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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un 29. 2022

글을 잘 쓰고 싶다

제2의 꿈, 동화작가를 꿈꾸며

엄마와 모처럼만의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아직 어린 시절의 나로만 기억하는 엄마에게 근 2년동안 아니 아이를 낳고 양가 도움 없이 거의 독박 수준으로 키운 엄마로서의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가.

여전히 엄마에게 딸의 모습은 말도 안되는 엉뚱한 말이나 뱉어대는 철부지 모습으로만 남아있던가.

유일하게 세 딸중 엄마 부모님 도움 없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인데,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는 두 딸은 안심이고 스스로 살 길 찾아가고 있는 중간딸은 실수할까봐 걱정이라니.


코로나가 터지고 근 2년.

언니네와 동생네 아이 둘을 보고 있는 엄마에게 피해가 갈까

염려하여 왕래를 삼갔더랬다.

나 혼자 조차도 가는 것을 극도로 꺼릴 정도로 왕복이 거의 없었던지라 나의 사는 모습을 모를 엄마가 나의 옛날 이미지만으로 날 평가하는 게 너무도 싫었다. 아니 그동안 날  늘 못 믿겠다고 넌 어디가서 조용히 있으라고 늘 얘기하는 엄마로 인해 사춘기 이후 말을 할 때마다 더 긴장해서 엉뚱한 말을 하곤 했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동안 쌓여온 감정이 폭발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회사에 입사하고 한동안 엄마의 프레임에 갇혀 말실수를 했었을(?) 나의 모습과, 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려 상사들을 설득하고 내 의견을 적극 관철시키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여전히 나를 그 옛날 엉뚱한 말을 하는 아이로만 기억하는 엄마에게 화가 난 것일테다.

그런 프레임에 갇히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의 인간관계가 조금 더 원활했을까?

지금의 나는 주변 사람들과 업무적인 대화 외에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사적인 자리에서 조차 남 얘기는 하지 않는다. 내 가족 외에는 관심도 없지만, 어딘가에서 내 이야기가 안주거리로 전락하는 게 싫은 것처럼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엉뚱한(나는 어떤 말이 엄마에게 엉뚱하게 들린 건지 여전히 이해를 못한다.) 말을 상상력이 풍부한 것으로만 덮어주었다면 지금까지 그 트라우마에 갇혀 있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을...


나는 어릴 적 나와 같았던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고 싶은 꿈을 꾼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아이라면 누군들 엄마 사랑을 덜 받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마는, 나 또한 샌드위치처럼 낀 가운데 아이로 자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우리 때문에 시골로 얼마간 보내져서 자라야 했던 언니는 그렇다치고, 동생과 나는 공부만 내가 앞섰을 뿐 늘 비교 대상이었고, 내리 사랑 탓인지 나의 엉뚱한 성격 탓인지 늘 혼나는 건 나였던 것 같다. 동생은 이해력도 좋고 눈치도 빠른데 넌 왜 만날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말이 그렇게도 듣기 싫었다. 왜 내가 하는 말은 늘 엉뚱한 건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나는 부모로부터 탈출하여 나만의 독립적인 삶을 꾸리는 것이 숙원처럼 되었고 대학교 때부터 세 아이 중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지금까지 경제, 육아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오고 있다.


언젠가 난 나와 같이 엉뚱했을 아이들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네가 엉뚱한 게 아니라 네 생각이 창의적이어서 틀에 박힌 생각 속에 사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엉뚱해 보일 뿐이라고. 넌 엉뚱한 아이가 아니라 세상 창의적인 매력적인 아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방법만 일반 사람과 달랐을 뿐, 넌 충분히 매력있고 자랑스런 아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바닥까지 내려앉은 내 자존감이라는 진짜 나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 글들은 늘 "독립"이라는 가치관 속에 쓰여지고 있다.

독립 만이 내 무너진 자존감이 위로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사실 독립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 간의 소통, 상호간의 배려, 함께 라는 가치일텐데, 나는 여전히 엄마가 만들어낸 엉뚱한 아이 프레임에 갇혀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독립을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상처받은 내 영혼을 글쓰기로 치유받으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따스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동화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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