘게 쌓아온 잔머리 실력으로 길이 없는 곳에 다다르면 길을 뚫어서라도 만들어낼 것 같은 든든함이 있다.


아마도 길고양이와의 만남이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복선 같은 건 아니었을까?

실력 있는 영웅이니 수능을 다시 쳐서 어딘가에서 수의사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요즘 대2 사춘기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공부만 하다가 목표를 이룬 대학교 때 사춘기를 겪는다는 보통 아이들과 달리, 영웅이는 많이 놀아보았기에 오히려 대2 사춘기를 오히려 무사히 잘 보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나 또한 대2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는데, 그 시절 방황이 나를 중국어의 길로 인도해준 전환점이 되기도 했지만, 늦은 나이의 방황으로 남들보다 더 늦게, 더 낮은 자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상처이 시기이기도 하다. 중2 사춘기, 나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기를 놓친 혹독한 댓가였다.


대한민국의 열혈 엄마들이 이끌어가는 지금의 입시.

아이를 잘 되게 하겠다며, 자신이 겪은 실패를 겪지 않고도 성공의 길로 안착시키려 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랄총량의 법칙(?)은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누구나 방황하는 시기를 겪는 건 당연하다. 그 방황이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으려면, 부모의 지지와 믿음, 실패해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뿌리가 든든해야 한다. 수많은 성공의 경험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 보다, 어찌 보면 수많은 실패 속에서 얻은 교훈의 경험이 아이를 더 단단하게 하는 건 아닐까?


부모가 하라는 대로 모범적으로만 살아온 선휘보다, 오만 잡다한 경험과 실패, 말썽, 흔히 말하는 뻘짓(?)들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삶의 경험을 얻었을 영웅이의 모습에 더욱 믿음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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