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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un 15. 2023

아이에게 관찰의 시간을 주세요.-맨홀의 과학-

세상에 대한 관심은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작은 아이와 줄넘기 배우러 가는 시간.

안전교육에서 맨홀의 위험성을 배운 작은 아이가 맨홀에 관심을 보였다.

생리전증후군이 슬그머니 올라올 시점이면 아이들을 향한 짜증이 늘어가는 걸 알기에 자제하려고 했지만, 바쁜 시간에 한가로이 맨홀을 보며 멈칫하는 작은 아이에게 짜증을 부리며 얼른 가자고 재촉해버렸다.


그토록 좋아하는 수업인데도 엄마의 짜증에 대거리 한 번 못하고 축 쳐져서 들어간 작은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이 시기면 늘 자제해야지 하면서도 하아... 호르몬의 변화는 사춘기 소년 뿐만 아니라 생리 전 엄마들도 미치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이를 보내놓고 미안해진 나는 돌아오는 길에 있는 맨홀을 눈으로 재빠르게 훑었다. 책을 찾아도 나올 것 같지 않은, 40평생 관심 가져본 적 없는 동그라미를 찾다가 생각보다 심오한 세계네?라며 속으로 감탄했다.


수업이 끝난 작은 아이를 이끌고 집에 가는 길.

요즘 궁금한 것이 많은 작은 아이가 아까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구멍을 나에게 보여주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엄마, 아까 말한 개구부, 이거에요. 개구부가 뭐에요?"

맨홀은 아니고 지상에 구멍을 낸 開口部였는데, 6세 때 잠시 한자에 관심 보였던 작은 아이에게 한자를 풀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아이가 오는 길에 가리켰던 맨홀들을 가리키며 관심을 유도한다.

우수와 오수, 점 하나 방향의 차이일 뿐인데, 구멍 유무도 역할도 다르다.  아이들에게는 맨홀의 깊이만큼이나 무한한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향하는 멋진 소재가 된다.
"ㅇㅇ야, 요거 뭐라고 써있는지 한 번 볼까?"
"오...수?"
"오수 라고 씌여있지? 그럼 이 구멍 안에는 뭐가 있을까?"
알쏭달쏭해 하는 아이에게 오수의 한자어를 풀이해 주었다.
"汚(더러울 오) 水(물 수) 그러니까 이건 더러운 물이 지나가는 곳이겠다. 그치?"

아하! 얼굴에 밝은 미소를 한 가득 머금은 아이가 즐거워하는 새, 우리는 다른 맨홀로 이동했다.


우리는 그렇게 5분 거리의 집을 거진 30분 걸려 오는 동안 여러가지 맨홀을 관찰했다.

같은 동그라미 모양인데, 雨水管(우수관)은 비가 많이 올 때 배수 역할을 하느라 구멍이 뚫려있지만, 가스나 전기 맨홀은 물이 들어가면 사고 위험이 있어 구멍이 막혀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신호등 주변 바닥에는 신호등을 제어하는 사각형의 맨홀(?)이, 불을 끄기 위한 용도의 소화전 맨홀에는 비상시 소방차가 이용해야 하므로 일반 차량이 주차를 하지 못하게 '주차금지'라는 글씨도 같이 새겨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나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다보니, 맨홀의 동그라미와, 오는 길에 있는 교통 표지판의 네모, 세모 도형을 보며 점과 선, 면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수학으로 가득한 세상의 신비로움을 만끽했다.


아이의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같이 배웠다.

세상에, 40평생 내가 땅바닥의 맨홀에 관심 가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만족스런 아이의 흐뭇한 표정을 보니 나도 뿌듯해진다.


세상에 대해 하나 둘씩 알아가는 걸 즐거워하는 작은 아이.

같은 교육을 받고도 어떤 아이는 그냥 그런가보다 무심히 넘겼을 맨홀 뚜껑 하나에 세상 모든 호기심을 담아내는 작은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관찰의 힘을 새삼 깨닫는다.


형제간의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보니 좋은 영향을 주고받기 힘든데, 관찰이 거의 생활화된 형아가 동생에게 주는 유일(?)한 긍정 효과이려나.....(휴우...)

이 맨홀은?? 로고인지 모를 무늬는 옛날 거라 그런지 잘 모르겠고, 한글로도 적혀 있지 않았다. 혹시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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