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Earth Jun 03. 2023

학원 안 다니는 초등 고학년아이의 스스로 학습 이야기

학원 고민하시는 엄마들에게...

아이엠스쿨, 아이 학교 알림 앱에서 가끔 툭툭 알림창이 떠서 열어보면 엄마들의 아이 학업 고민 하소연들이 눈에 띄곤 한다.


아이 친구 고민, 게임 고민, 학업 고민...

그 중에 내 눈에 띄는 건

"아이 학원, 그만두었는데 불안해요.."

대략 제목이 이랬던 것 같다.


댓글들을 보니 학원을 계속 다니게 해라, 자기주도 시켜라 엄마들의 의견들이 거의 전문가 뺨치는 수준으로 주루룩 달려있었다.


우리집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여기서 학원이란, 영어나 수학 등 교과목을 가르치는 학원이며 예체능학원은 제외다.

(큰 아이는 학교 방과후 바둑, 학교 체육클럽 활동으로 달리기와 야구를 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회에 참석중이다. 방과후 수업을 듣는 희귀종 고학년 중의 한 명이다.)


초6인 큰 아이가 하고 있는 사교육은 온라인 영어 수업 딱 하나.

선생님과 1:1로 하는 수업이 아니고 있는 강의 찾아 듣는 시스템이다보니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밀릴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가 있는 수업이다보니 궁금해져서라도 악착같이 듣는 것 같다.


스스로 계획 하에 집에 오면 일단 영어 온라인 수업을 듣고 영어 문법 문제집 1장, 5학년 수학 복습용 1장, 6학년 수학 현행 문제집 1장 풀면 끝이다.


그나마도 책을 보다보면 시간이 줄줄 흐르다보니 아홉시를 넘겨서까지 붙잡고 있기도 한데, 2년 전과 다른 점은 수학 문제가 안 풀린다고 짜증내는 일이 거의 없고 열 시를 넘기든 일단 끝내고 자려고 노력한다는 점?


예전엔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짜증이 일었는데, 내가 왜 그리 열을 내나 싶은 생각이 든 이후로 그냥 참고 본다.

1. 어차피 내 공부 아니라는, 남의 집 아이 대신 키우는 마인드로 바뀌어서일까?
2. 대학을 안가도 먹고 살 길이 없어 보이진 않아서일까?
3. 일단 동물이니 식물같은 자연계와, 세계사니 한국사니 하는 과거계를 잘 아는 아이니, 중고등 학교에서 배울 교과목 일부를 책으로 미리 배운 셈이기도 하다.
4. 독재와 민주주의 같은 사회 서적, 전우치전, 홍길동전, 박씨 부인전 같은 고전을 포함해서 역사동화, 세계사, 한국사까지 보통은 지식책 위주로 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책을 한 번 펼치면 집중하는 아이에게 믿음이 가서일지도 모르겠다.
5. 포켓몬 게임에 한 번 빠졌다가 나온 아이라서 그런지 사춘기 초기지만 게임 자체에 관심을 안 준다는 것만으로도 아들 엄마로서는 다행스럽기만 하다.
6. 뛰어나지 않은, 명석하지 않은 그저 평범하기만 한 아들 둘 두다보니 애초부터 눈높이가 높지 않은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7. 입시에 대해 신뢰가 없으니 아이들을 독촉할 필요가 없다. 급한 건 엄마가 아니다. 엄마가 느긋하니 급한 사람이 우물 팔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숙제 하기 귀찮은 날에도 굳이 엄마한테 내색하지 않는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라~"라는 엄마 말이 굳이 본인한테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숙제 면제권을 들이밀며 보드게임에서 사바사바 봐달라고 하는 엄마의 하소연이 먹히는 일도 없다. 어차피 안 하면 자기 손해라는 걸 아는 건지, 정해진 양보다 더 하지도 않지만, 습관처럼 주말과 공휴일 빼곤 군말 없이 하는 것 같다.

티비가 없으니 티비로 싸울 일도 없고, 게임이 없으니 게임으로 싸울 일도 없다. 그날 할 일만 다 하면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보니, 아이도 부모도 편하다.

 두 아들 간의 싸움만 빼면....


대신 우리집은 책 읽는 분위기가 매일 조성된다.

일단 큰 아이는 내가 은근슬쩍 큰 아이 단골 좌석 주변으로 뿌려놓는 책을 덥석 무는 쉬운(?) 아이다보니, 숙제가 없는 시간의 대부분은 책을 읽는다. 매일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서너시간을 책 읽는 데 쓰는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이 없는 낮시간엔 나의 책 읽는 시간.

책을 읽다보면 시간이 홀랑 지나가곤 하는데, 큰 아이가 오는 시간에도 내가 책을 펼쳐놓고 있으면 자동으로 큰 아이는 간식을 먹으며 책을 읽는 것 같다.


