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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un 04. 2023

학원 안다니는 초등 고학년 아이가 주말을 보내는 방법

노느라 바쁜 우리집 아이들

1호주 여행을 다녀온 남편은 2주간의 공백을 메우려 주말 특근도 불사하고 있다.

덕분에 몇 주째 우리는 토요일 하루는 오롯이 아이 둘과 나 이렇게 세명이서만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그 몇 주를 친정 언니네 텃밭에 가서 잡초도 뽑고, 채소도 뽑으며 지냈는데, 어제는 텃밭으로 출발하려다가 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일정이 어긋나버렸다.

다행히 주차장이었고, 시동을 껐다 켜니 차가 다시 움직이긴 했지만, 나 홀로 아이 둘을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가 또 중간에 엑셀이 안밟혀 사고라도 날까 무서워 텃밭행을 포기하고 나니 갑자기 일정이 붕 떠버려 머릿속이 하얘졌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 어디 갈지 정하라하니 큰 아이와 작은아이가 갑론을박 난리가 났다. 큰 아이가 가고 싶은 산은 작은 아이가 지루하다하고,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지하철투어는 큰 아이가 지루하다 하고...

날씨는 아직 오전인데 체감 31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 대화를 듣던 나도 난감해졌다.

6살 터울의 아이들이라 가장 많이 부딪치는 게 바로 주말 놀러갈 곳 정하는 건데, 코로나 우울증 시기를 제외하고 우리집에서 나가는 걸 제일 좋아하는 큰 아이와, 그냥 집돌이인 작은 아이다보니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다행히 내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 큰 아이가 보드게임으로 작은 아이를 잘 설득했나보다. 다녀와서 보드게임 한 판 해준다는 말에 작은 아이는 갑자기 심각한 얼굴에서 활짝 웃는 밝은 얼굴로 돌아와서는 빨리 나가잔다.


오늘도 뒷산이구나. 휴우....


큰 아이는 호주 여행기간을 제외하고 거의 3개월째 매주 주말 하루는 뒷산에 오르고 있다. 작은 아이가 거부할 땐 아빠와 둘이서라도 오르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새 관찰하기.


봄을 맞은 뒷산의 화려해져가는 풍경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경험중인 큰 아이.

"동네에서 자연을 관찰하는 9가지 방법"

이라는 책을 마르고 닳도록 끼고 살면서 작가의 마인드에 거의 동화되다시피 한 것 같다.


결국 오늘도 4시간동안 동네 뒷산에서 남산까지 연결된 등산로를 오르며 산벚나무 열매인 버찌,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실컷 따먹고 왔다.(나랏님들 죄송합니다. 그래도 집으로 가져오진 않고 현장에서 츄릅~ 했어요.T.T)

가끔 산에 오르는 나는 길을 모르다보니, 길을 꿰고 있는 큰 아이를 가이드 삼아 가는 시간.


큰 아이는 한때 곤충박사여서 나무 종류도 잘 알고 있다. 곤충과 나무는 떨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보니 도시아이치고는 시골아이처럼 나무 이름, 특성까지 줄줄 꿴다. 게다가 매주 산에 오르니 이쯤 오면 어떤 나무에서 뭘 보고...이 나무에서는 어떤 새가 살고...(둥지를 틀었다는 이야기다.) 이 나무는 꿀 나오니 먹어도 돼 정도까지도 아는 듯하다.


지난번에 왔을 땐 큰 아이가 알려주어 아까시나무 꽃을 따서 꿀도 먹어봤는데 이번에 가보니 어느새 시들어버려서 먹을 수가 없었다.

큰 아이가 입만 쩝쩝 다시며 아쉬워한다. 에고...


아빠랑 다닐 땐 아빠가 빨리 관찰시키고 내려오자는 마음때문인지 새 관찰이라는 본연의 목표에 충실한데, 나와 작은 아이가 끼면 여기저기 한눈을 많이 팔다보니(어?생강나무네. 생강냄새 나나 맡아보자 라든가. 어? 오디다! 따먹고 갈까? 어? 개미 지나가네 땅콩 뿌려줄까? 뭐 이런 류.... 다보니 그냥 가는 법이 없고 한 자리에.삼십분 이상 머물기도 한다.)

오늘도 새 관찰은 스스로 아이들 눈 앞으로 날아와주신 어치 한 마리 사진 촬영 빼고는 소득도 없다.


하지만 새 관찰을 못했을 뿐, 큰 아이를 키우며 생태에 관심 많아진 나와 다닐 땐 아이들은 이런 저런 산의 작은 변화들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다니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산은 재미없다던 작은 아이도 내가 따주는 오디를 추릅추릅 쪽쪽 맛나게 먹으며 남산 위에서 맛보는 아이스크림의 시원함 만큼이나 만족스러워하곤 한다.


산에 안 가는 날이면, 우리는 가까운 공원으로 향하곤 한다. 변성기가 온 것 같다는 어른들 말씀을 듣자면, 큰 아이도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긴 한데,  학교 끝나고 친구들을 따로 만나지는 않는 아이다보니 놀 사람이 가족밖에 없어서 주말도 오롯이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있다.

(핸드폰이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초6이지만 핸드폰도 없고, 게임도 안하고 학원도 안 다니는 우리집 큰 아이는 그야말로 희귀한 멸종위기 야생(?) 동물급이다.)


