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 Earth Jun 12. 2023

학원 안 다니는 초등 고학년 아이의 꿈 변천사

세상에 쓸모없는 비주류의 꿈은 없다.

난지천 캠핑장에 산책을 하다 만난 개구리가 빗물받이(죽음의 통로)에 들어가 나오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이리저리 뛰는 모습을 보며 쓴 시. 한때 동화작가를 꿈꾸던 큰 아이 시다.

얼마전 초등 의대 입시반 열풍이 지방까지도 퍼져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놀기만 해도 바쁜 아이들, 세상에 대한 관심을, 반짝이는 호기심 하나만으로 펼쳐내기도 바쁜 유년시절을, 학원이라는 무미건조한 공간 안에서 지내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큰 아이는 어려서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다.

아토피라는 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채 1개월도 안된 아이 얼굴에 오돌토돌한 좁쌀들이 가득 채워진 걸 보고 놀랐다.

결국 태열로 시작된 큰 아이의 피부병은 열소독된 장난감을 입에 물어 난 화상이라고만 생각했던 도장버짐을 거쳐 돌 무렵 얼굴 전체에 진물이 질질 흐르는 아토피로 번졌고, 그렇게 우리는 아토피라는 피부병과의 지난한 싸움을 무려 9년 이상이나 겪어야 했다.(초등 시기 땅 밟으면 낫는다던 아토피는 초등 중학년 시기 잠시 소강상태 들었다가 유학 시절 공기 좋은 시골 편백나무집에서 오히려 다시 팔 다리로 부위를 달리해 번져버렸다.)


시부모님에게는 자그마한 전원주택이 있었는데, 2층 짜리의 집 중 1층은 무려 황토로 전면 도배된 황토방.

암을 앓으셨던 시아버님이 요양하셨던 곳이었다.


우리는 아토피로 긁느라 바쁜 아이가 너무 재미있어 긁을 생각조차 못하도록 주말이면 그 곳으로 가서 지내곤 했다.


서울서 가까운 지방에  위치한 그 주택에는 비교적 넓은 잔디밭 한켠에 조그만 텃밭이 있었고, 뒷편으로는 야생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산이 하나 있었다.


봄에는 할아버지를 도와 각종 채소와 유실수들을 심었고, 여름이면 사람 북적한 산으로 바다로 계곡으로 향하지 않고도, 잔디밭 한 켠에 그늘막 하나, 작은 풀장 하나 펼쳐놓고 물놀이를 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할아버지 텃밭에서 오이나 방울토마토, 가지, 옥수수도 따 먹으며 보내곤 했다. 집 앞 나무에 달린 버찌 또한 큰 아이의 몫이었다.

우리들의 주말쉼터. 이제는 제법 북적해진 대가족이 되었기에 이제는 재미있게 놀 수 있으려만, 아이라곤 달랑 하나였던 시기다보니 다소 심심해하기도 했다.

을이면 뒷산에 올라 밤을 따고, 겨울이면 소복한 눈을 바라보며 조곤거리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아이.


언젠가부터 그 곳 주변으로 빌라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외진 곳이라 조용했던 그곳은 공사장들의 망치 소리로 시끄러워졌고, 주변의 집들이 거진 빌라로 바뀌어갈 즈음, 큰 아이가 너무 좋아해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거절하곤 하셨던 시부모님도 결국 집을 팔게 되었다.


다행히 큰 아이는 그 곳을 충분히 누리며 자랐지만, 도련님 댁 아이들이나 우리집 작은 아이가 태어날 시점에는 이미 무너져버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추억조차 새길 수 없는 빌라 숲이 되고 말았다.


그 곳이 사라지니 주인인 시부모님은 홀가분해 하셨는데 무료 이용자인 우리들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처럼, 없어진 텃밭으로 인한 공허함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비슷한 환경을 찾아 헤매고 다녔고, 결국 회사 복직과 함께 회사 옥상에 있던 텃밭에 정착하게 되었다.


회사일로 밤샘을 계속하면서도 직장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던 큰 아이와 함께 출근하며 옥상 텃밭에 틈틈히 들렀다.


