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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un 06. 2023

학원 안 다니는 초등 고학년 아이의 취미 생활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양한 취미를 즐기다.

바둑 승단 심사가 끝났다.


초 1부터 큰 아이는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바둑을 배웠다. 맞벌이이기도 하고, 학원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어있다보니, 안전한 학교 내에서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최대한 많이 들었던 큰 아이.

바둑, 로봇.

신기하게도 1학년 1학기 방과후로 신청한 수업은 초6인 지금까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그 명맥을 이어온 것 같다. 물론 로봇의 명맥은 작은 아이에게 물려주긴 했지만....


그 우여곡절을 어찌 한두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까마는, 확실한 건 아이의 취미생활은 농촌유학의 도서관 무료 수업을 통해 극대화된 것 같다.

코로나 시기 온라인 바둑은 싫다며 모든 방과후 수업을 손에서 놓았던 큰 아이였는데, 시골에 내려와서 지낸 1년동안 큰 아이는 도서관에서 바둑수업을 작은 아이는 주산을 선택해서 유학 기간 내내 코로나의 위기를 뚫고 오프라인으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바둑을 시작하면서 바둑에 소질이 있었는지, 승단급 심사가 있을 때마다 상을 타오곤 했다. 코로나 전까지 총 세번의 심사 기회 때마다 금상만 두 번, 은상을 한 번 수상했는데 유학 중에 심사가 아닌 대회로서는 처음으로 참가한 바둑대회에서는 준우승을 하면서 처음으로 상금이라는 것도 받았다.


군수배 바둑대회지만, 어른들 곁가지로 조그맣게 열린 어린이 대회였는데 그래봐야 군 내 도서관 2개소에서 수업 듣는 아이들 대상이라 참가자 대부분 안면이 있는 아이들.


대회에서도 그랬지만 수업을 할 때도 단 한 번도 못 이겼다는 1살 위 형님과의 대국에서 역시나 지기는 했지만, 큰 아이는 그 형님을 빼곤 두 개의 도서관 아이들 중 랭킹 2~3위를 늘 유지하다보니 자신감이 붙은 듯했다.(그래봐야 아이들 실력이 고만고만하겠지만....)


그렇게 자신감 충만한 상태로 서울 학교로 복귀한 아이는 방과후 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고학년이지만 본인 희망으로 바둑 수업을 계속하게 되었다.


대국도 맞수와 두어야 할 만한데, 아이의 맞수는 같은 학년의 다른 반 아이 달랑 하나.

한 명이 빠지기라도 하면 한참 차이나는 아이와 대국을 두어야 하니 참 난감한 상황일 것 같기도 한데 아이는 바둑이 재미있는지 꽤 열심히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서울 올라와서 첫 승단 심사.

다른 아이들 부모들은 아이를 심사장에 앉혀두고 안절부절 심사장을 못 떠나고 있는데, 우리는 여러 번 경험이라 예의상 큰 아이 자리만 찾아주고 쿨하게 심사장을 떠나버렸다.^^;;


사춘기 초딩이라 덤덤하게 대국장에 들어간 큰 아이는 역시나 덤덤한 표정으로 3승 전승자에게만 제공되는 우승 트로피를 들고 나온다. 여러 차례 심사에 참여했지만 내가 바둑을 모르다보니 아이 실력을 잘 몰라서 심사할 때마다 늘 불안해하곤 했는데,

아이 말을 들어보니 음. 모험을 한 게 결정적이었던 듯했다. 질 것 같기에 모험을 했는데 상대 아이가 그걸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서 다른 곳에 두었던 게 결정적이었다나.

오호. 이세돌이 유일하게 알파고를 이겼을 때의 그 결정적 수?의 천재적인 수준은 아니었겠지만 소심한 성격의 큰 아이가 바둑에서만큼은 대범한 수를 과감히 둘 줄 안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언젠가부터 보드게임을 할 때마다 전략에 능했던 아이는 바둑으로 그 실력을 갈고 닦았던 것 같다.(아이가 뭐라뭐라 하는 바둑용어는 모르다보니 꼭 외국어를 듣는 것 같아 무슨 수였는지는 모르겠다.)


서울로 올라오고 또 다른 취미가 생겼다.

나날이 비싸지는 빵값에 빵돌이 남편이 먼저 시작한 베이킹에 큰 아이가 끼어들게 된 것.

처음엔 남편의 지휘 하에 아이 둘이 움직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큰 아이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워낙 주말마다 한 번씩은 만들다보니 거의 반자동처럼 식빵, 모닝빵,카스테라 같은 간단한 빵들은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래봐야 유튜브 보고 만들어내는 생초보 베이커지만, 하나씩 하나씩 뭔가를 스스로 해보려는 아이의 노력이 기특하다. 나에겐 아이의 코로나 블루 시기의 어두운 과거가 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어서인지, 일단 뭐든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한다.(기대의 수준이 낮아서인지 잘하든 못하든 뭐든 스스로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쉽게 흐뭇해하는 우리집이다.)