공원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자전거 따릉이를 타거나, 연을 날리거나, 공을 차거나 정도인 것 같다.

물론 가까운 서울숲으로 가면 요즘 한창인 오디서리를 하곤 하는데 농약이니 제초제인지를 몽땅 친 걸 알면서도 달려드는 아이들을 제어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돌다보니 오디가 있는 곳을 기가막히게 파악해둔 두 아이인지라 자전거를 타고 돌다가 자연스럽게 들러가는 방앗간 같은 핫 스폿이 두어군데 있다. 그나마 씻어주니 다행이랄까. 남들은 무심히 지나가는 그 곳에 다닥다닥 붙어서 보랏빛으로 물든 입을 오물거리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자면 아직은 어린 것 같기도 하다. 허허.


조금 멀리 올림픽 공원으로 가는 날엔 연과 공을 준비해간다.

어린이날에 공원에 갔다가 연날리는 사람들을 보며 큰 아이가 어린이날 선물로 연을 사달라해서 오케이! 외치며 사준 연인데(만원이라 꽤 비싸긴 했지만 고민했던 선물을 스스로 말해주기도 했고, 선물 치고 저렴한 편이고, 즉석에서 놀 수도 있으니 안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사주고 놀아라 하니, 큰 아이가 초반 몇 번을 낑낑거리더니 곧 능숙하게 하늘 높이 올려서는 연을 날린다. 헐~

(왼)연 날리는 큰 아이,(오) 올공 도로변에 있는 한 나무줄기를 뚫어 둥지를 만든 박새가족. 안에 있는 새끼를 들여다보려니 저 멀리서 박새 엄마 아빠가 삑삑거리며 경계를 한다.

연날리는 다른 어른들도 많았지만 우리집 큰 아이만큼 높이 멀리 능숙하게 연날리는 아이도 어른도 없었던 것 같다.

큰 아이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하하~


그뒤로 바람이 꽤 부는 올림픽 공원으로 나가는 날이면 큰 아이는 연을 들고 나간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잔디밭쪽은 바람이 가끔 불곤 하는데, 그 기세를 타서 일단 하늘로만 올려 보내면 수월하게 연을 날리는 것 같았다.

오늘도 역시나 큰 아이는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연을 날리지 못해 낑낑대는 사이 제일 높이 날리며 즐거워했다.

물론, 남자아이들은 모르는 아이들도 하나씩 둘씩 붙어서 축구를 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우리집 아이들은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지 끼질 않는다.

아무래도 사회성은 우리 부부를 빼닮은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굳이 아이들 앞에서 내색하진 않는다. 엄마도 방법을 모르니 이 또한 너희들이 알아서 헤쳐나가거라~~~

연날리기가 시들해지면 자전거를 타면서 틈틈히 주변의 나뭇가지를 뚫어 만들어놓은 새둥지도 관찰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심심할 틈이 없는 우리집 아이들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집은 보드게임을 펼친다.

작은 아이는 7살 제 또래들과는 놀이 문화가 조금 다른데,

카봇 같은 장난감 로봇을 접한 적도 없고, 집안에 여자아이라곤 없다보니 역할 놀이도 한 번 제대로 못해봤지만, 보드게임 만큼은 또래들보다 월등히 많이 접해봤을 것 같다.


장기, 바둑, 체스로 시작한 보드게임인데 바둑은 워낙 넘사벽인 큰 아이에게 이길 수 있는 가족이 없다보니 작은 아이와 할 때는 장기나 오목, 체스 위주로 놀곤 한다.

(장기를 할 줄 알다보니, 공원 놀이터에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고 계시는 걸 한참동안 바라보다 온 적도 있다. 놀이터를 뒤로하고 30분도 넘게 장기두는 걸 지켜보는 7살 아이가 신기했던지, 한 할아버지가 의자까지 내어주시며 관심을 보여주셨다.)


부루마불, 러시아워, 라온, 쿼리도, 메모리 게임을 거쳐 지금 홀릭하고 있는 건 이모에게서 선물받은 카탄.

자원을 모으는 게임인데 큰 아이도 마침 학교에서 해봤는지 의기투합해서 어른 한 명만 끼고 두 시간 이상을 훌쩍 지나도록 꼼짝않고 놀곤 한다.

부루마불처럼 쳇바퀴 도는 게임이 아니다보니 어른도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즐기며 놀 수 있는 게임.

좀처럼 같이 노는 법이 없는 두 아이가 유일하게 같이 놀 수 있는 게 보드게임이다보니 부모로서도 마다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티비가 없어도, 컴퓨터나 모바일 게임을 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놀 거리를 스스로 찾는 아이들.


학원에 다니지 않다보니 실력이 느는 속도도 거북이만큼이나 느릿느릿하고, 때론 지지고 볶으며 한껏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분명 잘 커나가고 있다.(물론 키는 안커서 걱정이지만...)


확실한 건, 학원 다니는 아이들보다 여유가 많다.


그 여유를 멍 때리며 흘려보내기도 하지만, 책을 보기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자전거로 한강이나 공원을 달리거나,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자연의 작디작은 변화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즐길 줄 아는 정도면 훌륭하게 주말을 보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춘기에 방 밖으로 안 나오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라면 한 번 생각해봐도 좋을 방법일 듯 하다. 나 또한 삼춘기 아이가 방 밖으로 나오질 않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느라 고통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지금, 세상을 양껏 즐기고 있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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