아토피 때문에 밤새 긁느라 잠을 설치고, 낮이면 어린이집에서 개월 수가 한참 앞선 같은 반 또래들에게 치이는 아이였지만, 이 곳에 들러 탐스런 앵두를 서리해 먹기도 하고, 텃밭 채소들도 따 먹고, 지렁이, 달팽이도 잡으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아이도 나도 잠시동안은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휴직하고는 서울시 텃밭을 신청하기도 하고, 너무 먼 거리와 운영진 측의 관리 부실을 탓하며 집에서 40분 거리의 민간텃밭을 분양받아 작물을 심기도 하고, 작년엔 시골로 내려가 유학하면서 100평 이상의 넓은 부지에 옥수수, 아욱, 토마토, 브로콜리, 고구마, 열무, 호박, 수박까지....

거의 지긋지긋하도록 뜨겁게 타오르는 햇볕 속에서 심고, 잡초 뽑고, 수확하고 팔기까지 해볼 수 있었다.


이런 성장 배경 때문인지, 큰 아이의 삶의 궤적도 꿈도 여느 도시아이들과는 참 많이 다르다.


큰 아이는 7살 무렵 물고기 책을 접하며 처음으로 ' 어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도감이라는 도감은 민물, 바다, 서해, 동해, 제주로 세분화된 도감부터 독도 어류, 연안 어류를 다룬 전문가용 서적까지 섭렵했다.(물론 글밥이 많은 전문서적은 특징 정도만 꿰고 대부분 그림 위주이기는 했지만)


아이의 소중한 도감에 내가 커피를 쏟는 바람에 큰 아이가 대성통곡한 사건이 일어났을 즈음부터는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아이가 새롭게 관심갖던 분야는 곤충.

이번엔 '곤충의 밥상', '갈참나무의 죽음과 개미왕국' 같은 정부희 박사의 곤충 시리즈는 모조리 섭렵했다. 곤충 도감은 기본이고 곤충 동화, 곤충 다큐멘터리를 통한 관심은 식용 곤충에까지 확대되었고, 아이의 꿈은 어느새 곤충학자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집 큰 아이는 단백질 덩어리라며 밀웜을 튀기지도 않은 생으로도 먹어본 아이다.--;)


코로나 시기, 마트에서 구입한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물방개를 키우던 아이는 시골 유학에서 많은 야생장풍이와 사슴벌레를 종류별로 섭렵했다.


그뿐 아니라, 시골에서 사는 1년 동안은 아이의 꿈을 향한  12년 평생 처음 도롱뇽, 도마뱀, 개미들, 개구리와 올챙이, 심지어 민물 가재와 징거미새우, 왕잠자리 수채, 갈겨니, 말조개, 게아재비 등 일일히 하나하나 열거할 수도 없는 수많은 곤충과 파충류, 어류와 갑각류 등을 접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돈 2만원은 주어야 체험할 수 있었던 유정란은 이 곳에서 지겹도록 주웠고, 닭 사료를 챙겨주거나 꿩알을 직접 관찰하거나 고양이 새끼, 강아지를 키워보는 경험은 덤이었다.


살아서는 영접하지 못했지만 죽은 두더지도 보고, 쥐나 살모사, 유혈목이를 사냥한 고양이, 로드킬 당한 고라니, 멀리서나마 새끼를 데리고 있던 멧돼지를 본 경험도 있으니 우리 주변에 사는 웬만한 동물 정도는 보았다고 해도 되려나.


경험이 쌓이니 당연히 그 방향으로 관심 영역도 확장될 수밖에 없을 터. 그렇게 밖에서 살다시피하고, 땅 속, 물 속을 뒤지다시피 하며 오만 생물들을 영접하고 책으로 확장시켰던 자칭 '장성 동물계의 대부' 큰 아이의 관심이 사그라들 무렵 아이의 눈길은 집 앞의 저수지와 논에 살고 있던 새들에게 향했다.


저수지에는 흰뺨 검둥오리나 수달, 원앙 등이 살고 있었다. 이젠 지겹도록 봐서 관심도 주지 않는 흰뺨이지만, 이른 아침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수지를 산책하노라면, 한가로이 물위를 헤엄치다 인기척에 놀라 단체로 저수지를 날아오르는 흰뺨이의 군무를 보기도 한다.


이사 첫 날, 늦은 밤 찬거리를 사러 간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에 놀라 도로위를 달리던 족제비( 혹은 수달?)을 보면서 우리가 시골에 왔다는 걸 깨달았었는데, 어느 날 힘든 농사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삶에 치여 저수지의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멋진 풍경에도 무덤덤해져가는 내 모습에 호다닥 놀라곤 했다.