이런 우리집 분위기다보니 가끔 아이엠스쿨 같은 곳에 엄마들이 학원 끊고 불안하다는 글이 뜰 때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엄마들은 학원 끊는 걸 아이가 공부를 포기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학원 끊는 게 불안한 거지? 스스로 공부 량을 정해서 하게 하면 될텐데 왜 굳이 돈을 써가면서 학원으로 보내려고 하는 걸까?


우리의 경우 큰 애가 응당 썼을만한 교육비를 저축해 두었다가 최근 남편의 장기 휴가를 이용해 남편과 큰 아이 둘만 2주간 해외에 다녀왔다.

아이로서는 첫 해외 여행인데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라서 동물의 천국 호주로 다녀왔다. 자유여행과 패키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남편은 아이가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패키지 내 포함되어 있지 않다보니,고민하다가 자유여행을 기본으로 하되 당일 투어를 추가해서 여행을 계획했고, 아이는 호주 관련 가이드북을 무한반복하며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정했다.


큰 비용이 들기는 했지만, 학원과 집을 반복하며 유년시절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그 2주동안 했을 거라고 믿는다.

물론 영어가 안 되는 아이다보니, 답답해 하기는 했지만 돌아와서 영어를 더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나름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아쉬워하는 큰 아이에게 교육비를 더 모아서 다음엔 다같이 가자고 말해주었다.


호주 여행이 끝나고 계획된 영어 온라인 수업 기간이 끝났다. 3개월 과정을  번 듣고, 3개월동안 복습까지 끝낸 아이와 다음 수업을 계획해보았다.

처음엔 단순히 다음 단계를 올라갈까? 고민했는데 지식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듣기엔 판타지 내용 위주인 수업이라 다소 망설여졌다. (마법의 시간 여행, 플랫 헨리?? 뭐 이런 종류들...) 아이는 지식책 쪽으로 과편중된 책 취미를 가지고 있다.


초급에서 중고급으로 훅 올라가는 수업이긴 하지만 세계사 기반 수업이 있어 그걸 해볼테냐고 제안해보았더니 샘플 수업 듣고는 해보겠다고 나선다.


의심스러워서 여러 번 물어봐도 역시나 같은 대답이라 결국 초급 수준의 영어로 세계사 수업을 듣게 되었다. 허허...

(나 또한 왕초급 중국어 수준이었는데 한자를 많이 알다보니 레벨테스트에서 찍기 신공으로 중고급 수준이 나오는 바람에 유학 시절에 중고급반에서 수업을 들었었다. 뭐, 고생은 했지만 실력은 훅 늘었으니... 아이도 그럴래나?)


불과 1년전? 아니 6개월 전만 해도 be동사가 뭔지 몰랐던 아이가, 온라인 원서수업을 2번 반복해서 들으며 문법책도 같이 진행했더니 6개월 만에 현재분사, 관계대명사 등등까지 이해하 수준이 되었다.(즉, 간단한 원서 정도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학원에 보냈으면 일단 학원에서 받아주지도 않았겠지만, 설령 들어갔다 하더라도 날고 기는 친구들 사이에 치여서 영어를 싫어했을 것 같다. (재작년 스스로 학습이 어려워보여서 집앞 영어학원에 문의해본 적 있는데 학원에서 1~2학년 아이들과 수업해야 한다며 괜찮겠냐고 되물었었다. 대형학원도 아니고 동네학원에서도 완곡한 거절을 당한 걸 보면 아이의 수준을 알만하지 않은가. 학교에서 수행평가를 볼 때선생님 말을 이해 못해서 수행평가를 못했다는 아이다.)

그땐 정말 영어를 포기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아이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믿어주니 이젠 영어를 제법 좋아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여전히 어렸을 때부터 영어학원에 다닌 아이들보다 훨씬 뒤쳐지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목표가 입시가 아닌 이상 늦은 시기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일단 들을 수 있는 수업 내용을 본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 좋고, 좋아하는 세계사 수업을 기반으로 영어를 배우니 훨씬 집중을 잘 하는 것 같다. 어찌보면 고교학점제 시스템을 우선 경험하는 느낌이랄까? 아이와 부모가 듣고 싶은 수업을 같이 정하다보니 부모도 아이의 수준과 관심사를 늘 체크할 수 있어 좋고, 부모가 조언은 해주지만 결정은 아이 스스로 하다보니 자존감도 높아지는 것 같다.

스스로 좋아하는 강의를 찾아 듣는 경험이 쌓이다보면 학원에서의 과정을 피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또래들과 달리, 고등학교 때 스스로 수업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도 무난하게 겪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가 하는 자료를 영어로 찾고, 여행 갔을 때 사람들과 간단한 영어라도 대화가 되는 걸 목표로 하 아이의 속도에 눈높이를 맞추면 되어서 마음도 편하다.


아쉬운 자, 스스로 우물을 파라!


내가 학원에 가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원칙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표 영어교육, 꼭 단계가 있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