큰 아이 주도 하에 만들어진 식빵, 주말마다 만들다보니 재료만 준비해주면 나머지는 스스로  만드는 게 익숙해졌다.

주말에 하루는 뒷산에 오르거나 자전거를 타는 취미가 있다.

자전거는 한 번 배워두면 오랫만에 타도 금방 적응하는 장점이 있다. 코로나 블루를 탈출하면서 시작한 자전거인데 그 시기즈음 나온 새싹 따릉이는 방구석에 갇혀있던 아이를 세상 밖으로 빼내준 일등 공신이다.


뜨거운 낮이 끝나고 선선한 저녁 시간이면 가까운 공원으로 자전거를 몰고 나간다. 최근 따릉이 단체권이 없어지면서 당황하기는 했지만, 망가져 창고에 처박힌 자전거를 수리해놓았더니 자전거 산책이 다시 활성화되었다.

 

저녁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기도 하고 날씨도 선선하니 자전거로 달리기도 좋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 멈추면 공놀이를 하기도 좋다.


큰 아이는 요즘 학교에서 한참 배우고 있다는 배구를 아빠와 열심히 연습하고, 작은 아이는 그 옆에서 나와 축구를 하는데 도저히 체력이 아이를 따라가지 못해 자꾸 "휴식 시간!"을 외치는 엄마에게 작은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휴식시간을 허해준다. 엄마가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땀 뻘뻘 흘리며 축구공을 차는 작은 아이.


결국 돌아오는 시간은 밤 열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지만, 아이 둘과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다보니 형제 간의 싸움도 덜해지고, 아이들 스트레스 지수도 확실히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


작은 아이가 어려 체육활동을 거의 못해줬던 저학년 시절에 비해 큰 아이의 공부 효율도 부쩍 높아지고, 회복탄력성, 자발성, 적극성도 눈에 띄게 좋아지다보니 몸은 힘들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밖으로 나가게 된다.


밖에도 큰 아이는 여유로운 시간에 종이를 접어 비행기를 날리거나, 연을 날리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쌍안경과 DSLR카메라를 들고 탐조를 다니곤 한다.

여유있는 마지막 학년이라는 초6, 아이는 어디론가 이동하는 틈틈히 핸드폰 대신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고 있고,  무심히 공원을 지나가는 길에서도 탐조를 하는 등 틈새시장을 공략할 줄도 아는 것 같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친구들이라면 핸드폰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겠지만, 코로나블루에서 빠져나온 지 2년만에 큰 아이는 넓은 세상에서 세심한 변화 하나하나도 예민하게 느끼며 세상을 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뒷산에서 찌르레기를 발견한 큰 아이가 아빠에게 쌍안경을 건네주며 찌르레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코로나가 나에게는 경력 단절이라는 시련을 가지고 왔지만,(나는 벌써  3년차 휴직자가 되었고 내년까지 1년의 휴직이 더 계획되어 있다. 직장에 입사한지 14년차인데 8년의 휴직을 통해 경단녀 아닌 경단녀가 되어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해져 가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 것 같다. 위인전을 좋아해서 자주 읽는 큰 아이가 그 시기를 위인들이 한 번씩은 겪었던 위기라고 인식했을지는 모르겠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이 엄마라 위인이 되거라 하고 말 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적어도 내 아이 인생에서 3학년 코로나 우울증의 시기가 인생의 첫 전환점을 겪기 위한 시련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은 취미부자가 되었지만, 세상 모든 것에 희망이 없었던 그 시기. 학원을 다니던 아이들은 여전히 학원을 통해 친구들과의 소통을 계속했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던 우리집 아이에겐 그야말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것 같았던  어두운 시기였다.


무사히 그 그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지금까지 여전히 큰 아이와 나에겐 그 시간이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상처 흔적처럼 남아있지만, 그 쓰라림 있었기에 기대치가 낮아져 삶에 만족하기도 더 수월해진 것 같다.


기대치가 낮다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부모가 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크면 클 수록, 투자한 비용이 크면 클 수록, 기회비용을 따지게 되고, 생각만큼 따라와주지 않는 아이에게 더 쉽게 실망할 수 있을테지만, 애시당초 아이 교육비로 투자하는 비용이 많지도 않고, 우울증에서 빠져나온 것만도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라 아이에게 딱히 기대치가 높지도 않다보니 아이에게 혼낼 일도 줄고, 취미생활도 같이 즐기며 여유를 누리다보니 아이와의 관계도 편안해졌다.


학원 숙제 했니 안했니, 학원 가니 안가니로 다툴 시간에 아이와 함께 저녁시간을 이용해서 공이든 뭐든 들고 밖으로 나가보자. 낮보다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활용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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