하지만 삶에 찌들어가는 엄마와 달리 큰 아이는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으며 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집 주변에서 살아가는 직박구리, 물까치, 백로와 왜가리, 까치와 까마귀, 박새 등 오만 새들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하면서 동물생태학자로 자연스럽게 꿈이 옮겨가게 되었다.


그 무렵 고창 람사르 습지에 가게 되었는데, 작은 아이가 잠드는 바람에 큰 아이와 나만 갯벌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카트를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냥 카트 체험이 아니라 해설사가 동행하는 생태해설 프로그램이었던 것. 생태해설사는 탐조 7년차의 경험 많은 선생님이셨던 까닭에 멀리 보이는 새들 위주로 설명해주었고, 관심 초기라 거의 지식이 없었던 우리는 들으며 온갖 질문들을 퍼부었다.( 우리 둘만 탑승한 카트였다 )


매 월 달라지니 자주 오라는 선생님의 당부에도 시간이 안뵈어 한동안 찾지 못하다가 초가을 무렵 다시 찾았을 땐 아이도 새에 대한 지식을 한껏 가지고 와서는 선생님과 말 그대로 탐조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아이의 꿈은 다시 동물행동학자에서 새로 특화된 조류학자로 선회했다.


어린이날 선물로 곤충과 닭들의 먹이가 되는 밀웜 1천마리와 채집한 물고기나 곤충등을 키울 수 있는 커다란 수조를 받으며 즐거워했던 큰 아이는, 초겨울 생일 땐 DSLR 카메라와 쌍안경을 선물로 받았다.


날개를 단 큰 아이는 본격적으로 탐조활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서울에 올라온 우리는 예전처럼 집에만 있지 않고 주말이면 동네 뒷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고작 까치나 비둘기, 참새가 전부일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꽤 많은 종류의 새가 살고 있다는 걸 알고난 문화충격은 꽤 컸다. 산을 오를 때마다 청딱따구리, 박새, 찌르레기, 매, 물까치 심지어 어치까지....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알면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코로나를 거쳐 독서육아를 시작했던 초기, 아주 잠깐 생태동화를 쓰는 동화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긴 했지만, 아이의 관심은 늘 동물에게로 향해있었던 것 같다.


유학 중 학교에서 진행한 아이 적성 검사 땐 연구형, 개인형, 실재형인 아이의 적성 검사 결과지를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 꿈이 없어 방황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꿈을 찾으라는 우리집 교육 방침과 자연과 가까이 한 성장 배경 덕에 아이는 제 나름 비교적 명확한 꿈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진로 특강에 그 검사지를 들고 가니 강사님께서는 아이의 관심사(물고기, 곤충, 새...)는 변할 수 있지만,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하는 성향(기질) 자체는 변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그 기질을 살려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있기만 하다면, 그 꿈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의사, 수의사, 한의사 같은 직업이 아니라도 괜찮을 듯 하다.


비록 진로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는 PD, 의사, 수의사, 스포츠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같은 핫한 직업은 아니지만, 핫한 직업이 아니면 또 어떤가. 직업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아이가 가진 경험치와 높은 전문성은 결코 버려지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언젠가 최재천 박사님 책을 보았을 때,

대학원생 면접 때 최재천 박사님이 늘 물었다는 질문이 있다.

"돈을 못 벌 수도 있는데 괜찮으나?"는 말.


동물을 연구하는 건,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서 떼돈을 버는 사업과는 달라서, 오랜시간을 동물만 쫒아다니고 당기간에 연구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박을 꿈꿀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보니,

이런 웃픈 질문도 나오는 것 같다.


나는 늘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정당한 땀과 노력을 통한 것이라면, 중요하지 않은 직업은 없다.

험하고 지저분한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람도 노력만 한다면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도 화장실 청소 비법을 알리는 유튜버가 되거나 화장실 청소 달인이라는 걸 홍보해서 얼마든지 몸값을  올릴 수 있다.

단순히 어느 대학을 가겠다는 허황된 꿈을 위한 공부는 단호히 말하건대, 하지 말아라.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면대학은 안 가도 좋다.

필요하다면 가지만, 그게 아니라 단지 사회로 나갈 시간을 벌 목적이라면 시간과 입시를 하느라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어떤 방법이든 정정당당한 수단과 방법으로 그 분야에서 인정하는 전문성을 키운 후 권위를 가진 전문가가 되어라. 그러면 생계문제는 강연으로, 글쓰기로, 아니면 다른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원 안 가는 초등 고학년 아이의 슬기로운 독서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